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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이민 2세대 박탈감 자극 … IS, 단기간에 자폭테러범 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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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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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살고 있는 나라는 네 조국이 아니다.”

유럽 높은 실업률 … 저소득층 공략
IS “네 뿌리 찾아라” 고도 심리전
게임 빠진 10대들 영웅주의도 이용

 파리 테러를 저지른 범인들은 시리아나 이라크 같은 중동 분쟁지역 출신이 아니었다. 서유럽에서도 중심 국가인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태어나 서구화된 교육을 받은 인물들이었다. 도주 중인 테러범 살라 압데슬람(26)도 마찬가지다. 형 이브라힘(31)과 벨기에 몰렌베이크에서 바를 운영하던 그는 2주 만에 잔혹한 테러범이 돼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서구화된 출신 배경을 가진 이들이 이슬람국가(IS) 전사가 되거나 테러범으로 변신하는 이유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파리 테러범의 경우 과거 이슬람 무장단체 가담자들과 달리 단기간 내에 변신한 것이어서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로이터통신 등 유럽 언론들은 IS가 이민자 2세들의 ‘약한 고리’를 노리고 있다고 추정한다. 최근 유럽에서 반이슬람 정서가 높아지면서 보이지 않는 차별이 늘어난 데다 높은 실업률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저소득층 지역을 IS가 집중적으로 공략한다는 것이다.

 IS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동영상 등을 통해 고도의 심리 조작을 시도한다. 공략 대상인 이슬람계 젊은이들에게 태어난 나라와 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불어넣고 정체성 혼란을 부추긴다. “네가 살고 있는 나라는 네 조국이 아니다” “기독교 국가는 네 종교를 박해한다” “네 뿌리를 찾아라”는 식의 자극이다.

 모스크를 순회 방문하는 이맘(이슬람 성직자)을 이용하기도 한다. IS가 포섭한 ‘방문 이맘’(Visiting imam)’들이 판단력이 떨어지는 10대들에게 급진주의 사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13일 바타클랑 극장 테러에 가담한 뒤 자살폭탄을 터뜨려 숨진 사미 아미무르(28)도 방문 이맘에 의해 급진주의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이나 영화에 노출된 10대들이 허상 같은 영웅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나이지리아의 IS 연계 조직인 보코하람은 최근 선전 동영상에서 IS에 가담한 젊은이들이 초원에서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IS에 들어오면 하고 싶은 일을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영상 속 젊은이들은 비디오게임 속 주인공처럼 지프를 타고 초원을 누비며 자동소총을 난사한다. IS에 가담하면 어딘가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속이는 것이다.

 파리 테러의 설계자로 알려진 압델하미드 아바우드(27)도 지난해 3월 공개된 동영상에서 마치 ‘액션스타’처럼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등장했다. 그는 미국산 대형 픽업트럭에 사살된 시리아 정부군의 시신을 매달고 초원을 달리는 등 잔혹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심리 조작과 선전이 있다고 하더라도 평범한 청년이 하루아침에 자살폭탄 테러범으로 변신하는 기이한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순 없다. 하지만 서유럽 출신 젊은이들은 지금도 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로 떠난다.

 영국 싱크탱크인 국제급진화문제연구센터(ICSR)는 서유럽 국가에서 IS 등 이슬람 무장단체에 가담한 ‘외국인 지하디스트’는 최대 36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했다. 프랑스가 1200여 명으로 가장 많고 독일·영국이 500여 명으로 뒤를 이었다.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외국인 지하디스트’를 배출한 나라는 벨기에다. 지금까지 400여 명이 이슬람 무장단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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