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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사법시험 4년 유예안,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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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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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초점   법무부가 지난 3일 사법시험 제도를 4년간 더 유예하겠다고 발표한 후 후폭풍이 거세다. 로스쿨 학생들과 사시 준비생 간에 팽팽한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로스쿨 학생과 교수들의 반발로 올해 변호사시험까지 불투명해지는 등의 파행이 계속되고 있다. 사시 4년 유예안은 유효한 방법인지에 대해 찬반 양론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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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서비스 향상 방안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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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근
홍익대 법과대학 교수

최근 사법시험 존치 논쟁에서는 정작 사법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서비스 공급자 입장에서 ‘신뢰 보호’를 주장하거나 ‘개천에서 용 나기’ ‘희망의 사다리’와 같은 부수적인 고려사항을 외치는 목소리만 들린다. 이에 법무부가 눈치 보기가 아닌 국민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합리적 대안을 찾기 위해 사시 유예를 발표한 것이라면 전적으로 찬성한다.

 사법개혁의 가장 큰 목적은 대국민 사법서비스 향상이다. 교육을 통해 법률가를 양성하는 로스쿨 제도나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법시험은 대국민 사법서비스의 향상을 달성하기 위한 나라별·시대적 상황에 따라 유연성을 갖는 수단이지 절대선이 아니다. 어느 제도든지 대국민 사법서비스의 향상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정당성을 잃는다.

 오늘날 복지제도나 경제민주화의 패러다임은 ‘상생의 정신’이다. 이에 입각한다면 직장이나 가정에 얽매여 로스쿨을 갈 수 없는 사람들, 사회 경험 후 법조인을 꿈꾸는 늦깎이 수험생 등에게도 일정의 예비시험이나 사법시험 등을 통해 법조인으로의 진출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1대 의제 민주주의하에서 어떠한 제도가 법률로 제정됐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합의한 지고지선(至高至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국민의 의사와 다른 부당한 밀실 야합적 입법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위헌을 선언하기도 하고 국민의 여론 압박에 의해 법률이 개정되고 폐지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당한 입법에 대한 신뢰 보호는 지켜져야 하지만 무조건적일 수는 없다. 그 누구도 미래의 사회현상을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법률도 제정 당시의 상황과 달라지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드러나면 개정 또는 폐지된다. 모든 사항의 원안 고수와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 자격 부여 등 국가 정책을 신뢰한 개인에 대한 보호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사법시험 폐지가 유예되거나 제도가 존치된다고 해도 로스쿨 재학생들에게 기존 법률에 의한 변호사 자격 부여는 계속 보장되는 것이므로 로스쿨생들의 신뢰를 크게 저버리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과거 미국의 제도인 의학전문대학원 제도와 민간 경력에 의한 공무원 선발 제도인 개방형 관료제가 일부분 도입됐다. 의학전문대학원은 본래의 목적인 기초과학 육성에 오히려 역행하고 학비만 비싸며 의대 교육과 차이가 없어서, 개방형 관료제는 민간의 우수한 인재 영입이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활성화되지 못했다. ‘귤이 바다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따라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치밀하게 설계되고 유연성 있게 시행돼야 한다. 로스쿨 제도 도입 당시 로스쿨은 절대선이기에 도입돼야 하고 사법시험은 절대악이기에 폐지돼야 한다는 성급한 전제하에 대국민 사법서비스의 향상이라는 목적에 기여했는지 검증하지 못한 채 새로운 제도를 설계하지 않았는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이제 정부는 이익단체의 요구가 아닌 그들이 주장하는 제도가 대국민 서비스의 실질적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 재검토해야 하는 시점이다. 변호사 수임료가 낮아졌는지, 변호사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소비자인 국민이 어느 제도에 더 만족감을 얻는지, 변호사가 실제로 다양한 영역에 진출하고 수도권이 아닌 지방으로도 확대되었는지 등 실증적 조사가 필요하다. 로스쿨 기간이 짧아 통계 산출이 어렵다면 좀 더 시간을 두고 로스쿨과 사시를 병존하면서 그 효과를 검증하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병존을 통해 로스쿨은 단점으로 지적되는 일부 음서제라든지 고학비 문제를 보완하고, 사법시험도 좀 더 개선하고 기수문화의 폐해가 있었던 사법연수원 방식이 아닌 다른 연수 방식의 도입 등 양 제도의 경쟁적 개선을 통해 서로 국민의 신임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이제는 법조인 양성 제도에 대한 진정한 국민의 합의 내지는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실증적인 자료에 근거해 다시금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때다.

