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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 총기 난사… 오바마 "테러와 관련됐을 가능성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에서 2일(현지시간) 최소 14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하는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당국이 테러 가능성을 포함한수사에 착수해 미국 사회가 얼어붙고 있다.

특히 사살당한 총기 난사범 2명이 20대 부부이며 남편은 독실한 무슬림으로 밝혀져 미국 사회에 무슬림 공포증이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이날 오전 11시쯤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 카운티의 발달장애인 재활시설인 ‘인랜드 주민센터’에 부부인 사이드 파룩(28)과 타시핀 말릭(27)이 난입한 뒤 총기를 난사했다. 목격자들은 괴한이 최대 3명이었다고 밝혔으나 수사 당국은 범인이 이들 부부 2명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샌버너디노 공중보건국 직원들의 크리스마스 송년 행사를 습격했다.

검은 복면과 방탄조끼 등 ‘공격용 복장(assault-style)’을 한 이들은 반자동 소총과 권총 등으로 무장했다. 이들은 수분간 총기를 난사한 뒤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고 도주했다가 4시간여 후 범행 장소에서 3㎞가량 떨어진 주택가 도로에서 추격에 나선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파룩과 말릭이 사살됐고 경찰 1명도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다른 한 명을 체포했으나 총격 사건에 연루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추격 과정에서 부부는 경찰 차량을 향해 파이프 모양의 가짜 폭탄을 던졌다. 총기난사 현장에선 무선조종(RC) 모형자동차에 달린 폭발물 3개가 발견돼 경찰이 처리했다. 리모컨은 도주 차량에서 발견됐다.

제라드 버건 샌버너디노 경찰국장은 “총기 난사범들은 사명을 띤 것처럼 범행했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보디치 연방수사국(FBI) 로스앤젤레스지국 부지국장은 “직장내 갈등일 가능성과 테러 사건일 가능성이 반반”이라며 “테러와 연관성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룩은 이날 크리스마스 파티를 주최했던 샌버너디노 보건국에서 일하는 환경보건 담당 직원이었다. 뉴욕타임스는 “파룩은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이며 부모는 파키스탄 출생”이라고 전했다. 파룩의 동료는 “지난봄 파룩이 한 달간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녀온 뒤 결혼했다는 얘길 들었고 약사라는 이 여성이 함께 (미국에) 들어왔다. 얼마 뒤엔 아이도 함께 있는 걸 봤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생후 6개월 된 딸이 있다. 파룩의 아버지는 뉴욕데일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은 매우 신실한 무슬림이었다”고 밝혔다.

파룩은 이날 공중보건국 직원들의 크리스마스 행사장에 참석했다가 동료들과 다툰뒤 화를 내며 행사장을 빠져 나갔다. 곧이어 아내와 함께 중무장한 채로 행사장에 다시 돌아왔다. 파룩의 처남인 파란 칸은 기자회견을 열어 “그가 왜 이런 일을 했는지 알 수 없다”며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총격 사건은 다른 나라에선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패턴”이라며 총기 규제 강화를 촉구했다. 민주당의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총기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무장한 범인들…동기 몰라=범인들은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 중무장한 상태였다. 이들은 5.56㎜ 구경인 DPMS의 A-15, 스미스앤드웨슨 M&P 15 반자동 돌격소총과 권총을 사용했다. 모두 미군 제식 돌격소총인 M-16 계열의 민수용 버전인 AR-15 계열로, 미국 총기난사 사건에서 단골로 사용되는 것이다. 독점 특허 기간이 만료돼 미국 콜트·스미스앤드웨슨·DPMS, 핀란드 FN 등 웬만한 총기회사들이 모두 생산한다. 지난해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 2012년 콜로라도주 극장 총기난사 사건 등에서도 이 총기가 사용됐다.

수사 초기단계지만 범행동기는 아직 알 수 없다. 파룩이 동료들과 다툰 뒤 돌아와 총기를 난사했다는 점에서 직장 내 따돌림이나 종교갈등이 있었을 수 있다. 지난해 직장 내 갈등으로 몇 명의 직원이 퇴사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하지만 그가 사우디아라비아 여행 도중 테러리스트와 연계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테러와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3일 “현재로선 범행 동기가 불분명하다”며 “테러와 관련됐을 수도 있고 직장 문제와 관련돼 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여성을 포함한 복수의 인물이 총기난사 사건을 저지른 건 극히 이례적이란 분석도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FBI가 지난해 9월 발간한 보고서를 인용해 2000~2013년 미국에서 발생한 ‘적극적 총격(active shooting)’ 160건 중 단 2건만 2명 이상의 범인이 저질렀고 범인이 여성이었던 경우는 6건에 불과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이동현·하선영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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