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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위해 뛰는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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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조문규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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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적십자사 총재는 지난 13일 “남북 간 당국회담이 이뤄져야 이산가족 상봉이든 다른 사업이든 전체적인 윤곽이 짜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문규 기자]

지난달 말 60여 년의 한 맺힌 생이별 끝에 피붙이와 옛 임을 만난 이산가족 980여 명의 심경은 한마디로 안타까움이었다. 8·25 합의의 첫 결실인 이번 상봉을 통해 기적처럼 그리운 이를 보고, 손잡을 수 있었지만 단 12시간 만에 가슴 찢어지는 이별을 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안타까움을 누구보다 절절히 공감한 이가 있다. 바로 김성주(59) 대한적십자사 총재다. 비극의 현장을 직접 목도한 김 총재는 “통일 한국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사라지기 전에 이산가족 상봉이 반드시 정례화, 상시화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발목을 잡는 게 있다. 인도적 접촉마저 쉽게 허용되지 않는 가슴 아픈 현 상황이다. 그럼에도 타고난 긍정적 성격의 김 총재는 절대 굴하지 않는다. 그는 “북한 적십자 측이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고 의욕이 넘쳤다”며 “남북 당국회담 성사와 같은 정치적 분위기만 무르익으면 큰 성과가 나올 게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온갖 화제를 뿌려온 김 총재가 지난달로 취임 1년을 맞았다. 마침 올해는 적십자사 출범 110주년이다. 이를 계기로 지난 13일 이산가족 상봉을 포함한 남북교류와 그간의 활동 등에 대한 김 총재의 이야기를 들었다.

개성공단에 모자보건소·적십자병원 세우고 싶다

-지난 이산가족 상봉은 어땠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 잘 먹고 가슴 뭉클한 재회와 함께 좋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다만 부모·형제 같은 피붙이들은 괜찮지만 60년 넘게 떨어져 살아온 부부들은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아내는 60년 넘게 수절했는데 남편은 다시 결혼해서 자식·손자까지 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북측 단장인 이충복 적십자중앙위 위원장에게 ‘한국인들은 모두 여흥을 좋아하니 아리랑이라도 같이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예정에 없어서 곤란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축사 뒤 내가 ‘아리랑을 함께 부릅시다’라며 선창하자 모두 함께 따라 불렀다. 나중에 기자들이 백미였다고 하더라. 북측은 처음에 걱정을 했지만 분위기가 좋아진 사실은 인정해 앞으로는 별도의 여흥 시간을 갖기로 했다.”

 -무슨 마음으로 아리랑을 제안했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6월 적십자사 동북아 5개국 회의가 몽골에서 열린 적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궁 만찬에 초대됐는데 이 자리에 북한 대표단도 참석했다. 다른 나라 대표단의 인사말이 길어져 분위기가 가라앉아 내가 북한 측에 ‘함께 아리랑을 부르자’고 제안해 성공적으로 합창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함께 노래를 부르자 다른 나라 대표단이 기립 박수를 쳐줬다. 참으로 성공적인 이벤트였다.”

 -북한과의 논의는 잘됐나.

 “상봉 4~5일 전 갑자기 북쪽에서 위원장이 바뀌었다는 소식이 왔다. 지금까지 이 자리는 남북 모두 나이 지긋하고 상징적인 인물이 맡아 10~20년 하는 게 관행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임명된 이충복 위원장은 연배가 나와 비슷하고 여러 사업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의 전격 발탁 소식을 듣고는 내심 좋은 징조라 해석했다. 북측이 나와 어울리는 인물로 맞췄다고 생각한 거다. 아니나 다를까 부드러운 농담으로 시작해 분위기가 참 좋았다.”

 -실질적인 성과도 있었나.

 “항상 그렇듯 우리는 이번만 할 게 아니라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상시화·정례화하자는 쪽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이 위원장이 ‘당국끼리 모여서 결정할 일이지만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굉장히 긍정적으로 화답하더라. 그러면서 그는 ‘이런 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고 준비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그쪽에서 말하는 준비라는 건 당국회담 성사와 같은 실질적 분위기와 환경이다.”

 -뭐라고 답했나.

 “우리가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산가족들의 생사 확인이 더 먼저 아니냐’고 했다. 우리 적십자사는 이미 생사 확인을 마친 상태다. 100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동원해 전체 이산가족 12만 명 중 생존자로 파악된 6만6000여 명과 전화 접촉을 시도했다. 그랬더니 이 중 35%는 연락이 안 됐고 통화가 된 생존자 중에서도 건강 또는 개인적 사정 등으로 만나지 않겠다는 숫자가 꽤 있었다. 결국 전체 생존자 중 3만여 명이 헤어진 북쪽 가족과의 재회를 희망하고 있는 걸로 파악했다. 이런 사실을 이 위원장에게 알려주자 놀랍게도 ‘북쪽에서도 생사확인을 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우리 모두 다 놀랐다.”

