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관용의 대국 프랑스, 실낙원 되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기사 이미지

파멜라 드러커먼
NYT 컬럼니스트

12년 전 프랑스를 처음 찾았을 때 나는 마치 불친절한 낙원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나에게 말 거는 프랑스인은 없었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유급 출산휴가가 있었고 유치원도 무료였다. 피임과 낙태의 권리가 보장되고 의료보험이 전 국민에게 제공되는 것도 좋았다. 불법 이민자들이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는 프랑스인의 사고방식을 좋아하게 됐다. 랩 가수들이 계몽철학자 루소를 얘기하고 철학이 고등학교 필수과목이며, 의상이나 결혼 같은 일상사를 소재로 삶의 이중성을 토론하는 그들의 문화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자인 나는 프랑스인들의 추상적 사고력에 특히 경탄했다. 불륜을 주제로 파리 시민들과 인터뷰했다. 응답자 대부분은 “‘정절’의 의미가 뭐냐?”고 되물었다. 배우자에게 진실한 것을 뜻하는지 아니면 자신에게 진실한 것을 뜻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프랑스인은 “사람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생각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기사 이미지

 그들의 이런 생각은 투철한 윤리관으로 이어진다. 1970년대 공산화된 베트남에서 난민 수십만 명이 탈출하자 수십 년간 대립해온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와 레몽 아롱은 “난민들을 도와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목숨을 위협받는 사람은 구원돼야 한다. 그들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사르트르는 기자회견에서 강조했다. 당시 프랑스는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에서 탈출한 보트피플 13만 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프랑스의 과거 식민지인 알제리 등에서 프랑스로 들어온 난민까지 합하면 조부모 중 적어도 한 명이 외국인인 국민이 인구 네 명 중 한 명에 달하는 이민자의 나라가 됐다.

 지금 프랑스는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이 급격히 세력을 불리고 있다.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프랑스의 과거 식민지 출신 국민들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경향도 확연해 안타깝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긍정적인 뉴스도 많다.

 파리를 비롯해 프랑스 도시 대부분의 일상은 유쾌한 다문화의 경험으로 가득하다. 내가 사는 마을의 치즈 가게는 세르비아인과 결혼한 모로코 여성이 운영한다. 내 쌍둥이 자녀가 다니는 공립학교엔 집에서 아랍어와 중국어·이탈리아어를 쓰는 아이가 많다. 올해 내 아이들의 생일파티엔 레바논과 그리스·포르투갈 이민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참석해 함께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불렀다. 그런 만큼 나는 얼마 전 시리아 난민 수십만 명이 유럽에 도착했을 때 프랑스가 이들을 기꺼이 받아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앞으로 2년간 2만4000명을 추가 수용하겠다”고만 발표했다. 프랑스 전역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는 2만4000명 수용이 ‘충분’하거나 ‘아주 충분’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은 “난민들이 우리 마을에 오는 것을 반대한다”고 했다.

 좀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보자. 국제이주기구는 올해 중동에서 난민 72만4000명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왔고, 육로로 들어온 난민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독일은 그중 80만 명 이상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는 난민을 환영하지 않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게끔 유도하는 전략을 쓰는 것 같다.

 프랑스 난민캠프는 ‘정글’로 불린다. 정글의 수용 인원은 6000명으로 불어났지만,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영국이 대부분이다. 지난 9월 뮌헨에 있던 난민들을 데려오기 위해 독일로 떠난 프랑스 관리들도 절반이 빈 버스와 함께 돌아왔다. 세계를 위해 생각하는 관용의 국가 프랑스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사르트르는 전 세계에서 이름을 날렸지만, 요즘 프랑스 지식인들은 대부분 국내에서만 유명하다. 상당수가 우편향됐거나 난민 지원에 반대하고 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지지율이 급등한 국민전선에서 유권자를 빼앗아 오기 위해 모든 정당이 이민자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 다른 불편한 진실이 있다. 프랑스 내 이민자는 대개 무슬림이다. 2013년 정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무슬림도 프랑스 국민”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65%에 불과했다. 그 4년 전인 2009년엔 80%였다.

 경제 악화 등의 이유로 프랑스 내부 상황이 나빠진 탓도 있다. 한때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프랑스인 특유의 퉁명스러운 어조나 건조한 멋이 암울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시리아 난민들이 수천㎞ 떨어진 프랑스까지 온 이유에 대해 ‘무료로 충치를 고치려고’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세계 6위의 경제대국인 프랑스가 난민 문제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프랑스인들 마음에 퍼지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난민 문제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결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침체된 프랑스 사회는 활기를 되찾을 것이고 모두가 동의하는 (자유·평등·박애의) 메시지를 계속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파멜라 드러커먼 NYT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