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페셜 칼럼 D

YS, 선배들에게 칼 휘두른 '돈키호테' 홍준표 불러 격려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5.11.23 19:38

정철근 기자 중앙일보 에디터

‘중단 없는 사정(司正),성역 없는 사정’
김영삼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부정부패 척결을 주요 과제로 내걸었다.집권 기간 내내 검찰의 대형 수사가 이어졌다.과거 정권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거물급들이 줄줄이 소환돼 검찰수사를 받고 구속됐다.당시 검찰에 출입했던 나는 ^슬롯머신 사건 ^율곡사업 비리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한보그룹 비리 ^YS 차남인 김현철 조세포탈 사건 등을 현장에서 취재했었다.

문민정부의 사정은 과거엔 성역으로 치부됐던 전직 대통령,군장성,거물 정치인까지 건드렸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그 전엔 관행적으로 묵인돼온 권력자의 금품 수수를 처벌하면서 사회 전체를 한단계 깨끗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하지만 부정부패를 뿌리 뽑기 위한 제도적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한계도 노출했다.결국 정권 말기엔 측근 비리와 아들의 구속으로 문민정부의 부정부패 척결은 빚이 바래기도 했다.

문민정부 사정의 출발은 1993년 동화은행 비리 수사였다.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안영모 전 동화은행장의 구속은 ‘6공 실세’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의 신호탄으로 비춰졌다. 안영모 전 행장의 진술을 통해 장관,의원 등 정치권에 로비자금으로 수억원씩 흘러들어간 사실이 드러났다.이원조·김종인 전 민자당의원,이용만 전 재무장관 등 6공 경제실세들의 이름이 수면위로 떠올랐다.하지만 검찰은 김 전 의원만 뇌물수수등 혐의로 구속했을 뿐 해외도피한 ‘금융가의 황제’ 이원조씨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리로 종결했다.이 때문에 동화은행 비자금 수사는 딱 떨어지는 자백을 받아놓고도 정치자금을 주물렀던 이씨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난과 함께 법집행의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검찰 선배까지 칼을 댄 홍준표
YS,홍 검사 격려해 힘 실어줘

그해 4월 슬롯머신업계 대부 정덕진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주임검사는 나중에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델이 된 홍준표 경남지사였다.검찰은 90년 ‘범죄와의 전쟁’ 당시 정씨를 조직폭력배의 대부로 지목만 하고 수사하지 못했었다.홍준표 검사는 당초 정씨 형제의 세금포탈 사건에서 수사초점을 정·관계 비호세력으로 확대했다.이 수사는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의 구속 등 고검장급 간부 3명이 옷을 벗는 검찰사상 초유의 사태를 몰고왔다.검찰 내부에까지 칼을 들이댄 것은 그 때까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일개 검사가 이를 주도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기획이었다.홍준표 검사가 고검장 3명의 이름을 보고하자 이 부분 수사는 대검 중수부로 넘어갔다.홍 검사는 중수부로 잠시 파견을 갔지만 ‘왕따’를 당하는 분위기였다.함께 식사를 하자고 말을 건네는 선배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검찰 내부에서 선배들에게까지 마구 칼을 휘두르는 ‘돈키호테’같은 평검사를 곱게 볼리가 없었다.하지만 나중에 YS는 홍 검사를 불러 격려했을 정도로 이 사건 수사에 힘을 실어줬다.결국 검찰내 경기고,호남,TK 인맥을 대표하는 고검장들이 구속되거나 사직했다.그 뒤 정·관계의 슬롯머신 비호세력에 대한 수사는 거침이 없었다. ‘6공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전 의원,안기부 기조실장을 지낸 엄삼탁 전 병무청장 등 고위층 10명이 구속됐다.박씨는 ‘표적수사’ 라고 반발했고 이때부터 문민정부 사정엔 ‘표적사정’이란 꼬리표가 따라붙었다.그러나 정치인·검찰·안기부까지 건드린 슬롯머신 비리 수사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사정 한파는 군사정권 30년동안 성역으로 남아있던 군에도 예외없이 몰아쳤다.단군 이래 최대 방위사업인 율곡사업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수사 결과 무기도입 과정에서 군수뇌부가 무기상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2000여억원의 국가예산을 낭비한 사실이 드러났다.비리에 연루된 장성들의 별 숫자를 합치면 23개나 되는 장군들이 철창에 갇혔다.수사과정에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전별금’ 명목으로 장성들에게 수억원대를 뿌린 사실도 드러났다.
95년 10월 민주당 박계동의원이 은행차명 계좌를 흔들며 노태우 전대통령이 4000억원대의 비자금을 은닉했다고 폭로했다. ‘역사 바로세우기’란 이름으로 진행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단죄의 서막이었다. 이 수사로 ‘성공한 쿠데타’였던 12·12사건이 군사반란으로 자리매김됐다.5·18광주민주화운동도 새로 조명됐다.전씨는 무기징역에 추징금 2205억원,노씨는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4억원이 확정됐다.이는 그 이전에 관행적으로 이어져왔던 기업과 권력의 정경유착을 상당히 위축시키는 계기가 됐다.그 뒤 정경유착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노골적으로 요구하거나 알아서 자진납부하는 행태는 확 줄었다.

