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토론, 흥겨운 축제 … 과학적 호기심 쑥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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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호 8 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중견기업 휴게실, 식후 커피 한잔을 즐기며 삼삼오오 수다가 한창이다. 가벼운 스포츠·연예 이야기부터 정치·경제·사회·국제분쟁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가 오간다. 여기에 ‘과학’은 없다. 성인의 대부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과학과 단절된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부터 얼마 전 서울에 내린 첫눈까지 일상 속 어느 하나 과학과 관련되지 않은 게 없지만 ‘과학은 과학자가 하는 것’이란 인식이 강하다. 정부는 이 편견을 바꾸려 한다. 실험실 밖으로 과학을 끄집어내 일반 대중에게 흥미를 불어넣는다는 계획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마션(원제 The Martian)’은 과학 이론에 줄거리를 입혀 영상으로 만들었다. 관객들은 주인공이 무슨 옷을 입고 누구와 사랑에 빠졌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오로지 ‘화성’이라는 과학에 집중한다. 사실에 최대한 가깝게 쓰인 시나리오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감수를 받으며 더욱 정교해졌고, 관객은 여기에 열광했다.


남녀노소 어울려 과학 얘기 나눠 우리나라에서만 500만 명에 가까운 관람을 이끌어낸 이 영화의 시작은 간단한 질문이었다. ‘화성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과학문화는 이러한 간단한 호기심에서 시작한다. 호기심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등굣길에, 직장 동료와의 티타임에, 저녁식사를 준비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모든 호기심이 곧 과학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안타깝게도 이런 호기심이 입 밖으로 나와 토론으로, 실험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


 영화 ‘마션’이 미국에서 제작된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 할리우드라는 제작 환경이 있기도 하지만 제작사가 투자 결정을 내린 건 대중이 과학을 관람할 거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감의 배경엔 과학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이 있다. 이를 가능케 한 건 정부와 민간단체의 다양한 활동이다. 그 대상은 학생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직장인은 물론 주부와 노인까지 훌륭한 예비 과학자로 생각한다.


?일례로, 미국 애리조나주의 과학센터(Science Center)에서 운영되는 ‘Adult Night Out’이란 프로그램은 성인만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토론회다. 퇴근한 직장인들이 편하게 모여 과학적 호기심과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덴버주의 자연과학박물관(Museum of Nature&Science)은 직장인들을 위해 폐장 후 특별 전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영국은 과학문화 저변이 가장 잘 갖춰져 있는 나라다. 과학자들이 먼저 ‘대중을 이해시킨다’에서 ‘대중과 함께 즐긴다’로 인식을 바꿨다. 효과는 대단했다. 1981년부터 시작된 ‘영국과학축제(British Science Festival)’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과학·공학·기술 관련 축제로 발전했다. 축제기간 동안 강연자만 300~400명에 이르고, 수천만 명이 참여한다.


일반인이 주도하는 ‘사이언스 카페’ 과학자들이 엘리트주의를 버리자 일반인이 먼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른바 ‘사이언스 카페(Science Cafe)’다. 98년 처음으로 시작된 이 모임의 원칙은 단 두 가지다.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학술적인 장소가 아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학 분야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 일상적인 장소에서 비전문적 용어를 사용하며 ‘열린 결말’로 끝난다. 과학적 지식 없이도 자유롭고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다. 현재 영국에만 40개 이상의 모임이 있으며, 대부분은 펍이나 카페에서 개최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열리며, 참석 비용은 물론 예약도 필요 없다.


민관 합작 회사 ‘대화하는 과학’ 또 다른 과학 강국인 독일은 민관의 공조가 유기적으로 이뤄진 사례다. 과학문화 확산만을 목적으로 하는 민관 합작 회사를 세웠는데, 회사 이름부터 ‘대화하는 과학(WiD·Wissenschaft im Dialog)’이다. 일회성 전시 프로그램에 그치는 게 아니라 매년 각 도시를 순회하며 1주일간 하계 과학축제를 개최한다. 이름은 과학축제지만 내용은 보다 다양하다. 과학 관련 전시와 강연을 비롯해 영화, 음악, 예술이 어우러진다.


?특징적인 부분은 ‘모두를 위한 과학’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강연이다. 과학자는 아무런 강연 내용을 준비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질문이든 3분 내로 대중의 질문에 답한다. 과학자들이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모든 국민 과학탐구활동 지원 우리나라 역시 과학문화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 주 수혜자는 청소년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내년도 사업으로 현재 운영 중인 과학문화 사업의 대상을 청소년에서 직장인·주부·노인을 아우르는 전 연령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운영 중인 청소년 과학탐구활동 지원 사업은 청소년뿐 아니라 전 연령으로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과학탐구활동 지원 사업은 한 해 동안 주제에 관계없이 과학탐구활동을 하면 활동비로 소액을 지원한다. 현재는 초·중·고 과학 동아리로 지원이 집중된 경향이 있다. 내년부터는 일반 성인 과학동호회로도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학생과는 달리 과학실이 없는 일반 성인은 ‘무한상상실’을 이용하면 된다. 무한상상실은 일반인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3D 프린터를 비롯한 각종 과학·기술 장비를 갖추고 있다.


?퇴근시간을 고려해 정규 운영시간이 끝난 과학관에서 직장인을 위한 야간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 현재 전국 119개 시·군·구 2824곳에서 운영되는 ‘학교 밖 과학교실’은 주부·직장인의 참여를 더욱 활성화할 예정이다. 현직 과학자가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하는 ‘사이언스 톡톡’ 역시 일반 성인과의 소통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