장용근 홍익대 법과대학 교수

이미 사시 존치 환경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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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완
고려대 교수, 법학박사·변호사

경쟁이 바람직한 경우가 있지만 무의미한 경우도 있다. 태권도와 권투가 겨루어 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나 태권도와 체조가 겨루는 것은 무의미하다. 성격이나 목적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사법시험과 로스쿨도 마찬가지다. 어느 제도를 선택하느냐의 문제일 뿐 병행하면서 우열을 가릴 관계가 아니다.

 사법시험은 우수한 예비 법조인을 ‘선발’하는 제도인 반면 로스쿨은 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을 교육을 통해 법조인으로 ‘양성’하는 제도다. 사시 출신은 선발된 법조엘리트이지만 로스쿨 출신은 단지 자격증을 하나 취득한 것에 불과하다. 사시 출신은 처음부터 능력을 인정받지만 로스쿨 출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제 특기와 능력을 발휘한다.

 두 제도는 장단점이 뚜렷해 오랜 논의 끝에 사회적 합의로 2007년 로스쿨 제도로 전환했는데 이제 와서 두 제도를 병행하며 경쟁시켜 보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시 존치론자들은 시험 성적이나 소송 능력으로 경쟁하자고 한다. 국가기관에서 소송 중심의 동일한 교육을 받은 사시 출신과 달리 로스쿨 출신은 종래 변호사들이 가지 않던 많은 영역에 가서 다양한 일을 한다. 따라서 로스쿨 출신은 법조인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평가하면 족할 뿐 굳이 우열을 가리고 서열을 매겨야 할 이유가 없다. 만일 억지로 경쟁을 시킨다면 로스쿨이 고시학원처럼 되는 수밖에 없는데 이는 마치 체조 선수에게 태권도 선수와 싸우라는 격이며, 제도를 망치는 무책임한 처사다.

 2017년에 사법시험을 폐지한다는 것은 2007년 법 제정 당시 국가의 약속이다. 많은 사람이 이 일정에 맞추어 왔다. 로스쿨은 법대 신입생을 뽑지 않은 지 벌써 8년째이고, 법대 재학생들도 이 일정에 맞추어 각자 상황에 따라 사시·로스쿨·취업을 선택했다. 필자가 재직하는 고려대는 남은 법대생이 61명에 불과하고, 2017년이 지나면 사시를 볼 사람이 거의 없게 된다. 또한 지난 8년간 매년 법조인을 꿈꾸는 수천 명의 고교 졸업생이 이 약속을 믿고 법학이 아닌 다양한 전공을 택했다. 이 중 로스쿨에 진학한 학생들이 이제 몇 달 후면 변호사시험을 보는 상황인데 느닷없이 사시를 4년 더 존치하자는 것은 국가의 약속을 믿고 미래를 준비해온 많은 사람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다.

 로스쿨 제도에 많은 갈등과 문제가 있지만 사시 4년 유예는 답이 아니다. 예컨대 동국대·국민대 등 유수한 법과대학들이 ‘총정원 제한’ 때문에 로스쿨 인가를 받지 못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지만 이는 로스쿨 추가 인가로 해결해야 한다. 비싼 학비도 ‘총정원 제한’ 때문이다. 과거 고려대 법대 정원은 4학년 약 1400명인데 로스쿨은 3학년 총 360명에 불과하다. 과거 정원의 4분의 1밖에 인가 받지 못했으니 등록금이 오른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원을 두 배로 늘리면 등록금은 2분의 1로 줄일 수 있지만 변호사 단체는 증원에 반대한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갈등과 문제점의 주된 원인은 변호사 단체가 주장하는 ‘변호사 수의 억제’에 귀착된다.

 옛 제도와 새 제도를 병존시킨 일본은 실패했다. 이를 잘 알면서도 병존을 주장하는 속내는 로스쿨을 흔들어 사시로 복귀하려는 데 있고, 그 근저에는 변호사로서 사회적 지위가 계속 낮아지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정서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약 10년간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유지하면서 같은 어려움을 경험해 그 정서를 이해한다. 로스쿨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 마디로 ‘변호사를 만만하게 보게 된 것’이라고 변호사들은 호소한다. 그러나 오히려 ‘변호사를 만만하게 보게 된 것’이야말로 로스쿨 제도의 가장 큰 성과다. 변호사의 문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지금 변호사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과거 고시 시절의 권위를 되찾는 것이 아니다. 고통스럽지만 오히려 한없이 낮아짐으로써 변호사들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좋은 이웃, 우리 사회의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김제완 고려대 교수, 법학박사·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