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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까지는 청년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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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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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십년 뒤, 당신의 모습은 어떨 것 같나요?”

노인을 부양대상으로 여기지말고
생산가능인구로 다시 바라보자
직급·직종 따른 연령 제한도 없애자
진정한 경로는 일자리가 아닐까

 얼마 전 관람한 영화 ‘인턴’에서 면접관이 지원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면접을 받으러 온 사람이 우리가 으레 생각하는 ‘청년’이 아닌 70세 노인이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한때 전화번호부 회사의 부사장이었던 70세 남자 주인공이 온라인 쇼핑몰의 인턴으로 입사해 30세 워킹맘 최고경영자(CEO)의 비서로 일하는 이야기다. 이런 일이 비단 영화 속 상상만으로 그치는 건 아니다.

 저출산·고령화가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가 된 지 오래다. 실제 생산가능인구(15~64세)보다 65세 이상의 노인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지금은 생산가능인구 1명 당 노인 0.2명을 부양하지만, 25년 뒤에는 노인 0.5명을 부양해야 한다. 출산율을 높여 청년층 부담을 나누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부양 받는 노인을 줄일 방도는 과연 없는 걸까.

 우리 사회는 예로부터 경로 사상을 미덕으로 여겼다. 현재 노인들은 대중교통과 박물관 같은 공공시설을 무료로 이용하거나 요금 할인 혜택을 받는다. 혜택의 이면에는 노인들에게 제공하는 각종 복지가 경로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듯하다. 그러나 노인이 원하는 경로 사상이 이런 것일까. 어쩌면 그들에게 맞는 ‘일자리’를 주는 것이 진정한 경로일지 모른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 노인들은 하는 일 없이 쉬는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노인들을 ‘생산 불가능 인구’로 선 그을 게 아니라 이들도 일을 하며 젊은이와 더불어 사는 ‘생산가능인구’로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직급’에 따른 연령 제한 문화에서 벗어나 보자. 계단식 연공 서열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청년은 사원·과장급이고 장년은 차·부장급, 중년은 임원급 이상이다. 나이에 맞는 직급을 달지 못하면 주변 눈치를 보며 힘든 직장 생활을 하거나 아예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게 맞는 걸까. 가령 교회에서는 40대 목사도 있고 60대 평신도도 있다. 나이가 들어 권사·장로가 되지 못한다고 교회를 떠나지는 않는다. 나이보다는 능력과 의사에 따라 역할을 맡는 게 중요하다.

 다음으로 ‘직종’에 따른 연령 제한 문화도 벗어나보자. 체력적 소모가 많거나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는 어렵겠지만 건강한 노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노인 친화적 일자리’에 나이 든 사람들을 먼저 고용해보자. 얼마 전 일본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일흔은 됨직한 노인들이 턱시도에 나비 넥타이를 매고 꼿꼿한 자세로 음식을 날랐다. 처음에는 노인이라 실수하지 않을까 불안했지만 곧 이들의 품격있는 서비스에 나이를 잊고 익숙해질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노인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불편해한다는 점이다. 기업에는 정년을 연장하라고 요구했지만 정작 소비자 입장에서는 노인들의 서비스가 여전히 낯설다. 법률적인 정년 연장은 이뤄졌지만 실제 국민들의 ‘마음 속 정년 연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노인들의 사회활동에 대한 우리 모두의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청년 일자리도 부족한데 ‘판매원 등 단순 일자리마저 노인들이 가져가면 어떡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청년들이 단순 노무직을 두고 노인들과 경쟁할 게 아니라 좀 더 도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일자리를 찾게 도와주는 게 맞지 않을까. 인력난에 시달리는 기업에 가서 신기술과 신제품을 개발하고, 해외 시장도 개척하는 창의적 직업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일자리다. 청소 미화원 자리를 두고 다툴 게 아니라 청년들은 첨단 청소 장비를 개발해 생산하고 노인들이 그 장비를 활용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올해 유엔은 인류의 평균수명을 고려해 인간의 생애주기를 새롭게 나눴다. 0~17세는 미성년자, 18~65세 청년, 66~79세 중년, 80~99세 노년,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으로 분류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만 65세’까지 청년이다. 60세 정년 퇴직자들은 5년이나 더 청년시절을 보내고, 앞으로 다가오는 70대 중년을 준비해야 한다. 노인을 더 이상 부양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생산가능인구로 다시 바라보자. 이들에게 물어보자. 십년 뒤, 당신의 모습은 과연 어떨 것인가.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