 -그럼 생존 이산가족 모두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건가.

 “바로 그거다. 북한에서 생사확인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큰 수확이다. 이 위원장은 그러면서 ‘빨리 당국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다. 당국회담이 이뤄져야 이산가족 상봉이든 다른 사업이든 전체적인 윤곽이 짜질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한 것으로 보아 북측에서도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다음 단계는 뭔가.

 “무엇보다 남과 북이 전수조사를 마친 이산가족 생존자 명단을 교환하는 거다. 우린 다 돼 있고 저쪽에서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가급적 빨리 교환하고 싶다.

 -다른 사업이 논의되진 않았나.

 “우리 적십자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고 했더니 ‘뭘 하고 싶은지 말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5만4000여 명의 북한 근로자 대부분이 여성인 만큼 모자보건소를 만들어 분유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우리 적십자사에는 이미 20만t의 분유가 확보돼 있다. 또 공단 내에 적십자 병원과 혈액원도 짓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중장기적으로 합시다’라고 흔쾌히 대답하더라. 북측의 반응이 너무 긍정적이었다. 그래서 물꼬만 잘 터주면 모든 게 다 잘될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적십자 활동이 통일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나.

 “통독을 일궈낸 서독 동방정책의 산파 에곤 바(Egon Bahr)는 ‘항상 통일을 생각하되 통일을 말하지 말라’고 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통일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통일을 이루려면 말없이 뚜벅뚜벅 나아가야 한다. 이런 사업은 적십자만이 할 수 있다. 한 나라에 하나씩밖에 없는 적십자는 마음대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다.”

 -낙하산 인사라는 이야기가 있다.

 “처음엔 내가 와야 할 자리인지 고민했다. 다른 훌륭한 분도 많고 옛 총재들에 비해 나이도 어리고. 하지만 나라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영감을 받았다. 국제적 경험을 살리면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하고 봉사하겠다는 일념에 이 일을 맡기로 한 거다. 이 인사가 유세에 대한 보은이면 절대 안 왔다. 박근혜 후보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지난 대선 때도 선거가 끝나자마자 바로 사라지지 않았느냐. 그간의 적십자 총재치고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가. 근데 왜 나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국영단체장으로 임명돼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겐 별 이야기 없고 무보수로 봉사하는 나에게 왜 정치적 임명이라고 하는가.”

 -총재 취임 이후 한 푼도 안 받는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총재 임명 소식이 발표됐을 무렵 유럽에 출장 가 있는데 ‘어떤 명패를 원하느냐’는 문의가 왔다. 그래서 ‘나를 위해선 1원도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내가 여기 온 건 철저히 봉사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업무추진비도 한 푼 받지 않으며 해외출장비마저 개인 돈으로 충당한다. 또 적십자사에서 내주는 승용차 대신 내 차를 쓴다. 그 돈이면 한 명이라도 더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라고 했다.”

 -본인이 원하는 총재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나는 취임 이래 110년 된 적십자를 21세기형 조직으로 탈바꿈시키도록 노력해 왔다. 미래지향적 조직에선 상사가 ‘보스’ 아닌 ‘리더’여야 한다. 보스는 수직적 조직의 우월한 존재지만 수평적 조직에서 섬김의 통솔력을 발휘하는 게 리더다.”

 -지난해 불참해 홍역을 치렀던 국감에 올해는 참석해 잘 넘겼다. 국감을 치른 소감은.

 “지난해에는 아태지역 적십자 지도자회의에 가느라 불가피하게 제때 국감에 참석하지 못했다. 189개국 적십자 중 국감을 받는 건 한국밖에 없다. 스위스 적십자는 1000억원 이상을 지원받고 있고 일본도 이에 못지않다. 우리 적십자사는 겨우 20억원밖에 지원받지 못하는데 왜 국감을 받아야 하는지 묻고 싶다. 한국 적십자사는 정치적 독립을 이루지 못해 적잖은 제약을 받고 있다. 적십자사는 정치적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적십자사 회계 부정 시비가 불거졌는데.

 “적십자사와 같은 비영리단체의 계정과 회사의 계정은 다르다. 재무제표상 아무런 잘못이 없다. 다만 계정이 달랐던 거다.”

글=남정호 논설위원
사진=조문규 기자

김성주 총재는 …

대성그룹 김수근 회장의 막내딸로 1990년 패션업체인 성주그룹을 설립했으며 2005년에는 독일에 본사를 둔 명품 브랜드 MCM을 인수해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냈다. 성공한 여성 기업인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거절해 왔다. 그러다 2012년 대선 당시 돌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아 튀는 발언과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숱한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박 후보 승리 후엔 홀연히 정계를 떠났다 지난해 10월 적십자사 총재로 지명돼 또다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애머스트대·하버드대와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도 수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