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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 60대 한대수가 부르는 희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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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거운 날이면 한대수(67)의 '희망가'(2집 고무신, 1975년)를 부른다. "이 풍진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한대수가 쓴 곡은 아니다. 작자 미상의 노래다. 100여 년 전 누군가 일본에서 들어온 노래에 지금의 가사를 붙여 불렀다. 원래는 미국 찬송가라고 한다. 일제시대가 배경인 영화 '청연'(2005, 윤종찬 감독)에서도 남자 주인공(김주혁)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희망가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희망가 가사의 풍진세상은 먼지가 바람에 흩날리는 어지러운 세상을 말한다.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란 부분은 부귀와 영화만으로 희망을 채울 수 없다는 걸로 들린다. 젊은 시절 한대수는 그랬다. 그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금수저와 멀어진 사람이다. 할아버지 한영교 박사는 연세대 대학원장과 신학대 학장을 지냈다. 미국 유학 후 종적을 감춘 아버지는 핵물리학자로 알려졌다. 한대수는 고교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미국에 건너간 뉴욕 사진학교를 나왔다. 그는 밥 딜런, 존 바에즈를 보며 동시대 모던 포크를 온몸으로 흡수했다. 70년대 한국 활동 당시 '물 좀 주소'가 있는 1집과 '희망가'가 있는 2집을 냈지만 이 땅에선 음악을 계속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대수는 90년대 중반부터다. 신문에 그의 칼럼이 실리고 록 페스티벌 무대에도 종종 섰다. 그전까지는 미국에서 사진가이자 음악가로 살았다.

한대수가 다시 한국을 떠나려 한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나이 일흔을 앞둔 지금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린 딸(양호)의 교육 문제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것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학생들을 죽이는 시스템인데, 이런 환경에서 딸을 무사히 교육할 자신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대학생 시절 길에서 몇 번 한대수를 마주친 적이 있다. 이름 모를 팬인 나에게 그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환한 미소 뒤 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아내 옥사나는 알코올 의존증에 걸렸다고 알려졌다. 한대수는 67세 나이에 초등생 딸 양호를 위해 매일 출퇴근하며 '화폐'를 벌어야 한다. 자신을 "고시원에 사는 로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대수는 이주를 고민하는 이유로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와 교육을 들었다. 60대 음악가가 생계와 딸의 교육으로 걱정한다.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이 이와 다르지 않다.

강남통신 김중기 기자 haaha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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