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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하나가 되는 집 우리 건축의 비밀을 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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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호 8 면

선암사 원통전과 조사당 일대. ⓒ 배병우

건축을 전시로 풀어내기란 쉽지 않다. 보여주고자 하는 공간의 질감을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여기에 도전했다.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11월 19일~2016년 2월 6일)이다. 개관 이래 전통 건축을 주제로 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삼성문화재단의 역량을 한데 모았다.


시작은 사진집이었다. 1976년부터 78년까지 도서출판 광장에서 발간된 사진작가 임응식의 『한국의 고건축』시리즈가 당초 계획한 50권에 크게 못 미치는 7권 만에 중도하차했던 안타까움이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전통 건축으로 해인사·불국사·통도사·선암사·종묘·창덕궁·수원화성·도산서원·소쇄원·양동마을 등 10곳을 선정하고 이곳을 대표적인 사진작가 6명(주명덕·배병우·구본창·김재경·서헌강·김도균)이 2년에 걸쳐 찍었다. 총 10권으로 기획된 사진집의 연말 출간을 앞두고 연계 전시를 먼저 개막한 것이다.


전시장은 크게 3가지 테마로 구성했다. 종교 및 정신적 세계관이라는 주제로 절집 4곳과 조선시대 왕실 사당인 종묘를 묶은 ‘침묵과 장엄의 세계’, 궁궐과 성곽을 통해 지배 권력의 철학을 살펴보는 ‘터의 경영, 질서의 건축’, 그리고 서원과 정원·민가를 통해 양반과 서민의 삶을 보여주는 ‘삶과 어울림의 공간’이다.


전시는 작가들의 사진을 중심으로 옛 지도와 고미술, 미니어처, 실물 크기의 모형을 활용해 스펙트럼을 넓혔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3D 스캔 및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 첨단 기법을 활용한 영상물이다. 옛 건축물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에 지적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자극한다. 자연과 공존하며, 자연으로부터 생기를 얻는 공간으로서의 건축을 추구했던 조상의 지혜가 거기 있었다.

1 통일신라시대 문화의 꽃 석굴암 내부.ⓒ서헌강

2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보사찰 통도사 전경.ⓒ구본창

3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수다라장과 법보전의 지붕.ⓒ주명덕

석굴암 건축과정 3D 영상물로 생생하게 재현전시는 고려시대 목조건축의 아름다움으로 시작한다. 실물 크기로 재현된 부석사 무량수전의 주심포 양식의 공포(?包)가 관람객을 처음 맞는다. 공포는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맞추어 댄 나무 부재. 전흥수 대목장이 연구를 위해 마침 만든 것을 빌려왔다. 장식이 무척 화려하다.


첫 번째 건축은 신라 애장왕 3년 창건되었다고 알려진 가야산 해인사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대표적인 법보사찰이다. 사진작가 주명덕은 이곳을 오랫동안 찍어왔다. 성철 스님과의 오랜 인연도 작용했을 터다. 눈이 소복이 쌓인 해인사를 멀리서 찍은 장면이 18세기 화가 김윤겸이 종이에 수묵 담채로 해인사를 그린 ‘영남기행화첩’의 한 장면과 묘하게 겹친다.


그 옆에는 사진작가 서헌강이 찍은 불국사다. 그 유명한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는 통일신라시대 문화의 꽃. 석굴암 내부에서 찍은 모습은 말 그대로 자비심 넘치는 부처님의 나라, 불국(佛國)이다.


이 코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석굴암 축조과정을 3D 영상으로 만든 ‘석굴암, 숭고한 불국토의 세계’다. 국립중앙박물관·유라시아디지털문화연구소·위프코가 제작한 이 영상은 201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개최된 ‘신라’ 특별전에서 선보였던 것으로 이번에 내용을 보강해 더욱 실감나는 4분짜리 영상으로 만들었다.


이번 전시의 협력 큐레이터인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해인사와 불국사의 가람 배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등고선 모형과 단면도 부조를 선보였다. “해인사는 산 속에 있는 대표적인 산지사찰이고 불국사는 산지와 평지가 결합된 곳에 있는데, 이 단면도를 통해 절집들이 산세를 어떻게 이용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게 이준 리움 부관장의 설명이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불보사찰 통도사의 사진은 건축 사진에 처음 도전한 구본창의 몫이었다. 사진작가 배병우는 고찰 선암사를 담백한 흑백의 화면으로 처리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극찬한 종묘는 조선시대 왕실의 사당이자 유교 건축의 백미다. 오랜 시간 종묘를 카메라에 담아온 배병우는 작업 소감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정전의 지붕선과 뒷면은 미니멀한 건축미의 정수를 보여준다. 옛 건축물 중 이렇게 큰 규모의 건물이 이렇게 잘 짜인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섬세하면서도 단순하고, 장중하면서도 현대적인 이 상징적 건축물이 아직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빛으로 그린 그림』중)


종묘 사진 옆에는 캄캄한 방이 하나 있다. TV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를 제작한 박종우는 유네스코 선정 세계무형문화유산인 종묘 제례와 제례악을 3채널 영상으로 만들어 공간 3개 면을 채웠다. 종묘의 사계와 제관들의 의식을 청아한 선율과 함께 즐기다 보면 5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간다.

