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기회도 놓치지 않는 미국 데님산업 선구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55호 2 면

필자는 1999년부터 2004년 5월까지 한국 지퍼업체인 YPP의 미국 법인장을 지냈다. 현지법인 사무실이 있던 건물의 소유주는 태런트 어패럴그룹(Tarrant Apparel Group)이었다. 이 회사의 회장 제라드 구에즈(Gerard Guez·59)와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1997년 창업 10년여 만에 태런트 어패럴 그룹을 미국 의류업계 52위에 올린 창업가다. ‘미국 데님산업(Denim Industry)의 선구자’로 일컬어진다. 기업가 정신 4대 요소(혁신, 위험 감수, 기회 포착, 가치 창출) 가운데 특히 기회 포착에 탁월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대를 앞서가는 사업 방식의 기회 포착 말이다. 구에즈는 탁월한 기회 포착으로 일개 디자이너 브랜드 오너에서 브랜드 디스트리뷰터(대형 유통업체나 백화점에 프라이빗 상표의 독점공급권을 가진 업체)의 거물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제라드 구에즈가 2011년 호프시티(City of Hope)로부터 최고 자선상을 수상하고 있다.

‘블루밍데일’과의 첫 상담이 창업 밑거름튀니지에서 태어난 그는 1976년 20세의 젊은 나이에 달랑 현금 51달러와 일명 프렌치 컷(French-Cut) 진을 갖고 미국으로 이민했다. 영어를 제대로 못했지만 그는 훗날 ‘데님 킹’으로 불리는 자신의 형(폴 구에즈)과 이스라엘 디자이너 새손 라벨의 진(Sasson Jeans) 샘플을 들고 고급백화점 ‘블루밍데일’과 첫 상담을 할 만큼 배짱이 좋았다. 이를 계기로 새손 라벨은 미국 데님 시장을 파고들 수 있었고, 구에즈 형제는 새손 라이선스 사업으로 첫 창업을 성사시켰다. 새손 브랜드는 진부터 시작해 시계·선글라스·가방·부츠 심지어 카세트플레이어에까지 붙여졌고, 마침내 구에즈 형제는 새손 브랜드를 인수했다. 이로써 81년 로스앤젤레스에 새손 진스 엘에이(Sasson Jeans, L.A.)사가 설립됐다. 구에즈는 단 한 번의 블루밍데일과의 미팅 기회를 창업 성공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90년대 초 호황 타고 PB 데님 시장 진출갈등도 찾아왔다. 85년 형의 마약 관련 소송 및 형제 간 소유권 분쟁 끝에 구에즈는 새손을 접게 된다. 하지만 곧 평생의 사업 파트너인 토드 케이(Todd Kay·현재 선라이스 브랜즈사의 부회장)를 만나 훗날 태런트 어패럴 그룹이 되는 태런트사를 설립한다.


?그는 창업 1년 만에 독자적인 디자이너 브랜드 청바지 ‘노진(NO! Jean)’을 통해 작은 성공을 거둔 데 이어 리미티드 익스프레스 부티크(부티크 백화점)의 세븐 버튼 플립 톱 진을 통해 사업을 확장시킨다. 여기서 그는 프라이빗 상표(PB)의 중요성을 깨달아 여성 프라이빗 상표 데님 시장에도 진입한다. 88년엔 회사 이름을 아예 패션리소스사로 개명한다.


?90년대 초 동·서독 통일과 공산권 국가의 붕괴가 잇따르면서 미국은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 부상했다. 게다가 93년 빌 클린턴 정부 출범을 전후로 미국 경제는 호황 국면에 들어섰다. 제라드 구에즈는 이런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디자이너 브랜드로 성공을 맛본 그는 리(Lee), 리바이스(Levi)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가 주류인 시장에서 프라이빗 상표 시장으로의 진입을 결정했다. 그의 선택은 시대의 흐름과 맞아떨어졌다. 대형 소매업체는 낮은 비용 부담에 비해 높은 마진을 주는 프라이빗 상표를 환영했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18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청바지 시장에서 90년 3%였던 프라이빗 상표 비중은 8년 만에 20%로 높아졌다고 한다.