차남 현철도 조세포탈로 구속
심재륜 "사표 써놓고 수사했다"

정권 말기인 97년엔 한보그룹 비리사건이 터졌다.이른바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33명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당시 세간엔 한보그룹 비리의 배후에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앞서 구속된 홍인길 전 총무수석은 “나는 깃털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겨 ‘몸통’이 따로 있는 듯한 여운을 남겼다.중수부장이 심재륜씨로 교체되면서 ‘깃털’만 건드린 한보그룹 비리 수사는 재개됐다.수사 결과 김현철씨와 한보그룹 비리의 연결고리는 나오지 않았다.하지만 검찰은 김씨가 선배 기업인들에게 정치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은 혐의에 최초로 조세포탈죄를 적용해 구속했다.

검찰 역사상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최초의 단죄였다.정권 말기에 접어들었다 해도 김현철씨는 ‘소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막후의 권력자였다.당시 검찰 문화에선 전 정권의 실세를 수사하기도 어렵지만 아직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대긴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검찰은 뇌물,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증여세 포탈혐의를 적극적으로 적용해 유죄판결을 이끌어냈다.당시 수사팀에 압력이 가해졌다.심재륜 중수부장은 “사표를 써 갖고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회고했다.검찰 최고위층의 압력은 강력했다.하지만 YS는 자신은 수사를 막지 않았다고 주장한다.YS는 회고록에서 “검찰총장에게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해서라도 현철이를 구속시키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이 같은 선례는 검찰이 그 뒤 정권에서도 현 정권 실세들에게 칼을 들이대는 힘이 됐다.김대중 정부 때는 아들들의 비리가,노무현 정부 때는 측근들의 대선자금 수수가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제도개혁 함께 안 된 것은 한계
특별사면으로 부패사범에 면죄부

부정부패 척결은 문민정부의 과제였던 국가기강 확립의 전제조건이었다.문민정부는 검찰 사정을 통해 오랜 군부통치로 쌓인 부정부패의 적폐를 끊고 싶어 했다.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처벌도 집권 초기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가 여론이 형성되면 치고나가는 돌파력을 보였다.대다수 국민들은 그 때마다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이 역사적 단죄도 15대 대통령선거전이 치러지면서 정략적 흥정의 대상이 됐다,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가 당선된 직후 김영삼 대통령은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했다.대검은 98년 1월 ‘사정활동 강화방안’이란 보고서에서 문민정부 사정의 한계를 지적했다.문민정부 사정은 비리 관련자에 대한 인적 청산에만 그치는 바람에 법적·제도적 개혁에 미흡했다는 내용이다.사정이 과거지향적으로 변질됐다는 얘기다.문민정부 사정은 비리 폭로-검찰 수사-재판-중형 선고-복역-특별사면이란 과정을 거쳤다.비리 수사엔 성역이 없는 듯 했으나 특사를 통해 면죄부를 주는 일이 되풀이 됐다.

율곡사업 비리로 구속된 군 장성들은 대부분 판결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면복권을 통해 풀려났다.그 뒤 방산비리를 구조적으로 없애기 위한 제도 개혁도 뒤따르지 않았다.만약 그 때 방산비리를 뿌리 뽑는 개혁이 함께 이뤄졌다면 무기 도입을 둘러싼 군의 부정부패는 거의 사라졌을런지 모른다.

직선제로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5공 비리’를 수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으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를 건드리는데 그쳤다.민주화세력이 처음 집권하긴 했지만 오랜 세월 다져진 국가의 기득권층은 여전히 확고했다.이런 상황에서 3당합당으로 여권에 발을 걸친 YS가 전 정권의 비리를 ‘눈 딱 감고’ 과감하게 도려내기는 쉽지 않았다.문민정부 사정은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하지만 그 때까지 상당한 권력을 쥐고 있던 군부와 전직 대통령을 단죄한 것은 YS의 대담한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문민정부 사정의 한계를 지적하더라도 권력형 비리를 척결한 공에 대해선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철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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