4 창덕궁 내 영화당에서 바라본 부용지 설경. ⓒ배병우

5 설창산 남쪽자락에 자리 잡은 경주 양동마을의 설경. ⓒ주명덕

6 국보 249호로 동아대석당박물관이 소장한 ‘동궐도’ 7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이 소장한 ‘숙천제아도’

불규칙해 보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두 번째 코너가 시작된다. 고산자 김정호에게 ‘대동여지도’의 영감을 주었다는 큼지막한 ‘동국대지도’(18세기, 비단에 채색, 272.7?147.5 cm, 보물 1538호)가 걸려있는 바람벽을 지나면 창덕궁이 펼쳐진다.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타 300년 가까이 폐허로 있었던 경복궁 대신 가장 오랜 기간 정궁으로 쓰인 궁궐. 전시 자문을 맡은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창덕궁의 건축적 아름다움을 이렇게 설명한다.


“창덕궁은 매우 비정형적으로, 불규칙하게 배열돼 있습니다. 완만한 능선에 터를 잡은 창덕궁은 지형의 흐름에 맞춰 건물을 앉히고 마당을 만든 결과 이 같은 건축적 배열을 가지게 된 것이죠. 그럼에도 실제 접하는 공간들은 규칙적이고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불규칙하게 보이는 창덕궁 배치는 지형에 따른 건축적 결과로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 됐습니다.”


동아대석당박물관이 소장한 ‘동궐도’(1828~1830, 비단에 채색, 274?578.2 cm, 국보 249호)는 19세기 초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호쾌하게 보여준다.


그 옆으로 가로 3m, 세로 11m가 넘는 거대한 스케일의 미니어처가 눈길을 확 붙든다. 모형제작으로 유명한 (주)기흥성에서 만든 ‘경복궁과 육조거리’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1868년 중건된 경복궁과 그 주변을 200분의 1로 구현한 ‘19세기 세상’이다.


조선 말기 문신 한필교가 42년간 부임한 중앙 및 지방 관아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숙천제아도’는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대여해온 것으로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건물을 눕혀 그린 모습이 흥미롭다.


조선 후기 토목기술이 집약된 수원화성은 정조와 아버지 사도세자, 어머니 혜경궁 홍씨, 실학자로 화성을 설계했던 다산 정약용 등 등장 인물만으로도 훌륭한 얘깃거리가 되는 곳. 한국전쟁으로 인해 상당부분 훼손됐지만 원형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축성과정이 자세하게 담긴 『화성성역의궤』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자료를 활용해 한양대 동아시아 건축역사연구실과 책임연구원 이성호가 팔달문 축조과정을 6분짜리 3D 그래픽으로 만든 영상 역시 흥미롭다. 이를 김재경 작가의 사진과 고서의 기록과 함께 비교하는 것도 전시를 즐기는 방법이다. 전봉희 교수는 “성벽의 둘레가 5.4km에 달하고 성벽을 따라 4개의 큰 문과 40개소가 넘는 각종 군사시설을 갖춘 화성 전체를 건설하는데 불과 2년 8개월이 걸렸다는 것은 당시 건설 공업화의 수준을 잘 말해준다”고 말한다.

8 가로 3m, 세로 11m 크기의 거대한 미니어처 ‘경복궁과 육조거리’9 경주 양동마을에 있는 무첨당을 실제 크기로 재해석한 ‘유첨당’

한옥은 온돌과 마루가 결합된 음양 조화의 공간세 번째 코너에서는 양반과 서민들의 삶이 묻어나는 민가 건축에 초점을 맞췄다. 김봉렬 총장은 한옥의 특징을 ‘한 지붕아래 온돌과 마루를 동시에 갖는 집’이라고 설명했다. “온돌 칸은 벽을 만들어 폐쇄된 공간을, 마루 칸은 벽이 없는 개방된 공간을 이룹니다. 폐쇄와 개방, 흙과 나무, 따뜻함과 서늘함 등 서로 상반된 성질은 환경적 장애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죠. 동양 사상의 음양적 원리와 같이, 온돌-마루의 집합적 공간은 상호 보완적입니다. 온돌이 양이라면 마루는 음인 셈입니다.”


주명덕이 찍은 양동마을은 한국적 자연과 마을의 원형이 보존된 대표적인 곳. 김도균은 퇴계 이황의 후진 양성에의 열정을 사진으로 담아냈고 구본창은 정원 건축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담양 소쇄원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펼져보였다. 소쇄원 광풍각의 터잡기부터 현판 달기까지의 과정을 3D 그래픽 영상으로 담아낸 전봉희 교수와 서울대 건축사 연구실의 자료 역시 우리 건축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양동마을에 있는 별당인 ‘무첨당’을 실제 크기로 재해석해 김봉렬 총장과 온지음 연구소가 제작한 ‘유첨당’은 관객들이 올라가 손으로 만져보면서 옛 건축의 정취를 실제로 느껴볼 수 있는 기회다.


우리건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국내 최고 전문가들의 강연도 마련했다. ▶11월 28일 오후 2시(이준 리움 부관장·전봉희 서울대 교수·사진가 배병우) ▶12월 4일 오후 3시(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12월 11일 오후 3시(유홍준 명지대 명예교수) ▶12월 17일 오후 3시(이상구 경기대 교수) ▶2016년 1월 13일 오후 3시(승효상 서울시 총괄건축가) ▶1월 20일 오후 3시(이강근 서울시립대 교수) 등 총 6회에 걸쳐 무료로 진행된다. 희망자는 리움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예약해야 한다.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초중고생은 주중에는 무료다. 성인은 5000원. 매주 월요일 휴관.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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