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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부작용 많은 로스쿨 체제 일원화에 반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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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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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 회장
인천대 법대 교수

지난 3일 법무부는 4년간 사법시험 폐지를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대안으로 ▶사법시험과 유사한 시험을 실시해 간접적으로 사법시험 존치 효과를 유지하는 방안 ▶전반적으로 로스쿨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 ▶향후 사법시험 존치가 논의될 경우 별도 대학원 형식의 연수기관을 설립해 자비로 연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서민은 접근 어려운 고비용 구조
입학·진로서 ‘현대판 음서제’ 잡음
대학 법학교육은 존립 근거 잃어
사시 존치로 로스쿨 약점 보완해야

 필자는 이 같은 결정이 사시 폐지를 단순히 유예하는 조치에 불과하며 4년간 불필요하게 국력을 낭비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법무부가 제시한 사법시험 폐지에 따른 세 가지 대안 중 첫째 방안은 일본이 도입한 예비시험제도로 이미 실패한 것이다. 둘째 방안은 사시 존폐 여부와 상관없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방안은 법조인 양성제도를 고비용화하고 결국 ‘옥상옥(屋上屋)’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무부가 국민의 85.4%가 사시 존치를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이를 4년간 유예해 대한민국 법조인 양성제도를 심도 있게 연구해 확정하겠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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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 발표에 대해 변호사시험과 사법시험 출제를 거부하는 등 협조하지 않기로 결정한 로스쿨협의회와 자퇴서를 제출하는 로스쿨 학생들의 지나친 반발은 자제돼야 한다. 2009년부터 로스쿨 제도와 사법시험제도가 7년여간 병존하는 동안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마치 앞으로 4년간 병존하면 큰 문제가 야기될 것 같은 인상을 준다면 국민들은 오히려 로스쿨 폐지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법무부가 로스쿨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한 만큼 로스쿨협의회는 진정한 개혁 청사진을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반발에 대해 법무부가 그 입장을 번복한 듯한 의견을 다시 표명했으나 원래 발표의 내용은 변함이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사법시험 존치 여부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결정할 일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제57회를 맞은 사법시험은 지난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정하고 권위 있는 시험으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등용문이었다. 국민들은 ‘시험에서 교육으로’라는 취지로 도입된 로스쿨 제도가 안착돼 법조인 양성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기를 기대해 왔다. 그러나 지난 7년여간 로스쿨 운영은 많은 부정적이고 파행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 없이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으로 법조인 양성제도가 일원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사법시험이 계속 존치돼 로스쿨과 이원적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로스쿨 제도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대한민국 법치주의 확립과 사회 통합에 필요하다.

 그 이유는 먼저 사법시험은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의 법조직역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행 로스쿨은 매우 고비용 구조다. 학부 졸업 후 3년 대학원 과정이고 그 학비도 주요 사립대학의 경우 연 2000만원을 웃돌고 있다. 서민층은 법조직역에 감히 도전해 볼 엄두를 내기 어렵다.

 둘째, 사법시험은 지난 반세기 동안 단 한 번도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된 적이 없다. 법무부가 시험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객관적 성적의 산출과 그 공개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현재 로스쿨은 그 입출구에서 많은 의문에 쌓여 있다. 주요 로스쿨일수록 이른바 ‘학벌주의’가 더 강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졸업 후 진로에서도 많은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현대판 음서제’로 인식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법시험은 법학의 발전과 법치사회의 기반이다. 현행 로스쿨은 학부 법학교육을 완전히 부정하는 토대 위에 서 있다. 사법시험이 사라지면 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법과대학과 법학과의 존립근거를 상실하게 되고 법학의 전수기능은 물론 전공과 교양교육을 통한 법학의 가치는 훼손될 것이다.

 대한법학교수회는 대한변호사협회와 공동으로 법조인 양성제도 개혁에 관한 국회토론회와 학술세미나를 올해만 6회 개최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이 법조에 진출할 수 있는 작은 오솔길이라도 터주기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현재 국민들은 신기남 의원 사태와 로스쿨 준비 여대생의 성매매 사건을 목도하면서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제 사법시험 존치 문제는 단지 법학교육제도와 법조인 양성제도의 문제 수준을 벗어나 대한민국의 장래에 관한 문제로 떠올랐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현재의 로스쿨 제도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법조인 양성제도가 로스쿨 체제로 일원화되는 것에 반대한다. 사법시험은 반드시 로스쿨 제도의 약점을 보충하는 필수적 보완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법조인 양성에서 선의의 경쟁체제가 이뤄지면 법률 소비자인 국민의 선택권을 넓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법무부의 여론조사에서 보듯이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사법시험의 존치를 바라고 있다. 국회는 사법시험의 존치를 위해 발의돼 현재 법제사법위원회가 심의 중인 개정법률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조속히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 회장 인천대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