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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룩한 서울의 파리 테러 추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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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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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파리 테러 3일 후인 지난 16일 아침, 몇몇 신문 1면에 실린 사진을 보곤 얼굴이 화끈거렸다. 테러 다음 날인 14일 밤, 빨강·하양·파랑 삼색 조명을 밝혀 프랑스 국기로 변신한 세계 도시의 명물들 사진에서 서울이 빠진 탓이었다. 파리 에펠탑을 비롯해 워싱턴 백악관과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리우데자네이루 예수상 등 웬만한 도시의 상징물은 죄다 보였다.

 프랑스는 한국전 참전국인 데다 올 한국인 방문객이 40만 명을 넘은 우리의 전통적 우방이다. 이런 나라가 최악의 테러를 당했는데도 제대로 애도를 표하지 않는다면 감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 일이다. 실은 14일 오후 한 영화감독이 박원순 서울시장 트위터로 메시지를 날렸다. “오늘 저녁 남산 N서울타워에 프랑스 국기 색깔을 쏘자”고.

 부랴부랴 서울시가 나섰지만 뜻대로 안 됐다. “기술적으로 삼색이 안 돼 그중 하나인 푸른색으로 타워를 채색했다”는 박 시장의 답글이 트위터에 달렸다.

 기술적 난관(?)이 즉각 극복됐는지 16일부터 삼색 조명이 켜졌다. 하지만 한꺼번에 세 색깔을 쏴 말끔하게 프랑스 국기를 표현하는 게 아니었다. 여전한 기술적 어려움 탓에 한 색깔을 20초씩 비추는 어수룩한 방식이었다.

 서울이 어떤 도시인가. 인구 1000만에 정보기술(IT) 산업의 신(新)메카 아닌가.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의 ‘국제도시 랭킹’에서 지난해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화된 곳이 서울이다. 그런데도 분위기 파악은 물론 도시 상징물에 삼색 조명을 쏘는 것조차 못한다니 귀를 의심할 판이었다. 게다가 매일 밤 화려한 빛으로 타워 외벽을 장식하는 3D 최첨단 쇼까지 펼쳐 왔다고 하니 선뜻 이해가 안 된다.

 알아보니 서울시는 2011년 미세먼지가 적으면 푸른색, 많으면 붉은색 조명을 켜도록 하는 계약을 N서울타워 측과 맺었다고 한다. 기술 때문이라곤 하나 이 때문에 신속한 조치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달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아 외교부가 유엔의 상징색인 푸른빛으로 타워를 물들이려 했지만 미세먼지 건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확실한 건 행정에 정신없는 서울시 공무원들이 글로벌 현안까지 적절히 챙기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거다. 외교부든 청와대든, 해외 사정에 밝은 기관이 나서 때맞춰 코치하는 게 정답이다. 그래야 매력국가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예의와 품격을 지구촌에 보여 줄 수 있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