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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환영의 직격 인터뷰

철학자 도올 김용옥 “중국과 대등했던 고구려 이해해야 진정한 통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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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김환영 기자 중앙일보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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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선 기자 중앙일보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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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은 그의 논어 해석에 대해 강연해달라는 쓰촨(四川)사범대학의 요청을 받고 지난달 24일 출국했다. 도올은 “중국도 고전학 인재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중국과 대등했던 고구려 이해해야 진정한 통일”

YS는 ‘어려운 일을 쉽게’, DJ는 ‘쉬운 일을 어렵게’ 풀어냈다. 도올(67)이 정치를 했다면 아마 양김을 종합하는 지도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는 복잡한 사상이나 개념도 쉽게 한마디로 정의한다. 또 일상의 사소함에서 거대한 테제를 끄집어낸다. 1985년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이래 도올의 시대가 ‘지나치게’ 오래 계속되고 있다. 알게 모르게 많은 ‘도올 키즈(kids)’가 그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엄청난 독서량·사고량·집필량은 요즘 말로 ‘넘사벽’이다. 『도올의 중국일기 4』가 지난달 24일 출간됐다. 『중국일기』는 동북공정·남북통일 문제에 대한 도올식 해법이다. 지난달 20일 도올을 서울 동숭동에 있는 통나무출판사에서 인터뷰했다. 다음이 요지다.

-도올의 학문 세계에서 『중국일기』가 차지하는 위치는 뭔가.

 “두 가지 획기적인 의미가 있다. 첫째, ‘사람이 뭐냐, 우리가 왜 살고,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다루는 인간학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논리뿐만 아니라 감정과 정서, 분위기를 중시한 새로운 형태의 ‘시청각 인문학’ 도서다. 독자들은 ‘다른 책은 읽기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이 책은 읽힌다’ ‘책 속 사진이 움직인다’고 말한다. 둘째로는 제 인생 최초의 본격적인 국학 분야 저술이다. 또 제가 ‘조만(朝滿) 문명권’이라 부르는 동북아 역사를 우리 국학 개념에 가장 밀착됐으면서도 동시에 인류 보편의 학문 관점에서 얘기한다.”

 -‘보편적 국학’의 핵심은 역사학인가 철학인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한문 해독이다. 한문 해독 능력이 없으면 역사학이든 국문학이든 소용없다. ‘필로로지(philology, 어학·문헌학)’를 바탕으로 모든 학문적 방법론을 자유롭게 동원해야 한다. 역사나 철학 간의 우열은 없다. 단, 역사를 다룰 때는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으로 다뤄야 한다.”

 -역사 서술에서 중요한 것은 사관(史觀)인가.

 “서양의 경우에는 정확히 사관에 해당하는 말은 없고 해석(interpretation)이 있다. 이탈리아 철학자·역사가 크로체(1866~1952)의 말처럼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고구려 역사는 다양한 현대적 지평을 열 수 있는 ‘재즈’다.”

 - 고구려는 왜 중요한가.

 “고구려를 포용하는 마음 없이 북한을 포용하지 못한다. 그러면 결과는 통일이 아니라 또 하나의 분열이다. 우리의 북방 근원을 망각하는 통일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다. 현재 우리는 역사를 계림에서 한양까지만 보고 있다. 동아시아 전체를 우리 역사의 터전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보는 게 고구려 패러다임이다.”

 - 고구려는 중국화(Sinicization)의 결과로 붕괴한 것은 아닐까.

 “중국화라는 표현 자체가 고구려와 중국을 양분하는 사고다. 중원 문명은 고구려와 함께 형성돼 갔다. 불교의 전파도 양쪽에 동시적으로 왔던 흐름이다. 우리는 역사를 너무 문헌에 기초해 나이브하게 본다. 고구려는 무너진 게 아니라 발해로 바뀌었다. 중국화 때문에 원래의 박력과 생명력을 잃고 드디어 멸망했다는 것은 아주 유치한 엉터리 역사 기술이다. 고조선·고구려 지역에 중원과 대등한 거대한 문명권이 있었다는 것은 지도만 봐도 알 수 있다. 고대 동아시아 질서에 대해 우리는 과도하게 중국 문명을 중심으로 본다. 한자라는 문자를 핵심에 놓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문명을 문자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언어는 문자의 체계가 아니라 사실은 말의 체계, 발음·음성의 체계다. 문자중심주의로 문명을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역사적 인물의 공과(功過)를 함께 보는 것은 바람직한가. 또 가능한가.

