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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관계, 중국의 속내는 달라졌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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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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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베이징특파원

심심찮게 나오는 중국 경사론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관계는 강화하는 게 옳다. 이유를 들자면 한이 없지만 정부 당국이 부쩍 강조하는 게 중국 역할론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통일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점을 열심히 중국에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북한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엄격한 북핵 불용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걸 외교 성과로 내세우기도 한다.

 과연 중국은 종래의 대북 정책을 버린 것일까. 중국의 속내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달 중순 상하이(上海) 사회과학원과 주상하이 총영사관 주최로 열린 한반도 관련 포럼에서다. 한 참석자의 말처럼 판에 박은 말만 오가기 십상인 베이징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갔다.

 적지 않은 대목에서 중국의 전문가들은 한국과는 다른 견해를 보였다. 장기 중단 상태인 6자회담에 대한 인식차가 그랬다. 왕판(王帆) 중국외교학원 부원장은 “6자회담 재개에 너무 높은 문턱을 설정해 두고 있다”며 “그 사이 미국은 동맹을 강화해 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볜샤오춘(邊曉春)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세계연구소 부소장도 “주변국의 북한에 대한 요구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밍(劉鳴) 상하이 사회과학원 국제관계연구소 부소장은 “이 상황이 장기화되면 북의 핵 능력이 계속 증진돼 심각해지는데도 미국은 대화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에 책임을 묻는 이 발언만 놓고 보면 친북 인사처럼 보이지만 평소 성향이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고 오히려 한국 관료·학자들과의 접촉이 잦은 사람들이다.

 한·미의 요구 사항인 대북 압박 강화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류 부소장은 “중국은 2006년 2차 핵실험 때에도 북한을 강하게 비난했지만 2년 뒤 대규모 경제협력을 제시하며 정책을 전환했다”며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이 방북한 건 북한에 양보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과의 관계를 완전 단절하면 아주 위험해질 뿐 아니라 중국의 대북 영향력도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볜 부소장은 “보류 상태인 대규모 경제협력을 진행시켜 한반도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왕 부원장은 “심각한 사태가 안 생기도록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까워진 한·중 관계와 함께 전략적 소통의 범위가 넓어진 건 틀림없다. 하지만 중국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전문가가 한국 정부의 희망이나 기대와는 다른 인식을 갖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필자가 보기에 중국인들은 대체로 “북한이 사고만 안 치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더 이익”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다분히 통일보다는 현상유지 지향적인 사고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논리를 우리가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중 관계가 좋아진다고 저절로 중국이 우리 입장을 따라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영준 베이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