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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철사교정 답답했죠 … ‘투명 교정기’ 개발로 세계인에 미소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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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원장이 자체 개발한 `3D 디지털 교정 프로그램`으로 환자에게 교정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석전경우(石田耕牛). 그는 자신의 좌우명을 ‘척박한 돌밭을 가는 우직한 소’라고 소개했다. 치과의사 면허를 받은 지 25년, 이클라이너치과 김태원 원장(사진)이 소 같은 발걸음으로 개척해 온 분야는 치아 교정이다. 처음엔 소박한 꿈이었다. 환자에게 밝은 미소를 선물하고 싶었다. 대학병원을 나와 세계 최초로 투명 교정장치 ‘이클라이너’를 개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겉으로 보이지 않고 식사할 때는 벗어놓을 수도 있는 교정장치에 전 세계 치과의사들이 주목했다. 현재 이클라이너를 사용하는 나라는 49개국에 이르고, 치과의사 10만여 명이 그의 제품을 사용한다. 이제 그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꿈꾼다. 1년의 3분의 2를 해외에서 보내며 세계적인 기업을 일궈낼 꿈을 펼치고 있다.

[명의 탐방] 이클라이너치과 김태원 원장
치아 투명 교정장치 개발
49개국 치과의 10만여 명 사용
세계시장 1위 향해 소걸음

영화·드라마에서 치아교정기는 ‘못난이’를 표현하는 단골 소재다. 미운 오리가 백조로 변하는 유형의 이야기에서 못생기고 의기소침한, 심지어 따돌림을 당하던 주인공은 살을 빼고 치아교정기를 떼는 극적 ‘변신’을 거친 후에야 사회적 성공을 거둔다. 단순히 외모가 변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감’이란 무기를 장착한 결과다.

김태원 원장에게 유소영(24·가명)씨가 그랬다. 부모에게 끌려 병원을 방문했을 때 유씨는 스무 살이었다. 한참 발랄해야 할 나이임에도 얼굴엔 그늘이 깊었다. 원인은 그녀의 치아였다. 턱까지 틀어져 얼굴 전체가 찌그러져 보였다. 웃을 땐 입술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마저도 고교 3년 내내 다른 곳에서 교정을 받아 나아진 상태였다. 김 원장은 “그녀는 또래와는 달리 굉장히 염세적이었다.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고, 동아리 활동조차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교정치료를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시 거추장스러운 철사를 차아에 달고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었던 것. 김 원장은 그녀에게 투명 교정을 권했다. 유씨가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는 10개월이면 충분했다. 틀어졌던 턱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김 원장은 “투명 교정을 받으면 자세부터 달라진다.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편다. 자신감이 생겨 화장을 하고 더러는 남자친구가 생긴다”고 말했다.

목욕하다 비누거품서 아이디어 반짝

김 원장이 이클라이너를 개발한 건 마흔을 바라보던 1998년이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하루 종일 환자를 보는 일상이 반복됐다. 개원 2년 만에 목표 매출을 올렸으니 만족할 법도 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교정기간 동안 환자가 겪을 불편을 덜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영감을 얻은 곳은 다름 아닌 욕조였다. 여느 날처럼 지친 몸을 따뜻한 물에 담그고 눈을 감았다. 김 원장은 “아내가 욕조에 거품을 풀어줬다. 비누거품을 멍하게 바라보다 문득 이렇게 투명한 교정장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기억했다. 다음 날부터 연구가 시작됐다. 마침 금니나 레진 같은 보철을 보조하는 용도의 투명한 장치가 있었다. 그 장치를 손으로 직접 잘라 만들어 보니 그럴싸했다. 한 환자에게 동의를 구해 처음으로 투명 교정장치를 씌웠다. 시제품은 다소 투박한 장치였음에도 효과는 만족할 만했다. 불과 3개월 만에 벌어진 치아의 틈이 사라졌다. 전통적인 교정 방법은 철사가 늘어나거나 끊어지는 사례가 있다. 잘 때 끼는 유지장치도 거추장스럽다. 김 원장은 “이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았으니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해외에 발표한 논문 46편, 저서 7권

그러나 교정 목적으로 사용하기엔 섬세함이 부족했다. 교정을 위해선 한 차원 높은 치밀한 설계가 필요했다. 환자 사례가 쌓이면서 설계와 제작 방식이 점점 섬세해졌다. 장치가 진화를 거듭하면서 그가 발표한 해외 논문만 46편, 집필한 책은 7권에 이른다.

