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무엇을 막으려… 길이 100억 광년 ‘우주 만리장성’이 생겼을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56호 25면

CfA 우주장벽(아래 부채꼴)과 SDSS(Sloan Digital Sky Survey)우주 장벽.

인간의 정착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는 어렵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영역의 개념은 존재한다. 사냥터의 범위를 정하고 경계선을 넘지 않는 늑대들은 정착자가 된 것일까? 아프리카의 평원에서는 가끔 목이 부러진 기린을 볼 수 있다. 비옥한 영역을 지키기 위한 혹은 다른 기린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도전의 결과다. 하지만 동물들은 그들이 설정한 자신의 영역에서 채집을 하지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다. 먹거리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자연의 작용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정착지에서는 인간이 생산자 역할을 한다.

영국의 하드리아누스 방벽. 서기 122년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재위 기간에 건설이 시작됐다. 길이는 117.5㎞다.

인간의 장벽은 유목민 침범 방어용지금은 쉽게 논이나 밭에서 볼 수 있는 경작물들이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식물은 인간의 손에 저항한다. 봄부터 가을까지의 고된 노동을 보상할 수 있는 생산성 높은 작물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인간의 손에 선택된 소수의 작물은 돌연변이를 계속해 채집에서 얻을 수 있는 생산성보다 더 큰 이득을 주는 품종으로 진화했다. 인간의 손에 길들여진 농작물은 자연의 법칙보다는 인간의 법칙을 따르기 시작하고, 채집을 포기하고 정착을 시작한 지역을 중심으로 인간이 생산을 지배하는 사회가 탄생한다.

영국의 하드리아누스 방벽.

진화가 항상 옳은 방식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정착이 궁극적으로 올바른 선택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는 정착을 선택한 인간들이 유목자에 대해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다. 정착자들이 좁은 지역에서 높은 생산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시작하면서, 인구밀도가 높아지고 빠르게 지배자로 성장하게 된다. 폴리네시아의 섬들 중에서 먼저 정착한 섬의 부족은 유목자들의 섬을 잔인하게 정복하고 정착자들의 영역으로 흡수한다.


하지만 유목자들의 네트워크 형성이 가능했던 유라시아의 대륙에서는 정착자들에 대한 무시할 수 없는 위협적인 도전도 전개된다. 정착자와 유목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은 거대한 장벽으로 나타나게 된다. 영국에서는 유목민의 후예인 켈트족과 정착자의 제국인 로마와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서 하드리아누스 방벽이 건설되고, 중국에서도 북방의 유목민 연합의 침범을 방어하기 위해 거대한 만리장성 장벽이 세워지게 된다.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장벽을 건설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으로 켈트족을 정벌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유목은 사라지지 않은, 그리고 사라지지 않을 인간의 생존 방식이다. 무력으로 점령할 수 없는 인간 영혼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것을 칼로 종식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드리아누스 방벽은 정복 대신에 경계를 통한 공존을 모색한 정착자의 유적이 아닐까?


 초기 우주엔 지역의 경계 불필요우주에도 별들이 모여드는 정착지가 있다. 우주에는 우주의 팽창 법칙에 따라서 진화하는 곳도 있고, 우주의 팽창에서 분리돼 해당 지역의 중력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곳도 있다. 우주 초기에는 중력에 의한 거대구조가 발달되지 않아 두 지역 사이의 경계는 필요하지 않았다. 정착지에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초기의 중력계도 주변의 물질을 흡수하면서 조금씩 물질의 밀도가 높아지게 된다. 폴리네시아의 작은 유목민 섬들이 정착자에 정복됐듯이 초기에는 이렇게 주변 중력계로의 흡수만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 초기의 중력계가 성장해 거대 크기로 성장하게 되면, 유라시아의 유목민들이 연합을 하듯이 우주에 거대한 빈 공간(void)이 형성된다. 유라시아의 유목민 연합이 정착자들의 영토를 조직적으로 압박했던 것처럼, 이 빈 공간들은 마치 자신의 영역에서 중력계들을 밀어내는 것처럼 관측된다. 우주에 거대한 빈 공간들이 거품처럼 자리잡고, 중력계들은 주로 그 거품의 변방에서 가느다란 필라멘트를 따라 발달하게 된다. 그 필라멘트들은 서로 모여서 거대한 우주의 거미집을 만들어 놓는다. 그런데 아주 특이하게도 거품의 경계에 인간의 장벽과도 같은 거대한 우주의 장벽이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은하의 깊이를 비교적 빠른 속도로 분광할 수 있는 관측기술이 발달하게 된다. 마크 데이비스(Marc Davis)와 존 후크라 (John Huchra) 같은 연구자들은 이 분광기술을 이용해 은하들의 3차원 지도를 완성할 수 있는 CfA(Center for Astrophysics) 분광 광시야 관측을 77년에 시작한다. 6년 간의 탐사를 통해서 83년에는 세계 최초의 은하 분포 지도를 공개한다. 우주의 빈 공간은 이 때 처음으로 관측됐다. 비록 희미하기는 했지만 은하 지도에는 식별이 가능한 빈 공간이 보였고, 검은 점으로 표시된 은하들은 그 가장자리 필라멘트처럼 분포하고 있었다. 우주를 스위스 치즈나 주방 식기대의 거품에 비유한 만평들이 나오기도 했다. 인간이 처음으로 접한 우주의 모습은 성공적으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다가 왔다. 여기에 힘을 얻은 연구진들은 구조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CfA 분광 광시야 관측 ‘시즌 2’를 바로 시작한다. 우주의 장벽은 이 2차 탐사에서 발견된다.


