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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돌뼈 김밥’의 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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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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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서울 영등포의 어느 작은 분식집은 밤 11시면 달짝지근한 냄새로 가득 찬다. 이 집만의 비법이라는 간장 소스에 우엉을 뭉근히 조리는 냄새다. 아주머니는 스타 셰프 못지않은 진지한 표정으로 불 앞에 서는데, 일종의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한 경건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밤에 조려서 하루 맛을 숙성시켜 놔야 다음 날 맛있는 김밥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아주머니의 철학이다. 모든 재료는 일일이 고르고 다듬는다. 프랜차이즈와의 비교는 그에게 모욕에 가깝다.

 항상 웃는 낯인 아주머니에겐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아우라가 보인다. 소소한 분식집 얘기를 하면서 경건함에다 아우라까지 논하는 건 과장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식집이건 백악관이건 어떠랴. 자신의 일에 영혼을 담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똑같이 소중한 법이다.

 이 분식집이 떠오른 건 치킨집 창업 생존율이 30%에 그쳤다는 보도를 보면서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매년 평균 7400개가 넘는 치킨집이 개업했지만 이 중 5000여 개가 폐업했다는 내용이었다. 반경 1㎞에 평균 28개의 치킨집이 있다는 통계도 나왔다. 점포를 꾸리고 운영하기가 비교적 쉽다는 이유로 치킨집 창업에 너도나도 달려들면서 벌어진, 일종의 참사다. 생계만을 위해 창업을 하다 보니 차별화가 안 되니 소비자가 외면하고, 경쟁자만 늘어나니 창업은 곧 실패가 된다. 냉정히 보면 이런 ‘영혼 없는’ 창업이 성공하기 어려운 건 당연한 게 엄혹한 현실이다. 달리 할 게 없어서 하는 창업에 감동이 있을 리 없다.

 같은 김밥도 다르게 만드는 영등포 분식집에서 힌트를 얻어보면 어떨까. 아주머니의 철학은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판다”로 요약된다. 어떻게 하면 다양한 맛을 낼까 고민하는 게 신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메뉴도 창의적이다. 오돌뼈를 다져 넣은 매콤한 김밥도 내놓고, 속재료를 두 개씩 넣고 ‘통 큰 김밥’이라 명명한 메뉴도 있다. 떡볶이도 순한 맛에다 매운맛으로 손님의 취향을 고려했고 카레 소스에 짜장 소스까지 마련했다. “오돌뼈 김밥에 카레 떡볶이를 즐길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분식집”이란 게 아주머니의 자랑이다. 집 주변에 분식점은 많지만 유독 이 집에만 사람이 몰리고 멀리서도 손님이 찾아오는 이유다. 아주머니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진심을 담다 보면 손님은 자연히 몰려들기 마련 아닐까. 창업에도 영혼이 필요한 시대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