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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자신을 낮춰서 더 빛난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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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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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품격』 저자가 겸손과 절제의 미덕을 갖춘 인물로 꼽은 이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빈민운동가 도러시 데이, 작가 새뮤얼 존슨, 성 아우구스티누스, 미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인권운동가 필립 랜돌프, 전 미 노동장관 프랜시스 퍼킨스, 소설가 조지 엘리엇, 전 미 국무장관 조지 마셜. [사진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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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품격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496쪽, 1만6500원

능력에 대한 집착이 인간성 파괴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는 허상일 뿐
마셜 장군,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
겸손·절제로 풍요로운 내면 일궈

‘나 자신은 특별하다’고 믿었기에 자신감이 넘쳤다. ‘기회가 되면 나의 장점을 뽐내는 것’이 미덕인 시대라 칼럼을 쓰고 방송에도 나갔다. 디지털 시대 새로운 계층의 등장을 예견한 『보보스』란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렇게 미국사회의 주목받는 엘리트였던 데이비드 브룩스(54)는 쉰이 넘은 어느 날 자신의 내면이 텅 비어 있다는 느낌에 휩싸인다. “나는 자기애에 빠진 떠버리가 되어 내 생각을 마구 쏟아 내는 일로 돈을 번다. 내가 실제로 느끼는 것보다 더 자신감 있는 척하고, 실제보다 더 영리한 척하고, 실제보다 더 권위 있는 척하는 것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커다란 목표를 위해 일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막연했다. 내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찌해야 인격을 연마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역사를 뒤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결함을 딛고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해 분투한 ‘롤 모델(Role Model)’을 찾아내, 배우고 싶었다. “나 자신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고백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저명 저널리스트의 반성문이자 새로운 자신을 찾아 헤맨 기록이다.

 브룩스는 언젠가부터 미국 사회가 “그 누구도 나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또한 그 누구보다 나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겸양의 문화에서 “내가 이뤄낸 것을 보라. 나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다”라고 외치는 자기광고의 시대로 옮겨갔다고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사람들은 자기억제·죄악과 같은 어두운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삶을 낙관적·긍정적으로 보 는 목소리에만 열광했다. 자신을 대단한 존재 ‘빅 미(Big Me)’로 보려는 움직임은 여성해방 운동, 소수자 인권운동 등 의미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늘도 컸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거라 믿는 ‘능력주의’가 인간성을 파괴하는 경쟁과 성공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가져왔다. 내적 진실성과 도덕성을 잃은 이들의 추문과 스캔들이 쏟아졌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

 세간의 명성을 따르는 대신 자신을 연마하는 데 집중한 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저자가 꼽은 조지 마셜(1880~1959)의 경우를 보자. 제2차 세계대전 후 ‘마셜 플랜’을 만든 그 마셜이다. 2차 대전 막바지,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계획 중이었고, 누구나 마셜을 총사령관감으로 꼽았다.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마셜이 워싱턴을 비운다는 사실에 불안해했다. 결정의 순간 루스벨트는 마셜에게 총사령관이 되길 원하는지 물었으나, 마셜은 “예스(Yes)”라고 답하지 않았다. 그저 “최선의 선택을 하시라”고만 했다. 루스벨트는 결국 아이젠하워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했고, 마셜은 역사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담담히 지켜나갈 뿐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마셜 플랜’에 대해서도 고집스럽게 ‘유럽복구계획’이라는 명칭만을 사용하려 했다.

 미국 최초의 여성각료인 프랜시스 퍼킨스(1882~1965)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상류층 여성이었다. 하지만 1911년 집 근처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이 그의 삶을 극적으로 바꿔놓는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던 공장 노동자들이 불을 피해 건물 창 밖으로 몸을 던지는 모습을 목격한 후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에 대해 극도의 도덕적 수치심을 느꼈다. 이후 이전의 안온했던 상류사회의 행동방식을 모두 버리고 노동문제에 천착했다. 노동장관이 돼 근로기준법과 사회보장법 초안을 만들었다.

 책에는 그 밖에도 무질서했던 젊은 날을 딛고 빈민의 어머니가 된 사회운동가 도러시 데이(1897~1980), 육체적 장애와 극심한 가난을 이기고 위대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새뮤얼 존슨(1709~1784), 세속의 영광을 탐하다 신의 사랑 안에서 절제와 헌신의 가치를 터득한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 등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들이 사회적 업적보다 더 중요한 내면의 성취를 이뤄냈음에 주목했다. 공통점은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들 자신의 결함을 잘 알았고, 그런 결함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겸손과 절제를 바탕으로 한 품격을 길렀다. 그러자 삶에 대한 만족감과 평화가 찾아왔다. 이 모든 것은 ‘나만이 특별하지는 않다’는, ‘리틀 미(Little Me)’를 인정했기에 가능했다.

 저자는 말한다. 지금 허둥대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고. 나는 누구이며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싶은가. 내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결함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가다듬어갈 수 있을까. 다음은 자신을 낮추고 배울 차례다.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모두 발을 헛디디고 휘청거린다. 삶의 묘미와 의미는 발을 헛디디는 데 있다. 발을 헛디뎠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 우아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데 삶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S BOX]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든 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자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이지만, 젊은 시절부터 잘 나가진 않았다. 1918년 중령 진급을 한 뒤 1938년까지 20년간 그는 한번도 진급을 하지 못했다. 그가 마흔이 되기까지 군대 내에서는 물론이고 가족도 그가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젠하워는 누구도 탐내지 않고, 아무런 영광도 따르지 않는 참모장교로 복무하면서 일의 절차와 과정, 팀워크와 조직력을 배웠다. 후일 그는 이렇게 썼다.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 나보다 잘하는 사람, 나보다 명확히 사물을 보는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가능한 한 많이 배워야 한다.” 탁월한 전략가도, 창의적인 사고력을 지닌 사람도 아니었지만 이런 겸양과 배움의 자세 덕분에 이후 군인으로서, 정치가로서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었다. 아이젠하워는 익명의 작가가 쓴 이 시를 늘 몸에 품고 다녔다고 알려져 있다.

 ‘들통을 가져다 물을 채워라/손을 담가볼까, 손목이 잠길 때까지/손을 꺼냈을 때 거기 남은 구멍은/나의 부재의 크기다.// 이 엉뚱하고 작은 얘기에서 배울 게 있을까/그저 최선을 다하라는 것/자부심을 가지라는 것/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대체 불가능한 사람이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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