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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퇴금융] 금융사에 퇴직 후 노후 설계 상담했더니 "사실 마땅한 게 없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실 마땅한 게 없어요.”

지난달 말 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 은퇴설계 상담을 전담한다는 직원은 “퇴직한 부모님의 노후 설계를 상담하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그 연배라면 특별히 투자할 방법이 없어요. 꼭 하고 싶으시다면 중위험·중수익 상품에 소액을 넣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라는 원론적인 대답을 남긴 채 서둘러 상담을 마무리했다.

본지 기자는 지난달 말 금융사의 노후 상담 및 상품 소개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4개 금융사 지점을 찾았다. ‘7~8년차 직장인’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그 동안 예·적금 상품에만 돈을 넣어왔는데 앞으로 길게 보고 자금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알고 싶어서 찾아왔다”며 상품 추천을 요청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입을 맞춘 듯 비슷했다. 한 곳의 예외도 없이 자사나 계열사가 만든 투자상품 가입을 권유했다.

한 증권사의 은퇴설계담당 직원은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 가입하면 총 7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연금상품 가입을 권유했다. 뒤이어 ▷주식 등 위험자산 20%, ▷비교적 안정적인 채권형펀드 등에 60%, ▷주가연계증권(ELS)에 20%를 배분하라는 포트폴리오를 제시했다. 기자의 종합적인 재무상황이나 투자 목표를 묻는 질문은 없었다. 진단도 없이 처방만 준 셈이다. “자산이 그리 많지 않은, 퇴직을 앞둔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별 다른 방법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 은행의 은퇴설계 전문센터도 유사한 방식으로 상담을 이어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사의 예·적금 기반 연금상품 가입을 권유했다는 것 정도였다. 10년 동안 정기적으로 소액을 적립한 뒤 20년간 예금형식으로 운용하고 50대가 되면 지급받는 상품이었다. “금리도 낮은데 펀드나 변액보험 상품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래도 원금 보장이 되는 예금 기반의 연금 상품이 안정적”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부모님에 대해서는 역시 “추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나이가 많은 분은 어느 정도 자산이 있어야 연금 등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전문센터가 아닌 일반 증권사 창구는 정도가 더 심했다. 한 증권사 영업점의 직원은 현재의 국제 정세와 경제 상황을 설명하더니 “ELS(주가연계증권)에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원금 보장이 안 되는 상품 아니냐”고 묻자 “녹인(knock in·원금 손실) 가능성은 크지 않고, 예·적금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만 답했다. 이 직원은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는 상품을 권하면서도 기본 절차인 투자자 성향조사를 하지 않았다.

다른 증권사에서는 투자성향조사 질문지를 내주며 작성을 요청했지만 작성이 끝난 뒤에는 역시 틀에 박힌 상담이 이어졌다. ‘적극투자형’으로 분류된 기자는 최근 잘 나간다는 주식형 펀드를 소개받았다. 부모님을 위한 상품을 문의했더니 역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뭔가 있을 것 아니냐”는 추궁이 이어지자 겨우 한 상품을 제시했다. 그러나 최소 가입금액 3000만원이라는 진입장벽이 있었다. “다른 회사 상품은 최소 가입금액이 1억원”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기자는 며칠 동안 발품을 팔았지만 ‘반퇴 테크’의 해답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혼란만 가중됐다. 부모님께도 아무런 조언을 해드릴 수 없었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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