 “‘공을 중심으로, 공을 나열해가며 역사를 봐야 국민과 후세가 자부심을 가질 게 아니냐’는 논의는 일본에서 나왔다. 세계 역사학계에서는 그런 식의 논의가 있을 수 없다. 일본이 역사 속에서 너무 많은 심각한 죄를 지었기에 있는 그대로 다 까발리면 일본인들은 정말 나쁜 놈들이 된다. 고대부터 일본 사람들이 역사를 쓰는 방식은 왜곡과 날조투성이다. 모든 인간 행동에는 공과 과가 동시에 있다. 공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도 있지만 과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을 반성하게 할 수 있다. 역사의 공은 역사가가 쓰지 않아도 민담을 통해서든, 무용담을 통해서든 절로 전달된다. 우익·좌익, 진보·보수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좌우지간 보수파들의 대부분의 문제는 개인적인 사태와 역사적인 사태를 혼동하는 것이다. 일제·해방 시대의 좋지 않은 것을 ‘카무플라주(camouflage)’하려는 사람들을 대체로 파보면 부모가 친일을 했다거나 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거는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그 역사를 개인적으로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혼동하면 안 된다. 최남선 선생이 무슨 친일 했다고 해서 최남선 집안이 다 나쁜 놈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등 부끄러워할 것 없이 그 시대 역사를 살았던 사람들이 그런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고 ‘그 시대에서도 이렇게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하자는 것이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자는 것이지 개인적인 공격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역사 자체를 뒤바꿔 놓으면 자기 집안의 문제가 다 덮일까. 우매한 생각이다.”

 -성인관람가·불가 영화가 있듯이 초·중·고에서는 주로 긍정적인 면을 대학에서는 개인적인 치부까지 철저히 가르치면 어떨까.

 “현 교과서에 그런 인간적인 디테일까지 넣었을 것 같지도 않다. 공의·공론·대의를 해치지 않는 방향에서 역사 흐름의 공과를 동시에 서술해야 한다. 예컨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인사를 역사에 세세히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예를 들면 ‘반민특위가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게 아니냐’ ‘조봉암 토지개혁 구상의 기본 방향은 훌륭한 것 아닌가’ 하는 등의 문제를 거시적으로 써서 역사의식을 일깨워주자는 것이다.”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 방식으로 중도·우파·좌파, 고대사·현대사 연구를 대변하는 학자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합의 전까지 못 나오게 하는 것은 어떨까. 사실 역사를 둘러싼 국론 분열이 심각하다.

 “진실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들, 누구나 존경하는 학자들이 한 100명 모여서 한 한 달 동안 집요한 토론을 거칠 수 있다면…. 또 포용성이 넓은 공평한 사람을 우두머리로 삼아 그 지도하에 역사를 멋있게 가다듬을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교과서에 관한 한 그런 공평한 합의의 방식도 사실 나쁠 것은 없다.”

