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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새 경제부총리, 정치 야망 있는 인사는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박근혜 대통령이 개각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노동개혁 5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경제활성화를 위한 주요 법안들이 이번 정기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늦춰지고 있지만 인사 청문회 등의 일정을 고려하면 개각은 이번 주 발표될 가능성이 크다.

핵심은 한국경제를 이끄는 최고 사령탑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교체다. 현직 최경환 부총리는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물러날 예정이다. 그는 지난 10일 “만기 전역 날짜가 지났는데 전역증이 안 나온다. 제대는 시켜줄 것 같은데”라고 말해 퇴임을 기정사실화했다.

새 경제부총리는 박근혜 정부 마지막 2년의 경제 성적표를 책임지게 된다. 그 앞에 놓인 과제는 막중하다. 대내외 여건은 온통 시커먼 먹구름투성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이 7년 간의 제로 금리를 접고 양적완화를 거둬들이면 글로벌 경제가 요동칠 것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 국)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해 양적완화를 더 확대해야 할 처지다. 성장세가 꺾인 중국도 부양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세계 경제는 미국과 유럽ㆍ중국이 각각 다른 길을 가는 ‘대분화(great divergence)’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 흐름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치밀하게 분석해 대책을 마련하는 게 경제수장의 일이다.

내부 여건도 악화일로다. 최 부총리의 주장처럼 한국 경제가 미증유의 위기라는 말은 다소 과장일 수 있다. 하지만 위기의 징후는 도처에서 선명하다. 지난해 한국 기업의 총매출은 8년 만에 처음 감소했다. 올해 9.7% 줄 것으로 예상되는 상품수출은 내년에도 2.3% 감소할 전망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전망을 2.6%로 또 낮췄다. 내년에도 3%가 안 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류다. 연말 기업들의 구조조정 칼바람은 가혹하다. 그 와중에 최 부총리 재직 1년 6개월 동안 가계부채는 1035조원에서 1200조원으로 늘어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됐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7월 취임하면서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했다. 그러곤 부동산 규제 완화, 추경 편성, 소비세 한시 인하 같은 손쉬운 정책들을 내놨다. 한때 대권 주자 반열에도 거론되던 친박 실세로서의 추진력을 살려 뼈를 깎는 구조개혁과 경제체질 개선 같은 근본 처방을 해야 했는데, 미흡했다. 지도에 없는 구덩이에 빠진 형국이다. 결과론적이지만, 다음 선거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이다 보니 장기 개혁보다는 단기 성과에 주력했기 때문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지금 한국 경제는 몰락이냐 재도약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럴 때 경제수장은 정치적 성공을 꿈꾸는 인물이 돼서는 곤란하다. 글로벌 경제의 흐름 속에서 한국 경제의 좌표를 정확히 읽어내는 분석력, 근본적인 회생 방안을 내놓을 전문성, 욕을 먹더라도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할 리더십, 경제주체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설득력 등 종합적인 역량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재직 중의 실적을 바탕으로 다음 진로를 탐하는 정치적 성향의 인물은 피해야 한다. 정치인만은 안된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직업과 경력을 지녔던 간에 개인 정치에 신경을 쓸 사람은 피하자는 얘기다. 경제는 어려운데 선거철이 다가온다고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서야 어떻게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겠나. 오로지 경제 회생에 매진할 경제부총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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