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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터치! 펀드·자산관리까지 OK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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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호 3 면

“금융 서비스는 필요하지만 은행이 필요하진 않다(Banking is necessary, banks are not).” 1994년 인터넷 태동기 때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예견은 현실이 됐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이용하면 은행 없이도 얼마든지 송금·결제·대출을 받는 시대다. 소비자 중심의 금융 서비스를 만드는 기술, ‘핀테크(Fintech)’가 금융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16조5200억원.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이달 11일 광군제(光棍節)에 달성한 매출액이다. 지난해보다 59.7% 상승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온라인 쇼핑업체의 1분기 전체 거래액(12조3650억원)을 가뿐히 뛰어넘는 수준이다.

신용카드와 스마트폰을 융합한 ‘삼성페이’ MST(마그네틱보안전송) 방식을 지원한다. 기존 신용카드 단말기에 앱이 깔린 스마트폰을 갖다 대기만 하면 결제가 완료돼 편리하다.

금융 서비스 영역 확대성공의 중심에 알리바바의 결제시스템 ‘알리페이(支付?)’가 있다. 알리페이는 돈을 충전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전자지갑’이자 ‘전자화폐’다. 올해는 전체 구매의 68%가 스마트폰·태플릿PC 등 모바일 기기로 이뤄졌는데 알리페이 결제 건수는 7억1000만 건에 육박했다.


중국에서 알리페이는 이미 화폐를 대신한다. 오프라인 쇼핑은 물론 택시비나 전기료·수도요금도 낸다. 쓰고 남은 돈을 알리페이가 제공하는 위어바오(余?)에 넣으면 단기 투자로 돈을 불릴 수도 있다. KOTRA 상하이무역관 강민주 과장은 “중국인이 손에 지갑을 들고 다니는 풍경은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알리페이처럼 금융에 기술을 더해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핀테크라고 한다. 인터넷·모바일 뱅킹, 자동차 다이렉트 보험 등이 우리에게 익숙한 핀테크다. 적립식 선불카드나 근거리무선통신기술(NFC) 또는 마그네틱 결제방식을 활용하는 여러 종류의 ‘○○페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근 발전 양상이 과거와 사뭇 다르다. 송금·결제처럼 1차적인 ‘전자금융’에 국한됐던 핀테크가 펀드·자산 관리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까지 확대되면서 금융 전달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전자금융이 금융시스템을 발전시킨 ‘지속적 혁신’이라면 핀테크는 기존의 금융업 가치사슬을 뒤바꾸는 ‘파괴적 혁신’의 속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알리바바와 같은 IT기업과 통신사,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이 신(新) 핀테크 시대를 이끄는 동력이다.


?금융 서비스는 꼭 은행이 해야 할까. 아프리카는 예외다. 케냐에서는 통신사 사파리콤이 제공하는 ‘엠페사(M-Pesa)’로 송금·결제·대출이 가능하다. 케냐는 2000년대 중반 인구 5분의 1만이 은행계좌가 있고, 현금을 뽑는 자동화기기(ATM)는 고작 700대에 불과했다. 엠페사는 케냐 국민의 70% 이상이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 대표적인 핀테크 사례다.

소액 송금 가능한 앱 인기이용법은 간단하다. 서비스 가입은 유심(USIM)으로 하고 전화번호를 계좌번호 삼아 돈을 거래한다. 수퍼마켓이나 잡화점, 엠페사 대리점 등 수만여 곳의 제휴사에서 ‘은행 지점’처럼 현금을 넣고 뺀다. 다른 케냐 통신사도 가세하면 약 2500만 명이 서비스에 가입했다. 최근 경제전문지 포춘은 ‘세계를 바꾼 51대 혁신기업’ 중 1위로 사파리콤을 선정했다. 새로운 금융 서비스로 경제 활성화와 투명화 등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는 평가에서다.


금융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요즘 ‘벤모 해줘(Venmo Me)!’란 말이 유행이다. 벤모는 소액 송금이 가능한 애플리케이션 이름인데, 고유명사처럼 “비용을 나누자”는 뜻으로 사용된다. 벤모에 계좌나 신용카드를 등록하면 스마트폰에 저장한 전화번호나 e메일만으로 송금할 수 있다. 미국 내 은행 이체수수료는 ‘바가지 수준’이라 불릴 정도로 비싼 반면 벤모는 수수료가 없거나 많아도 2.9%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능을 담아 결제 사실을 공유하고 댓글을 달며 놀기도 한다. 특히 젊은층이 벤모에 열광한다. 올해 2분기 송금액은 1조8000억원, 1년 전과 비교해 세 배 이상 늘었다.


국제 송금도 핀테크를 만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영국의 핀테크 스타트업 트랜스퍼와이즈는 은행을 거치지 않고 사람을 연결해 수수료를 1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즉 A라는 국가에서 B라는 국가로 돈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비슷한 금액을 B에서 A로 보내고 싶은 사람과 짝지어 각 나라에서 돈을 주고받게 한다. 인터넷과 SNS로 연결된 ‘초연결사회’라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핀테크 모델은 은행의 기능과 역할을 축소시킨다. 송금과 결제에 활용하는 핀테크는 대부분 기존 은행의 금융 플랫폼을 이용한다. 반면에 펀드·자산 관리에 적용하는 핀테크는 다르다. 기존 은행의 ?틈새 시장?을 절묘하게 파고들어 은행의 돈을 끌어내고, 몸집을 불리며 서비스를 흡수한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핀테크 플랫폼이 확대되면 은행이 내로 뱅킹(narrow-banking)으로 위축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은행 주요 수익은 예금과 대출의 순환을 통한 차익(예대마진)에서 나온다. 만일 상대적으로 낮은 수수료와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핀테크에 가계나 기업가가 몰리면 은행은 입출금 등 단순한 지급결제 업무만 다루면서 지금보다 규모나 역할이 훨씬 축소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중(crowd)이 만드는 기금(fun ding)이란 뜻의 크라우드 펀딩은 이런 새로운 흐름을 대표한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평가해 사업자금을 모금하는 킥스타터에는 지난해 2만2252건의 프로젝트가 등록돼 모두 5800억원의 투자금이 모였다. 스마트 워치인 패블,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오큘러스 리프트 등이 킥스타터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성공이란 단맛을 봤다. 미국의 렌딩클럽은 개인 간 거래를 매개한다. 투자받길 원하는 사람이 신용정보와 함께 신청서를 작성하면 렌딩클럽의 자체 심사를 거쳐 A~G까지 등급을 매긴 뒤 온라인에 올린다. 수익률은 4~10%로 은행보다 높고 연체율은 3~4%로 일반 대부업의 절반 이하라 개인은 물론 기업의 투자도 활발하다. 미국 전 재무장관인 로런스 서머스는 “향후 중소기업 대출의 70%를 이런 형태의 금융이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랜딩클럽 이사회 소속이다.


은행 규모·역할 점점 축소‘은행 VIP 고객의 전유물‘이던 자산관리 서비스도 핀테크를 통해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다. 보유 자산, 은퇴 유무, 투자 성향에 따라 투자 자문이나 금융상품 비교 등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제시한다. 비교적 자산이 적은 20~40대 젊은 층이 주 고객이다.


기존 은행이 핀테크 부서를 만들고, 스타트업을 지원·흡수하며, 기술 확보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이유다. 김 선임연구원은 “디지털 혁명으로 금융 서비스도 공급자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다”며 “핀테크 모델을 적극적으로 흡수할 것이냐 아니냐가 미래 은행의 생존을 결정 지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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