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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리포트] 또래 간 성문화 개선을 위한 청소년 토론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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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간 성폭력 문화 개선을 위한 청소년 100인 원탁 토론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성폭력 문제에 대해 팀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24일 성폭력 추방주간을 맞아 ‘또래 간 성폭력 문화 개선을 위한 청소년 100인 원탁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주관으로 학교 추천을 받은 아동·청소년 100명이 한자리에 모여 평화로운 또래 성문화 만들기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였는데요. 앞서 초·중·고 5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또래 간 성폭력 실태에 대한 온라인 조사’에서는 청소년 10명 중 3명이 또래 간 성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의 열기가 정말 뜨거웠습니다.

훔쳐보기, 옷 벗기기…청소년 10명 중 3명 또래 성폭력 경험

토론회에 모인 100명의 청소년에게 사회자가 "또래 간 성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자 94명의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10명 중 9명 이상이 경험했다고 대답한 거죠. 앞선 온라인 조사와는 왜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요? 성폭력에 관심을 갖고 참석한 이 100명과 달리, 온라인 조사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또래 간 성폭력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을 그저 장난이나 놀이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이런 상황에선 피해학생은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가해학생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할 기회가 없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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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성폭력을 놀이·장난으로 여기는 경우 많아

"남학생이 여학생 화장실에 들어와 훔쳐봐요.”

"급수대에서 물을 먹고 있는데, 친구들이 달려와 옷을 벗기려 했어요.”

"카카오톡 단톡방에 친구를 초대해 야한 사진을 공유하고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SNS에서 의도치 않게 야한 사진이나 상업적인 광고를 보게 돼요.”

다양한 또래 성폭력에 대한 사례가 쏟아졌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 남자 고등학생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친구가 신체부위를 보며 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소문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순식간에 다른 반 친구들에게 들어갔고 심지어 선생님도 알게 됐다”며 얼굴을 붉혔습니다. 이렇게 오늘날에는 학교에서 직접 육체적으로 겪는 또래 간 성폭력에서부터 연락을 주고 받는 전자기기(컴퓨터·스마트폰 등)를 통해서도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외모를 가지고 친구를 놀리는 작은 폭력부터, 벌칙으로 좋아하지도 않는 친구에게 강제적으로 고백하게 하는 행위, 메신저를 통해 야한 사진을 주고 받으며 협박하는 행위들까지 아동·청소년들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는 거죠. 하지만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행동들이 어느 순간 상대방을 위축들게 만들고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면 그건 ‘또래 간 성폭력’이 됩니다.

온라인 조사에서 실제로 또래 간 성폭력으로 볼 수 있는 상황 유형 10가지를 보여주고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묻는 문항에 31.9%의 학생들이 1개 이상이 있는 것으로 체크했습니다. 성적인 농담이나 외모를 갖고 놀리는 것부터 민감한 신체부위를 만지는 행위 등에 대해 10명 중 3명 이상이 이러한 경험이 있다고 말한 거죠. 그런데 이런 구체적인 상황 설명 없이 "또래 간 성폭력 경험이 있느냐”고 물어봤을 땐 564명 중 단지 16명(2.8%)만 경험했다고 답했어요. 이러한 결과는 아직 많은 학생들이 ‘또래 간 성폭력’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청소년이 또래 간 성폭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받는 성폭력 교육이나 보건 시간에 배우는 성교육이 심각하고 자극적인 내용을 위주로 다루다 보니 ‘내가 당한 경험은 이런 것들에 비해 약한 거지…’라고 생각해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친한 친구들이 치는 장난에 발끈했다가는 오히려 놀림감이 될 수 있어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TV 프로그램에서도 나타납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여러 명이 함께 달려들어 한 연예인의 바지를 벗기고 다 같이 웃기 시작합니다. 해당 연예인이 화를 내면 그걸 가지고 또 놀리는 모습이 나오죠. 대중매체에서 또래 성폭력이 우스꽝스럽게 보이니 실제 현실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때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사실은 설문조사 결과로도 나타났습니다. 또래 간 성폭력 발생 원인에 대해 ‘장난이나 놀이처럼 가벼운 사건으로 취급해서’라고 응답한 비율이 72.2%로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이명화 센터장은 “아동·청소년 또래 간 성폭력은 청소년들의 문화 속에서 놀이나 장난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을 방치할 경우 향후 더 큰 성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토론회를 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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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대표자들이 무대로 나와 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성폭력 없애기 키워드 ‘성교육’, ‘역지사지’

또래 간 성폭력을 없애기 위한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자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서로 처음 만난 학생들인데도 한 사람이 입을 열면 여기저기서 추가의견들이 붙었습니다. 어떤 테이블에서는 박수갈채가 나오기도 했죠. 학생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키워드는 ‘성교육’, ‘역지사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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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에 대해서는 특히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참석자 대부분이 “현재 학교에서 받고 있는 성교육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죠. 문현고 민병웅 학생은 “얼마 전에도 성교육을 받았는데 10년 전에 봤던 영상을 틀어줬다. 강사가 앞에서 혼자만 강의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천왕중 안수진 학생이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신의 학교에서 했던 ‘참여형 성교육 프로그램’을 제시했습니다. 성교육과 관련된 스피드 퀴즈나 O·X 퀴즈, 연극 등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면 그 기억이 오래 남고 집중도 잘 된다는 것입니다. 안수진 학생은 “스피드 퀴즈 중 ‘자위’라는 단어가 나오자 ‘남자가 하는 거!’라고 설명했는데, 당시 선생님께서 그건 잘못된 설명이라며 정정해 주시고 이유를 알려 주신 것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금옥여고 안소현 학생은 ‘성교육’에 앞서 ‘성’에대한 교육이 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이의 탄생과 같이 숭고한 성에 대한 교육을 할 때는 친구들이 진지하게 임하지만, 큰 흐름과 관계 없이 뚝 떨어져 시행되는 성교육은 허점이 너무 많아 학생들이 우스꽝스럽게 생각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죠.

역지사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습니다. 인천에서 온 한 남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였고 목격자였으며 가해자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제 방법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보람이 있네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 사이에서 박수 갈채가 쏟아졌습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한 학생은 “역할극을 통해서 세 가지 역할(가해자·피해자·목격자)을 간접 체험해 보는 것도 성폭력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평등한 또래 성문화 만들기 ‘100인 제안문’

토론에서 나온 키워드와 의제를 토대로 100인 제안문이 완성됐습니다. 건전한 성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청소년·국가·정부(사회)·학교에서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의제였죠. 그 내용을 살펴볼까요?

먼저 청소년은 올바른 인식을 갖기 위해 주어진 성교육 이수시간에 성실하게 임하며 또래 간에 과도한 신체접촉을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국가는 일반적인 학교 안에서의 교육보다 성 특화시설의 교육을 활성화하고, 개인에게 맞는 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제안이 보이네요. 정부(사회)는 성교육 시간을 늘리고 감시를 강화하는 등 기존 정책을 보완·개선해야 하고요. 또 성교육의 날을 만들어 성폭력 예방과 성의 중요성 등을 국민에게 알려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학교는 성적 위주의 교육 체제에서 벗어나 문화 활동, 인성 교육 등을 실행해야 한다고 100인의 청소년들은 제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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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을 통해 모인 키워드는 100인 제안문으로 만들어져 정부 및 각 부처 관계 기관 등에 전달, 청소년 성폭력 예방정책에 반영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원탁토론에서 청소년들의 목소리로 모인 의제는 ‘청소년 100인 제안문’의 형태로 정부 및 각 부처 관계 기관 등에 제안해 청소년 성폭력 예방정책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글=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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