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트북을 열며

정치 액츄얼리

중앙일보

입력 2015.12.11 00:59

업데이트 2016.01.2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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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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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

계절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들이 있다. 추운 겨울엔 크리스마스, 제야의 종, 함박눈(폭설 제외) 등이 따뜻하게 힐링을 해준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2003)'도 크리스마스급 매력을 지녔다. 수십 번 봤는데도 재방송 심야영화로 다시 만나면 애틋하다. 그래서 쉽사리 채널을 돌리지 못한다.

영화의 제목은 “Love actually is all around”라는 문장을 축약한 것이라고 한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는 평범한 진리인데 “당장 사랑하라”고 주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들은 자신만의 사랑에 끙끙 앓다가 해법을 찾는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방법으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영화의 줄거리다. 힐링 성공 사례 모음집이니 백번을 봐도 뭉클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12월은 안타깝게도 이 영화와 정반대의 느낌이다. 수십 년 넘는 겨울 동안 여야는 늘 싸웠고, 비난받았다. 올해엔 동지들끼리 주류 vs 비주류로 갈라져 더 험악하다.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늘 지켜봐야 한다. 퇴근길 국회 마당에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 야속할 정도다.

 지난 9일은 19대 국회 정기회 마지막 날이었다. 그것도 4년 임기의 마지막 회의. 성대한 쫑파티를 해도 아쉬울 날, 여야는 쟁점 법안을 놓고 또 부닥쳤다. 서민 경제를 활성화하고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법을 놓고 여야의 관점은 전혀 다르다. 피차 양보하기 힘든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정기회 마지막 날, 의원들은 117개의 법을 만들었다. 정의화 국회의장 등 의장단은 2시간40분 동안 의사봉만 700번 넘게 땅땅거렸다. 의원 대부분이 법안에 찬성했다. 그리고 이튿날 욕을 먹었다. 1분 만에 법을 통과시켜도 되느냐고.

 그들의 ‘노고’ 속에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을 쉽게 자를 수 있게 됐고, 메르스 등 감염병에 대응하는 질병관리본부가 차관급으로 격상됐다. 한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논란들은 그렇게 법이라는 결과물로 남는다.

 하지만 문득 정치인들의 겨울나기가 짠했다. 그 논란들과 온몸으로 부닥쳤던 그들 아닌가. 게다가 겨울이면 의원들은 내년 나라 살림을 위한 예산안도 심사한다. 표 때문에라도 자기 지역에 한 푼이라도 더 챙기느라 애가 탄다. 그 어마어마한 투지와 공부, 노심초사를 감당할 자 누구인가.

 한심한 싸움으로 국민들을 질식시키고 있지만 그래도 정치인의 일은 엄중하다. 나도 잘 모르는 나의 일을, 나의 세금을 쓰면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모범 국회의원상으로 불리는 백봉신사상을 받은 수상자의 말은 귀감이 될 만하다. “아무리 욕을 먹어도 정치가 제일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정치를 하겠다.”

 그 말이 진심이길 바란다. 더불어 한겨울 여의도 정치도 영화처럼 사랑스러워지길 희망한다. 정치는 어디에나 있으니까. 정치 액츄얼리.

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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