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세계화는 이미 하나의 상수(常數)가 된 개념이다. 이달 중순 미국 동남부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듀크 대학에서는 이 문제에 직접 다가선 학술 컨퍼런스가 있었다. 지난 12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 이 국제회의는 미국의 KLA(Korean Literature Association)가 주최하고, 미국 전역에 있는 한국문학 연구자들이 참석해 발표와 토론을 벌인 뜻깊은 자리였다. 한국에서 유학을 왔거나 이미 미국에 정착해 이름 있는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이들이 영어로 토론을 했다.
한국문학이 미국의 명문대학에서 영어로 논의되는 현장은, 만만찮은 감동과 함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다. 문학 또한 비좁은 국가주의의 울타리를 넘어서 광활한 국제 경쟁의 무대로 나가야 옳다. 그러자면 문학의 교류와 확산, 번역과 출판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중심부로 진입하거나 그토록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노벨문학상에 근접하자면, 이와 같은 활동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근자에 이 분야의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한국문학번역원은 이번 컨퍼런스의 한 세션으로 작가 강영숙과 그의 소설 『리나』를 내놓았다. 강 작가가 한국에서 날아왔고 필자는 그와 그 작품의 설명을 맡았다. 미상불 『리나』는 현재 한국문학의 대표적 작품으로 여기에 제출해도 충분할 만큼 볼품이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동북아의 가상공간을 배경으로 16세의 어린 소녀가 8년의 세월을 두고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실명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보아도 그것이 탈북의 상황을 말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작가는 탈북이라는 시대사적 문제를 다루면서, 그보다 더 큰 비중으로 그 사건의 외피에 가려진 인간성과 여성성의 파쇄를 보여주었다. 분단 70년에 이른 역사적 과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를테면 한국문학이 운명처럼 끌어안고 있는 ‘체험’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 인간의 권리와 삶의 질에 대한 깊이 있는 형상력은 ‘본질’의 영역을 그린 것이다.
『리나』가 한국문학의 오랜 관습적 굴레를 포괄한 채로, 새로운 의미망의 심층적 서술을 체현한 것은 큰 걸음의 진전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것이 영문학의 현장에 토론의 자리를 마련한 시도도 좋았다. 해외의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문학 세계화의 유용한 길목이 거기 있었다. 미국의 달키 아카이브 출판사의 임원 제이크 스나이더는 『리나』와 더불어 한국문학의 우수한 문학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출간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문학의 영문 번역에 대한 이와 같은 약속은 매우 고무적이고, 이 학술모임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게 했다.
듀크 대학 컨퍼런스 참석 이전에 방문하고 강연을 한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도, 한국문학과 북한문학에 관심을 가진 수십 명의 미국인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의 문화정책은 이 대목에 유의해야 한다. 그렇다. 한국문학에 비상의 날개를 달아주는 일을 모국어의 강역(疆域)에서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글로벌의 문턱을 넘어섰고, 문학은 이를 뒤쫓아 가기에도 바쁜 형국이다. 남북한 문학의 소통과 접촉 면적의 확대 또한, 해외에서 한글로 창작되는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과의 연대를 통해 미개척의 지평을 열 수 있다.
이러한 한민족 문화권 문학에의 인식은,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좇을 수 있게 할 것이다. 곧 민족적 화해협력의 문학적 버전이 그 하나라면, 한국문학 세계화의 실질적 범주 확보가 다른 하나다. 한국의 근대화와 경제개발이 성과를 이룬 만큼 국제적 관계성의 구축도 그러했더라면 하는 여러 유형의 복기(復棋)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문학의 세계화에 역점을 두고 실행을 모색하면, 후대에서는 그와 같은 후회를 없애거나 줄일 수 있을 터이다.
김종회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