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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상상해 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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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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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
작곡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상상해 봐요 천국이 없다고/ 쉬워요 해보면/ 우리 밑엔 지옥이 없고요/ 우리 위에 있는 건 그냥 하늘이라고요/ 사람들은 오늘을 사는 거라고 상상해 봐요”

 “상상해 봐요 국가가 없다고/ 어려울 건 없어요/ 죽일 일도 죽을 일도 없겠죠/ 또 종교도 없다고요/ 사람들은 평화롭게 자기 삶을 산다고 상상해 봐요”

 “내가 몽상가라고요?/ 하지만 나뿐만 아니에요/ 언젠간 당신도 나같이 되길 바라요/ 그럼 세상이 하나가 되겠죠”

 “상상해 봐요 ‘내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을는지요/ 탐내거나 주릴 일이 없겠죠/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되고요/ 가진 것을 모두 나눈다고 상상해 봐요”

 (마지막 연은 셋째 연과 동일)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다발 테러가 일어났다. 139명이 죽었다. 다음 날 아침 한 남자가 자전거 뒤에 피아노를 끌고 파리에 왔다. 음악가인 그는 독일 콘스탄츠에서 소식을 듣고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음악을 하기 위해 밤새 달려왔다고 한다. 89명이 죽어 가장 참혹했던 현장, 바타클랑 극장에 온 그는 거리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이었다.

 소식을 들으면서 항상 건성으로 듣던 그 가사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위의 가사였다. 정보에 의하면 이 노래는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가장 많이 불린 노래 100곡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렇게 사랑받는 노래인데 막상 번역을 하면서 보니 이 노래를 미워할 사람도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종교인들과 신앙인들이 분개할 것이다. “천국이 없다니? 지옥이 없다니? 그냥 오늘을 살 뿐 내세가 없다고? 너야말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자로구나” 하는 반응이 쉽게 예상된다. 신앙이 절대화된 나머지 자신이 믿는 천국을 위해 자살테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이 노래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리라.

 정치가들도 이 노래가 불편할 것이다. “온갖 이념과 관심이 들끓는 세상을 그래도 이만큼 이끌어 가느라 무진 애를 쓰는데 국가를 부정하다니? 그런 노래를 부르는 자는 어느 나라의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어떤 위정자는 바로 이런 국가관을 바로 잡기 위해서 ‘올바른’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할는지 모르겠다. 수천 년을 뿔뿔이 흩어져 떠돌다가 간신히 국가를 세운 이스라엘 사람들, 그리고 그들 때문에 대대로 살던 자신의 삶의 터전을 뺏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들으면 어떨까? 아마 남의 얘기로밖에 여기지 않을 것이다. 애써 국가를 자처하는 IS는?

 소유가 많은 사람도 이 노래에 코웃음 칠 것이다. “네 것 내 것이 없다고? 그러면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것 같으냐? 내가 애써서 모은 것을 왜 너에게 줘?” 땅부자, 주식부자들은 말할 것이다. “너희는 세상을 모른다.”

 존 레넌은 어쩌자고 이렇게 불편한 노래를 지었을까? 이렇게 불편한 노래가 어떻게 가장 사랑받는 노래가 되었을까? 무엇을 노래하기에 바타클랑 앞에서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이 노래에 눈물을 훔쳤을까?

 다행히 이 노래는 상상하라고만 하지 투쟁하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하기는 예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 것에 대한 상상이다. 상상이니까 이렇게 무엄하고 불온하고 철없이 노래할 수 있다. 상상마저 현실과 다름없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면 얼마나 숨이 막힐 것인가? 이따금 발칙한, 또는 엉뚱한 상상으로 현실을 뒤집어볼 수도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팍팍한 오늘을 딛고 보이지 않는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없는 것을 노래하므로 지금은 무엇을 노래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소수의 사람이 하면 몽상이지만 이 노래가 말하듯 모두가 같은 상상을 하면 그것은 언젠가 현실이 된다.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나온 역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고 외친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비롯한 많은 이의 상상에 의해 이루어졌듯.

 ‘이매진’이 지난 세기 동안 가장 많이 불린 노래 중 하나라고는 해도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종교도 국가도 소유도 완강하니까. 점점 더 완강해져 가고 있으니까. 테러 이후 국경들은 더욱 봉쇄되고 성전(聖戰)을 외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만 간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얼마나 더 오래 이 노래를 불러야 할까?

이건용 작곡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