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명언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악연에서 나왔다. 1979년 9월 당시 YS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압력을 통해서만 박 대통령을 제어할 수 있다”고 말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 정치인이 국내 문제를 외국 언론에 고자질했다”고 격노했다. 여당은 단독으로 YS 국회의원 제명안을 통과시켰고, 이때 YS가 남긴 말이 “닭의 모가지”였다.
박 대통령, MB 지지한 YS와 소원
2012년 상도동 찾아가 관계 회복
YS에게 박 전 대통령은 오랜 투쟁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YS도 박 전 대통령과 독대했을 때는 인간적 면모를 봤다고 회고했다. 75년 5월 21일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두 시간가량 영수회담을 했다. 이때 박 전 대통령은 74년 사망한 고(故) 육영수 여사를 회상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를 YS는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다.
“ ‘마음이 얼마나 아프냐’며 조의를 표했다. 박정희는 망연한 표정을 짓더니 ‘김 총재, 내 신세가 (창밖의) 저 새와 같습니다’라고 하고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그 모습을 보니 ‘인간적으로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전 대통령의 눈물을 본 YS도 마음이 약해졌다고 한다. YS는 “나는 (박 전 대통령에게) 유신헌법을 빨리 철폐해 멋진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며 대통령 직접선거를 종용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김 총재, 나 욕심 없습니다. 집사람은 공산당 총 맞아 죽고, 이런 절간 같은 데서 오래 할 생각 없습니다. 민주주의 하겠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라고 했다”고 답했다 . YS는 “박정희가 울지만 않았다면 ‘그럼 언제 (민주화) 할 거냐’고 물었을 텐데”라고 회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은 YS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직후인 98년 4월 정치에 입문했다. 99년 DJ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재평가를 하자 YS는 성명을 내 “오늘의 독재자인 김 대통령(DJ)이 박정희씨를 찬양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독재자가 독재자를 미화하는 것 ”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자신이 한 일은 옳고 다른 사람이 한 일은 모두 그르다는 반사회적 성격”이라며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정치지도자가 되면 국민이 불행해진다”고 대응했다.
YS는 2001년 이후엔 “아버지와 딸은 다르다”며 호감을 표했지만 2007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면서 다시 소원해졌다. 2011년에는 대권도전 의사를 밝힌 김문수 경기지사에게 "박근혜는 사자가 아니라 칠푼이다. 별것 아닐 것”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결정된 뒤 YS를 예방하면서 불편했던 관계에 반전이 생겼다. YS는 2012년 대선 직전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의사를 나타냈다.
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