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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클래식 새로운 명곡 왜 안 나올까 돈과 권력으로 본 20세기 문화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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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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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열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이경일 옮김
까치, 368쪽, 2만원

요즘 클래식 공연에서 동시대 음악이 연주되는 일은 드물다. 20세기부터 그랬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단이 1996~97년 시즌에 공연한 오페라 약 60편 가운데 20세기에 태어난 작곡가의 작품은 딱 하나였다. 반면 19세기 전반기 이탈리아 각지에서 공연된 약 800편의 오페라는 대부분 그 시대 젊은 작곡가 작품이었다. 20세기 들어 쇠퇴의 길을 걸은 건 클래식만이 아니다. 사실적 재현이라는 점에서 회화는 먼저 사진, 곧이어 영화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맞았다. 이제는 젊은 미술가에게 주는 영국의 터너상 후보에서도 갈수록 회화 작가를 찾기 힘들다. 영국의 이름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2012)이 ‘부르주아 문화의 쇠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부제가 ‘20세기의 문화와 사회’인 이 책은 홉스봄의 유작이다. 잘츠부르크 음악축제 강연 원고를 비롯해 서평·기고 등을 모았다. 여기에 담긴 시선은 저자가 향유해온 부르주아 문화, 쉽게 말해 고급문화의 쇠락을 애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20세기 전후의 다양한 사례를 아우르며 예술과 권력의 관계, 예술에 대한 재정적 지원, 전위적 예술의 운명 등 21세기에도 유효한 주제를 여럿 짚는다. 정교한 논증을 펼치는 대신 번득이는 식견을 곳곳에 뿌려놓았다. 모더니즘이 겪은 권력과의 불협화음을 두고는 “예술의 전위가 반드시 우파나 좌파의 정치적 급진주의자들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예술 창작의 수공업적 성격이 신기술과 결합해 산업적 생산이 돼버린 과정은 그 양면성을 주목한다. 적어도 기술적인 측면에선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보다 셀즈닉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더 혁명적인 작품”이란 게 그의 견해다.

  이 책이 논하는 문화는 폭넓다. 소수가 이끄는 엘리트 문화였던 부르주아 문화의 쇠퇴 배경, 이를 대신해 부상한 대중문화의 특징 등은 물론이고 종교나 인구이동의 변화, 동유럽의 정체성과 유대인의 활약까지 등장한다. 지레 겁먹지 않으려면 관심 주제부터 골라 읽는 게 낫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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