?패션 리소스사는 고객층을 확대하기 위해 제품 라인을 캐주얼 바지, 블라우스, 반바지, 드레스 등으로 확대 보완했다. 매출은 91년 8000만 달러에서 95년엔 2억500만 달러로 급증했다. 제라드 구에즈는 95년 회사 이름을 태런트 어패럴 그룹으로 바꾸어 푸르덴셜증권을 통해 나스닥에 상장시킨다. 그는 46.2%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였다.


활발한 M&A, 멕시코 공장 지어 주가 급등제라드 구에즈는 96년 이후 회사의 판매망 다각화를 위해 백화점 시장으로 진입하기를 갈망했다. 마침내 98년 마셜과 지비아이를 인수하고, 그해 하반기에는 다른 대형 백화점인 제이시 페니(JC Penney Co.)의 상표이자 남녀 데님 의류 메이커인 로키(Rocky Apparel)를 인수했다. 20세기 안에 연 5억 달러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수직계열화 4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의해 그는 99년부터 3년여간 멕시코에 4300만 달러를 투자해 데님 공장을 인수하고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절단, 바느질, 세탁, 마무리, 포장, 운송, 유통 기능과 원단 직조 생산능력까지 갖춘 북중미 최대의 데님업체를 경영하게 됐다. 당시 종업원 수는 6990명에 이르렀다. 그 무렵 태런트사의 주가는 주당 8달러에서 48달러로 뜀박질해 미국 증시에서 가장 빠른 성장주로 각광받았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그의 주 고객사인 리미티드(대형 유통업체)가 대만·한국으로 구매처를 전환함에 따라 생산라인 가동률이 떨어졌다. 여기에다 투자자의 투자 포기와 회수, 멕시코 지진(99년) 등으로 회사 매출은 뒷걸음질했다. 2000년 3억9520만 달러를 정점으로 성장을 멈추고 250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급기야 그는 2001년 10월 회사 CEO를 사임하고 이사회 의장직만 수행하게 된다. 대신 창업 멤버인 홍콩계 에디 탁 유(Eddy Tak Yu)를 CEO로 선출해 경영난 타개를 모색하지만 2002년에도 손실은 600만 달러에 이르렀다.


?그는 결국 2003년 멕시코 공장을 외부에 임대하되 수익 기반을 무역회사 기능과 강력한 디자인 기능을 결합하는 데 두기로 결정했다. 주요 소매 유통업체와 많은 프라이빗 상표 주도권을 갖는 것으로 시작했다. 새로운 자회사 프라이빗 브랜드사를 설립해 아메리칸 랙(American Rag CIE II) 소유의 50개 브랜드의 설계·제조·배포 및 미국 내 의류 판매의 장기 독점 라이선스를 받았다. 아메리칸 랙은 디젤(Deisel), 루스(Ruth), 마크 제이컵스(Marc Jacobs) 같은 빈티지 의류와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었다.


속속 내놓은 브랜드 성공, 고속성장 질주 2008년 이미 사세가 기운 태런트 어패럴의 한계를 파악한 그는 상황에 맞춰 선라이스 브랜즈(Sunrise Brands, LLC)를 설립해 이듬해 태런트 어패럴 그룹을 합병한다. 선라이스는 현재 데님과 니트, 아웃웨어, 가방, 액세서리를 망라하는 브랜드와 프라이빗 상표의 간판 업체로 꼽히고 있다. 유명 브랜드만 해도 아메리칸 랙, 다이앤 길만, 에바 롱고리아, 세븐진 등을 꼽을 수 있다.


?당시 대부분의 데님업체가 중국·아시아로 생산라인을 옮기거나 아웃소싱할 때 자체적으로 수직계열화를 꾀했다. 오히려 북중미 생산시설을 증설하고, 고객 서비스센터를 확대해 일자리를 창출했다. 제라드 구에즈가 미국 데님산업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유다. 데님산업 발전에 공헌한 것이다.


?태런트 어패럴 그룹은 98년 포브스가 선정한 ‘글로벌 300대 중소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그 이유는 99년 구에즈의 포브스 인터뷰 발언에 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행동을 발사할 미사일을 기다리지 말라!(You don’t wait for the missile to launch to make your move!)” 바로 기회 포착이다.


글·사진=김대진 에이치에스알엔젤(유) 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