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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YS는 어려운 일을 쉽게 생각해” YS “DJ는 쉬운 일을 어렵게 생각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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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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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김대중 민추협 공동의장(오른쪽) 자택에서 회동한 김영삼 신민당 상임고문(왼쪽). [중앙포토]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특수한 관계….”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김대중(DJ)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09년 8월 10일 병원에 입원한 DJ를 병문안 간 자리에서다. 두 사람은 “오랜 동지이자 경쟁자”였다. 감(感)의 YS, 논리의 DJ라는 말처럼 스타일은 너무 달랐다. 1987년 두 사람이 5공 정부에 맞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 투쟁을 벌일 때였다. DJ가 YS에게 “100만 인 서명운동을 합시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YS는 대뜸 “100만 명이 뭐꼬. 1000만 명 정도는 해야지”라고 했다. DJ가 “대한민국 인구가 몇 명인데, 1000만 명을 어떻게 채우느냐”고 반대하자, YS는 “그걸 누가 세어 본다꼬”라고 밀어붙였다. 결국 서명 목표는 1000만 명으로 낙착됐다.

민주화 동지이자 평생 라이벌

 YS를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DJ는 “김영삼씨는 대단히 어려운 일을 아주 쉽게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똑같은 질문에 YS는 “김대중씨는 아주 쉬운 문제를 대단히 어렵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유신체제와 5공 신군부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오랜 협력자였던 두 사람이 갈라진 건 87년 대선 때였다. 목표로 했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해 놓고도 두 사람은 단일화에 실패해 파경을 맞았다. 그해 12월 대선에서 두 사람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밀려 2·3위에 그친다. 92년 대선에서 YS는 노태우·김종필(JP)과 손잡고 3당 합당을 결행하며 집권 민자당 후보로, DJ는 제1 야당의 후보로서 마지막 정면 승부를 벌였다. YS가 41.4%의 득표율로 DJ(33.4%)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YS가 대통령의 꿈을 이룬 다음 날 DJ는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하지만 DJ는 95년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두 사람의 라이벌전은 ‘시즌2’를 맞는다. DJ는 ‘IMF 책임론’ 등을 앞세워 YS를 매몰차게 공격해 97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룩했다. DJ 집권 초 YS와 DJ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YS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독재를 한다”며 DJ를 비난했다.

 거목(巨木)의 화해는 DJ 서거 직전 극적으로 이뤄졌다. 2009년 YS는 DJ가 입원 중인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전격 방문해 15분가량 DJ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면담했다. 위독한 상태의 DJ와 직접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YS는 병원을 떠나면서 “두 분이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제 그럴 때가 됐지 않았느냐. 그렇게 봐도 좋다”고 말했다. DJ는 8일 뒤 세상을 떴고, YS는 DJ의 빈소를 찾았다. YS는 그해 9월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DJ에게 가장 섭섭한 점이 뭐냐”는 물음에 다음처럼 말했다. “과거엔 있었지만 이제는 없어. (침묵 후) 후보단일화…. 천추의 한이 됐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잊어버리지 못하는 말이 있는데 ‘우째 그리 거짓말을 자꾸 하노’ 그랬더니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약속을 못 지킨 것뿐이지’ 그랬어. 하하하…. 그 말도 정치하는 사람한테는 맞는 말이지.”

김정하·안효성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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