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숨통은 트였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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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동성 결혼을 인정받은 것도 아니고,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숨통은 트였다.” 하세베 겐 도쿄 시부야 구청장은 동반자 증명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감개무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본 시부야 구는 아시아 최초로 동성 커플에 부부와 동등한 복지 혜택 제공해

시부야 구는 지난 3월 제정한 조례에 입각해 지난 11월 5일부터 동성 커플에게 ‘결혼에 상응하는 관계’를 인정하는 증명서 발행을 시작했다. 일본 최초다. 이 조례에 따르면 병원 면회나 주택 전입·구입을 할 때 동성 커플도 부부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이날 시부야 구에선 일본 첫 공식 동성 커플이 탄생했다. 시부야 구청으로부터 동반자 증명서를 발급받은 마스하라 히로코(37)와 히가시 고유키(30)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몇 년 간 동성 결혼 합법화는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현재 전 세계 20개 국가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상속이나 세제·기업 복리후생 등 결혼을 전제로 한 사회 제도는 일본에도 많지만, 동성 결혼이 인정되지 않아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본은 뒤처져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10년 간 일본의 성 소수자를 둘러싼 상황은 확실히 변했다. 해외의 동성 결혼 합법화 소식이 차례로 전해지고 성 소수자란 표현이 널리 인식되면서 차별이나 불이익을 없애려는 기업·지자체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성 소수자들 사이에서 “마치 버블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시부야 구의 실천은 더 폭넓은 변화의 밑거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도쿄 세타가야 구도 11월 5일부터 파트너 증명서 발급을 개시했다. 효고현 다카라즈카 시도 동일한 지원을 검토 중이다. 시부야 구엔 “우리도 검토해보고 싶다”는 문의가 여러 지자체로부터 들어왔다.

“당사자들이 꾸준히 활동하며 커밍아웃을 하고 성 소수자 인지도를 높여온 결과로 생각한다”고 커밍아웃을 한 도쿄 도시마 구의 이시카와 다이가 구의원은 말했다. “주먹을 치켜드는 것보다 끊임없이 인지도를 높여가는 방식이 일본인의 성미에 맞는지도 모르겠다.”

2010년부터 2014년에 각국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실시한 전 세계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동성애에 대한 일본 젊은이의 관용도는 높지만 20대와 60대 이상의 세대 차이가 크다고 나타났다. 젊은이들이 사회의 중추가 되면 성 소수자 문제가 급진전을 보일 것이다.

변화에 가속도를 붙인 건 갈수록 늘어나는 성 소수자 지원 단체들이다. 2011년 설립된 일본성소수자협회는 법률 상담이나 부동산 소개 등의 생활 지원을 실시한다. 설립 초기엔 협력 기업을 찾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라는 등 신랄한 지적을 많히 받았다”고 요시미 일본성소수자협회 이사는 말했다. “최근엔 이런 활동이 알려지면서 기업들도 평범한 일로 받아들인다. 호텔측에서 행사 문의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교육 현장도 바뀌고 있다. 문부과학성은 올해 4월 전국 초·중학교에 성 소수자 어린이들을 배려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의식하기 시작한 나이대의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대응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은 의미가 크다. 당사자나 그 주변에 이른 시기부터 “성 소수자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성 소수자 아동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 리빗은 지자체나 학교를 대상으로 연수나 출장 수업을 실시한다. 약사로 일하는 대표이사 미카는 “5년 전 처음 출장 수업을 시작할 당시 100개 정도 학교에 수업을 제안했지만 ‘우리 학교에 그런 아이는 없다’거나 ‘그런 성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다’며 모두 거절했다”고 돌이켰다. “이젠 연간 100회 가까이 수업을 실시한다.”

‘성적인 이야기’란 표현이 보여주듯이 성 소수자를 성이나 연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성 정체성은 국적이나 성장 배경과 마찬가지로 정체성의 문제다. 부정적으로 접근하면 자존감의 저하로 이어진다. 다카라즈카대학 간호학부 히다카 야스하루 교수의 조사에서 동성애·양성애 성향 10대 남성 가운데 무단 결석 경험이 있는 사람은 23%, 자해한 사람은 18%로 나타났다. 올해 문부과학성의 조사에선 전체 중학생 중 2.76%만이 결석한 적이 있고, 16세~29세 남성 중 자해 경험자는 3%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일본에는 성 소수자가 없다는 인식도 문제다. 정확한 파악은 어렵지만 각종 조사에 따르면 성 소수자는 총 인구의 4~7%로 추정된다. 학교로 치면 각 반 별로 2명 정도에 해당하는 수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2013년 조사에서 “주변에 성 소수자가 있다”고 응답한 일본인은 5%에 그쳤다. 16개국 평균치 46%에 비해 크게 낮다.

사회 전반의 성 소수자 이해도가 낮은 탓에 괴로움을 겪는 성 소수자는 많다. 비정부기구 무지개색 다양성과 국제기독교대학 젠더연구센터가 올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성 소수자의 57%가 “차별적인 언동이 있다”고 응답했다. 우울증을 겪은 비율이 높았고, 동성과의 교제를 이유로 퇴사를 종용당한 사례도 있었다.

성 소수자가 우리 주변에도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존재를 드러내야 한다. 그러나 커밍아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다. 공개했다가 편견에 상처받는 경우도 있다. 성 소수자가 목소리를 높이는 동시에 다수파가 거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언론인이자 게이인 기타마루 유지는 “커밍아웃은 우선 스스로가 자신을 인정하고 자부심을 갖는 일”이라며 “숨어 있으면 인간으로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커밍아웃이 어려운 건 게이나 레즈비언을 TV에서나 볼 수 있어 보통 사람에게 현실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기업도 다양성이나 인권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한다. 차별금지를 행동수칙으로 명기하거나 성 소수자 학생을 대상으로 취업설명회를 개최한다. 다만 이것을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인권 문제로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EY어드바이저리에서 인사 컨설팅을 제공하는 히가시다 마사키는 지적했다. “성 소수자 문제에서 직원들의 반응이 좋은 접근 방식은 ‘다양한 인재를 활용해야 기업의 성장이나 이익 향상에 필요하다’는 ‘시각이나 성과에서 객관적으로 사원을 평가할 수 있는 기업문화’다.”

히가시다는 사내에서 커밍아웃했다. 평범한 게이 회사원이란 롤 모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존재를 드러내면서 모두가 자신 있게 이력을 쌓아나가는 직장을 만들고 싶다.”

글 = 뉴스위크 일본판 오하시 노조미, 고구레 사토코 기자  번역 = 이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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