 


탐사 통해 우주 거대 장벽 속속 발견돼제2차 CfA 분광 광시야 탐사 결과는 89년에 공개된다. 이 발표에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이 포함돼 있었다.

북쪽 유목민의n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n중국의 만리장성. 길이가 6000㎞에 이른다.

영국에 있는 하드리아누스 방벽의 두께는 3m정도이고 높이는 6m정도이다. 그리고 그 길이는 동쪽 바다의 타인강에서 서쪽 바다의 솔웨이 만까지, 동서를 횡단하는 연장 117㎞이다. 그런데 우주에도 그런 장벽이 있었다. 우주 장벽은 은하라는 벽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은하 성벽의 두께는 1.6×1020㎞이고 높이는 2×1021㎞ 정도다. 이러한 성벽이 우주를 가로지르는 총 연장 5×1021㎞에 걸쳐서 존재한다.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따라 하이킹을 하는 여행자들은 일주일 정도면 방벽의 다른 쪽 끝에 도착할 수 있다. 만일 한쪽 끝에서 빛을 보내면 빛은 0.0004초 정도면 다른 쪽 끝에 도착할 수 있다. CfA로 발견한 우주의 장벽을 사람이 하이킹할 경우 언제 다른 쪽 끝에 도착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만일 사람 대신 빛이 여행을 한다면 5억 년이 지나면 다른 쪽 끝까지 갈 수 있다.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건설을 시작한 후 6년 간의 공사를 통해 방벽을 완성했다. CfA 우주 장벽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최소 50억 년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우주론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인간의 장벽은 정착과 유목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형상화된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눈에 보이는 장벽보다 더 높고 긴 장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갈등이 표면화되는 지구 상의 모든 곳에서 나타날 수 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로마의 장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지도상에 펼쳐놓고 보면 2700㎞지만, 산악지대의 굴곡까지 포함하면 실재 길이는 6000㎞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우주의 장벽도 보이지 않는 우주의 중력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우주 모든 곳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CfA 장벽이 이 우주에 유일한 장벽이 아닐 수 있다.

SDSS가 관측한 우주 장벽.

세상 무엇과도 반응하지 않는 암흑 물질CfA 탐사 이후 20여 년이 지난 2000년대 초에는 CfA가 탐사한 은하보다 100배가 더 많은 20만여 개의 은하를 관측할 수 있는 SDSS(Sloan Digital Sky Survey) 분광 광시야 관측이 시작된다. 관측이 시작된 이후 3년이 지난 2003년에 리차드 고트(Richard Gott III)와 마리오 쥬릭(Mario Juric)이 또 다른 우주의 장벽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장벽의 길이는1.3×1022㎞이고, CfA 장벽보다 2.7배 정도 더 큰 것이다. 빛이 14억 년을 여행해야 다른 쪽 끝에 도착할 수가 있다. 이 장벽은 지구에서 대략1022㎞ 정도의 거리에 존재한다.


이러한 장벽은 컴퓨터로 재현하는 일은 가능하기는 하지만 쉽지는 않다. 우주에 장벽이 존재하는 이유는 암흑물질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눈으로 볼수 있는 바리온(baryon)이란 물질은 오늘날 우주에 존재하는 중력계를 형성할 수 없다. 우주 초기에 빛과 하나로 엉켜서 고밀도 지역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흑물질은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반응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중력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바리온이 마침내 빛에서 탈출해 중력계를 형성할 수 있는 시기에는 이미 암흑물질의 중력계가 크게 성장해 바리온 자신만의 중력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암흑물질의 중력계에 흡수되게 된다. 이 암흑물질의 중력계에 편입된 바리온들은 시간이 지나면 별과 은하가 되어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처럼 암흑물질의 구조를 밝히게 된다. 따라서 관측된 우주의 장벽은 암흑물질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거대한 SDSS 우주 장벽도 가장 긴 장벽은 아니다. 2013년에는 빛이 자그만치 100억 년을 여행해야 다른 쪽 끝에 도달할 수 있는 거대한 장벽, 헤라클레스자리-북쪽왕관자리(Hercules-Corona Borealis) 장벽도 발견됐다. 인간이 더 깊은 곳으로 관측을 시작하는 미래에는 또 다른 장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측을 통해서 무슨 이유로 암흑물질들이 이러한 구조로 진화했는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장벽을 볼 때마다, 난 정복될 수 없었던 유목의 자유를 생각한다. 이 우주에서도 거대한 암흑물질의 장벽이 무언가에 저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영혼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이 우주에도 그러한 유목민의 자유가 존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송용선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