 -중국을 차기 패권국가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미국은 유럽을 능가하는 경제력·군사력·기술력과 힘을 뒷받침하는 이론 과학이 결합돼 명실공히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실력을 보유하게 됐다. 미국의 20세기 패권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패권이다. 각 방면으로 골고루 잘 조합된 패권이다. 그런데 베트남전을 계기로 미국 패권의 도덕성이 근본적으로 무너졌다. 경제도 비도덕적이 됐다. 아직 군사 패권과 학문이 살아 있다. 미국이 세계인에게 주는 실망 때문에 일부가 새로운 ‘빅브러더(Big Brother)’의 등장을 기대한다. 일종의 메시아니즘(Messianism)이다. 새 빅브러더가 중국이 아니냐 하는 예상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중국의 학문 수준이 과학이나 기술 분야에서 아주 독자적으로 미국을 능가하려면 최소한 1세기는 걸릴 것이다. 학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기 때문에 세계인들이 굉장한 착각을 하고 있다. 군사력은 미국 흉내를 좀 낼 만큼은 됐지만 군사력에서도 사실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한 50년 죽어라 노력해야 한다. 미국 경제가 아무리 개판이라고 해도, 중국이 미국 경제를 가지고 놀 만큼 탄탄한 경제를 가지기는 어렵다. 중국의 패권주의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언론 보도를 보면 사이비 종교가 중국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메시아니즘이라든가 현세도피주의(escapism)의 경향성은 계속 있는 것이다. 현실 불만에서 오는 피세(避世)에 가장 걸맞고 가장 에너지를 잘 주는 게 기독교다. 기독교만큼 위대하면서도 유치한 종교가 없다. 현재 공산 이념은 중국 인민에게 ‘마음의 뿌듯함’을 주지 못한다. 어떤 투쟁을 할 적의 공산주의는 무용담으로서 굉장히 뿌듯한 게 있는데 투쟁이 사라진 평상이 되면 뿌듯함이 없다. 그래서 저는 중·고등학교 커리큘럼에서 빨리 사회주의를 빼고 그 대신 사마천의 『열전』 같은 중국 고전으로 채우라고 권한 적도 있다. 대단한 효과를 볼 것이다.

 공산주의의 허망함을 지금 한국의 격렬한 기독교인들이 가서 메워주고 있다.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중국인도 많다. 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한 다음 종교를 정리했는데 정식 기독교 인구가 85만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1억이 넘는다. 앞으로 3억~4억까지는 늘어날 것이다. 당황한 중국 지도부는 불교 같은 재래 종교로 맞불을 놓고 있는데 맞바람 자체가 사이비 기독교보다 더 저열한 형태다. 요즘 돈 번 사람들이 많아져 어떤 출구가 필요한데 에너지가 전부 종교적인 데로 빠지고 있다.”

 -중국은 동아시아 문명·민족의 거대한 블랙홀이다. 그런 중국이 역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공산주의건 기독교건 유래는 서양이다.

 “사실 중국에서 주체성 상실 문제가 심각하다. 중국이 위대한 국가로 다시 태어나려면 문화혁명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해야 한다. 마오쩌둥(毛澤東) 숭배 같은 과거 공산주의 무용담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제대로 된 역사를 쓰고 제대로 된 경전을 가르치고 합리적인 학문체계 발전을 빨리 가속화시키는 총체적인 새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시진핑(習近平)은 그런 프로그램을 추진할 만한 소양과 자격이 있다.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훌륭한 정치 리더십이다. 주변 시스템이 그의 인식을 따라가기에는 낙후돼 있다.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을 어떻게 보는가.

 “우리나라에서 힘 있는 자는 대통령 하나다. 아직 우리나라는 제왕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런 특수성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는 힘이 세기 때문에 국제적인 이니셔티브를 제시할 수 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일을 하실 수도 있는 분이다.”

 -비판도 많이 받고 있다. 가장 억울한 때는.

 “억울함이란 없다. 아무리 억울한 비판이라도 그 비판이 있기 때문에 제가 사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있어야만 박정희가 위대해진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제가 살아오면서 우리 사회에서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원망하는 것은 없다.”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엄청난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지도자로 뽑히는 그런 사회·문화 전반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헌신할 것이다. 그런 선학(先學)의 물줄기는 끊기지 않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념의 경직성 때문에 주체사상만 알면 된다고 생각하는 북한 학생들에게 인류 보편적인 사상을 가르칠 것이다.”

 -학문을 왜 해야 하나. 또 어떻게 해야 하나.

 “학문이 발전한 나라들은 결코 약하지 않다. 우리 민족에게는 상무정신이 필요하다. 머리 쓰는 것만을 학문이라고 하지 말라. 인간이 윤리적으로 강해지는 것, 과학, 체력…. 이 모든 게 학문이다.”

김환영 논설위원
사진=김상선 기자

도올 김용옥은 …

철학자·교수·극작가·번역가·연출가·언론인·한의사·음악인·배우·방송인이다. 1948년 천안 출신으로 본관은 광산이다. 고려대(학사)·국립대만대(석사)·도쿄대(석사)·하버드대(박사)에서 철학을, 원광대에서 한의학을 공부했다. 고려대·서울대·연변대·한국예술종합학교·한신대 등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60권이 넘는 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