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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YS 35년 꼬마동지 “제겐 아버지 같은 소탈한 아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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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중학생이던 이씨가 김 전 대통령 내외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씨는 93년 2월 김 전 대통령과의 추억을 담은 수필집 『꼬마동지 대장동지』를 출간하기도 했다. [김선미 기자],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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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택 바로 앞집에 살면서 35년간 이웃의 정을 나눴던 이규희(45)씨와 이씨의 아들 현동훈(10)군. 그는 김 전 대통령을 “농담을 즐기던,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로 기억했다. [김선미 기자], [중앙포토]

“마치 친아버지를 잃은 것 같습니다. 늘 친근하게 대해주신 아저씨였는데….”

상도동 이웃 이규희씨 회고
80년 가택연금 때 인사하며 인연
경찰 몰래 밖에 원고 전달 심부름
퇴임 땐 '대장동지'에게 꽃다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꼬마동지’ 이규희(45·여)씨는 흐느끼고 있었다. 22일 오전 YS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직후였다. YS와 이씨는 30년 넘게 이웃으로 지냈다. 이씨는 1972년부터 서울 상도동의 김 전 대통령 자택 바로 앞집에 살았다. 2002년 남편을 따라 미국에 건너갔다가 2010년 같은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이날 상도동 집에서 만난 이씨는 여전히 YS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는 자주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대통령까지 지낸 거물 정치인이었지만 저한테는 소탈하고 농담을 즐겨 하던 이웃 아저씨였어요. 어릴 때부터 저를 ‘꼬마동지’라고 부르시며 살갑게 대해주셨는데 이렇게 영영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YS와 이씨가 가까운 이웃이 된 것은 80년 5월부터다. 당시 YS는 신군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다. 이씨 집에서 매일 아침 앞마당에서 운동을 하는 YS가 보였다고 한다. 당시 열 살이던 이씨가 YS를 향해 “아저씨, 안녕하세요”라고 하면 YS가 손을 흔들어 반겼다. 이씨는 가택연금 중인 YS의 자택을 드나든 유일한 외부인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해주신 음식을 들고 아저씨 집에 드나들던 기억이 나요. 꼬마가 들어가니까 경찰들도 막지 않았죠. 당시 아저씨가 쓴 원고를 밖으로 몰래 전달한 적도 있어요.”

 가택연금이 풀린 뒤에도 두 사람은 각별한 관계를 이어갔다. YS는 부친인 고(故) 김홍조옹이 거제도에서 보내온 멸치를 이씨에게 꼬박꼬박 챙겨줬다.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셨어요.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유치원 아이들에게 한 명씩 악수를 해주느라 아이들이 통학 시간에 늦어 유치원 원장이 곤혹스러워했던 일도 있었죠.”

 이씨는 대학생 때였던 93년 2월 YS와 이웃으로 지내며 쌓은 추억들을 모아 『꼬마동지 대장동지』란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YS가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이씨는 “누구보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를 바랐지만 퇴임하실 때 주변 사람들이 아저씨를 비난하는 걸 듣고 많이 속상했다”고 말했다.

 “제가 아저씨의 ‘꼬마동지’였다면 아저씨는 제게 ‘대장동지’였어요. 국민 전체가 대장동지를 비난해도 저 같은 이웃들은 따뜻하게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에 퇴임하시는 아저씨께 꽃다발을 걸어 드렸죠.”

 이씨는 해마다 YS 자택으로 신년 인사를 하러 갔다. 2013년 1월 남편과 아이 둘을 데리고 YS를 만난 게 마지막 인사가 됐다. 당시 이씨 아들이 YS에게 달려가 안기다가 YS가 뒤로 넘어질 뻔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잘못하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는데 아저씨는 ‘니 아들이 이래 마이 컸나?’ 하며 오히려 웃어주셨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에도 음식을 해서 YS를 찾아가려 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호스를 끼고 있어 음식을 삼킬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2년 전 마지막으로 뵀을 때 ‘김영삼 기념 도서관’ 개관을 몹시 기다리시던 기억이 나요. ‘도서관 완공되면 매일 출근할끼다’ 이렇게 말씀하셔서 ‘저도 놀러가도 돼요’라고 물었더니 ‘느그 가족은 언제든 환영이데이’ 그러셨는데…. 결국 개관하는 걸 못 보고 떠나셔서 마음이 아프지만 제 마음속엔 영원한 대장동지로 기억될 겁니다.”

김선미·박병현 기자 park.b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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