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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서민 잡는 건보료, 총선 의식해 내버려 두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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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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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

‘아파트 담보 대출금이 2억5000만원이 넘고 연 소득이 315만원밖에 안 되는데 매달 건보료로 23만7420원을 내야 한다. 죽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67세 화물차 기사 이모씨가 최근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이씨는 ‘집에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건보료를 매기니 어쩌란 말이냐. 내놔도 팔리지도 않아 속을 끓인다. 지금도 자식들이 도와주는 돈으로 은행 이자를 갚고 생활비로 쓰는데 매달 건보료 고지서를 받을 때마다 죽고 싶다’고 했다. 올 들어 아파트 값이 오른 점을 고려하면 이씨는 이달 말 집값 상승을 반영한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받고 또 한 번 속을 끓일 것이다.

 이씨와 같은 처지에 놓인 지역 건보 가입자는 244만 가구. 소득이 많아져서라면 몰라도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료가 따라 올라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매년 11월이 되면 지역가입자의 최근 연도 소득·재산을 반영(과표 조정)해 건보료를 다시 매긴다. 이어 1월이면 정기적 보험료 인상이 있다. 두 달 사이에 건보료 인상이 거듭돼 불만이 쌓이고 제도 불신이 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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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건보공단은 과표 조정으로 인한 보험료 증가 가구가 중·상위 계층(10분위 중 6~10분위)에 집중돼 있다고 강조한다. 인상 가구의 약 80%가 여기에 속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건보공단이 이를 강조하는 것은 마치 “먹고살 만한 계층이니 건보료를 더 내도 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들은 건보료 증가 가구의 20%는 1~5분위에 속한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은 소득에 보험료를 매기는 게 원칙이다. 1989년 지역건보를 도입할 때 소득 파악률이 낮다는 이유로 재산을 보조 잣대로 도입했는데 26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80대 독거노인의 작은 연립주택에 월 4만~5만원, ‘송파 세 모녀’에게 4만7000원, 갓난아이한테 월 3450원의 건보료를 매기는 것은 사회정의에 어긋난다. 재산 보험료는 지구상에 한국과 일본에만 있다. 일본은 없애거나 줄이고 있지만 한국은 반대다.

 이 때문에 건보료 부과체계는 ‘개혁 대상 1호’가 된 지 오래다. 복지부가 연초 개혁을 미루려다 호된 비판을 받고 연내에 개혁안을 내놓겠다고 해놓고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복지부는 “다양한 방안을 두고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부과체계를 바꾸면 누군가의 보험료는 올라간다. 일정액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무조건 건보료를 물린다는 원칙을 정하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계속 개선을 미룬다면 내년 총선의 여당 표를 의식해 복지부동하고 있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