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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청년 꼭 안아준 파리 … 미국선 모스크에 인분 투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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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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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프랑스 파리의 공화국 광장에서 한 무슬림 청년이 테러로 인해 고조된 반(反)이슬람 정서를 녹이기 위해 프리허그에 나섰다. 머플러로 눈을 가린 채 수백 명의 파리 시민과 껴안은 이 남성은 “저 역시 테러 희생자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다”며 “무슬림과 테러리스트는 동의어가 아니다”고 말했다. [유튜브 캡처]

전 세계를 경악시킨 파리 테러의 여파로 이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과 공포가 커지는 가운데 “이슬람포비아에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는 움직임도 거세게 일고 있다.

파리 20대 청년 눈 가린 채
“나는 무슬림, 테러범 아니다”
프리허그하던 시민들 눈물
무슬림 학자는 동영상 제작
욕설 섞어 극단주의자 비난

 17일 프랑스 파리 공화국 광장. 18세기 후반 프랑스 대혁명의 ‘자유·평등·박애’ 정신을 상징하는 이곳에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던 시민들이 광장 가운데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 무리 속 20대 무슬림 청년은 머플러로 눈을 가린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파리 시민들을 말없이 껴안기 시작했다.

 청년의 두 발 앞에 놓인 피켓에는 ‘나는 무슬림입니다. 그러나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라고 적혀 있다. 감정이 벅차오른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끌어안았다. 이들은 말없이 한참을 껴안고 서로를 위로했다. 현장에 있던 프랑스 경찰이 만약을 대비해 그의 신원을 잠시 확인하기도 했지만 이 청년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해가 저문 뒤 저녁까지 프리허그를 이어간 이 청년은 마침내 머플러를 풀고 사람들에게 큰 목소리로 호소한다.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저를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 누구도 살해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안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모든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깊이 슬퍼할 것입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무슬림 청년의 말이 테러로 얼어붙은 파리 시민의 마음을 녹였다”며 테러 이후 공화국 광장에서 릴레이처럼 이어지고 있는 프리허그 행렬을 소개했다. 17일 광장에 모인 파리 시민들은 “파리는 사랑의 도시” “사랑의 힘으로 연대해 테러와 싸우자”는 메시지를 외쳤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무슬림 30명은 피켓을 들고 ‘반(反)이슬람포비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잔인함에 맞서 모두가 뭉쳐야 한다”며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곧 인류 전체를 죽이는 것이다. 누군가를 살리는 것은 곧 인류 전체를 구하는 것”이라고 외쳤다. 프랑스 내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약 7.5%인 470만 명으로 유럽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무슬림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비중동 국가 중 가장 많은 지하디스트를 양성하고 있는 국가에서 파리 테러까지 터지면서 사회 전반에 반이슬람 정서가 빠른 속도로 팽배하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이날 한 무슬림 학자가 욕설이 섞인 강한 어투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비난하는 동영상을 소개했다. 영국에 사는 이 남성은 유튜브에 올린 3분짜리 동영상에서 “너의 종교, 우리의 종교, 그리고 나의 종교인 이슬람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대체 무엇이냐”며 지하디스트들을 향해 일갈했다. 그는 이번 테러를 저지른 범인들을 언급하며 “이슬람은 너희에게 관대하고 다른 사람들의 신념을 존중하라고 강조한다”며 “이 나라를 존중하기 싫었다면 대체 왜 여기까지 넘어온 것이냐”고 소리쳤다.

 미국 하버드대의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월트 교수도 지난 16일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에 기고한 글에서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쳐놓은 종교적·문화적 갈등의 덫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이슬람포비아에 대한 경계와 근절을 강조한다. 현실주의 국제정치론자인 그는 “IS가 서구사회 내 반이슬람 정책과 반이슬람 정서를 도발해 무슬림의 반서방 규합을 노리고 있다”며 “우리가 IS의 덫에 빠지는 순간 그들(IS)이 영웅 혹은 선지자가 된다”고 경고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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