2년이 지난 2000년, 스페인에서 열린 교정학회에 초청받았다. 두 시간짜리 발표 말미에 투명 교정장치를 10분 정도 소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모두가 투명 교정장치에 대해 질문했다. 주최 측에선 차년도 학회에 별도 세션을 만들자고 했다. 2001년도 강의엔 유럽 각지에서 교정 의사들이 몰려왔다.

이때부터 전 세계에서 강의 요청이 몰려들었다. 6~7년은 강의를 위해 방문하지 않은 대륙이 없을 정도였다. 초청 강의료만 한 번에 1만 유로(약 1250만원)에 달했다. 김 원장은 “솔직히 말해 대접받는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교정 의사에게 투명 교정장치를 권하고 제작 방법만 알렸을 뿐 직접 만들어 판매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작의 핵심 기술이 담긴 책을 1500권쯤 팔고 나서야 사업으로 활용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업을 결심한 게 2007년이었다. 투명 교정장치를 개발하고 10년이나 흐른 시점이었다.

10년 넘은 노하우 녹인 맞춤형 설계

그가 아쉬워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가 투명 교정장치를 개발하고 정신 없이 강의를 다니는 10년 새 같은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한 경쟁사가 이미 전 세계 시장을 점유한 것. 그러나 그에겐 세계 최초로 투명 교정장치를 개발해 10여 년간 사용한 노하우가 있었다. 핵심은 설계 프로그램이었다. 3D 디지털 설계 방식으로 경쟁사와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 개발에 성공했다. 김 원장은 “같은 투명 교정이지만 설계·제작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3차원 디지털 방식을 사용해 정밀도를 높이고 치아 이동을 정확히 제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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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원장이 최초로 개발한 투명 교정장치 `이클라이너`.

이클라이너는 굵기가 0.5㎜인 소프트 장치부터 중간 단계(0.625㎜)를 거쳐 하드(0.75㎜) 로 장치를 매주 교환하며 치아를 이동시킨다. 통증을 줄이고 장착감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 김 원장은 “치아를 불편하게 할수록 교정 효과가 높다는 편견이 있는데, 이는 잘못됐다. 잇몸과 뼈에 손상을 주지 않고 안전하게 교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치료 전 가상으로 치료 후 얼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략적인 치료 기간도 예측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여러 개의 장치를 한번에 제작하지 않고 환자 상태와 치료 정도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작된다는 게 장점이다.

연말까지 미·중·독 등에 기공소 설립

이클라이너는 현재 49개국 10만여 명의 치과의사가 활용하고 있다. 이렇다 할 마케팅 없이 오로지 치과의사들의 입소문만으로 이뤄낸 성과다. 그러나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본격적인 마케팅으로 날개를 달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지에서도 맞춤형 설계가 가능하도록 올해 말까지 미국·중국·독일·두바이·튀니지 등 주요 생산 거점에 기공소를 설립할 예정이다. 김 원장은 “기술력은 우리가 더 우위에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은 아직 차이가 크지만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필승전략은 ‘우직함’이다. 김 원장은 “사업을 병행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치과의사다. 사업 수완은 조금 떨어지겠지만 올곧게 나아간다면 의사와 환자들이 이클라이너를 알아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클라이너,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 … 해외 현지법인 5개국 에이전시 44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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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압구정동의 작은 치과에서 시작된 투명 교정장치 이클라이너. 현재 전 세계 49개국에서 사용할 정도로 성장했다. 김태원 원장은 1998년 10월 세계 최초로 투명 교정장치를 개발한 뒤 독자적인 노하우를 축적해 2009년 10월 ‘이클리어인터내셔날’이란 이름의 법인을 설립했다. 투명 교정기술의 핵심인 ‘디지털 설계’ 프로그램을 구축해 이듬해 5월 ‘이클리어’란 정식 명칭을 달고 첫 제품을 미국교정학회(AAO)에 출품했다. 그해 11월엔 제품명이 ‘이클라이너’로 바뀌었다. 기존 디지털 설계 방식에 3D 기술을 더해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2011년부턴 외국 에이전시 계약이 이어졌다. 스위스를 시작으로 유럽·아시아·북아메리카·오세아니아·아프리카의 49개국과 계약이 성사됐다. 미국·두바이·중국·튀니지엔 현지 생산이 가능한 기공소를 열었다. 여기에 추가로 올 연말까지 독일 기공소가 구축되면 남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현지생산이 가능해진다. 5개국의 현지 법인과 44개국의 에이전시를 갖춘 셈이다. 이미 입소문만으로 교정의사 10만 명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이클라이너로 미소를 찾은 환자는 수백만 명에 달한다. 김 원장은 “어느 글로벌 기업에서 우리 회사를 10억 달러에 인수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단번에 거절했다. 이클라이너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사진=김정한(프로젝트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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