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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바리케이드 예산만 깎겠다는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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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형구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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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구
정치국제부문 기자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14일 ‘민중 총궐기대회’ 이후 경찰의 과잉진압 문제를 연일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 시위 참가 농민 백남기(68)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지면서다.

 17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선 ‘경찰 예산 삭감론’이 나왔다. 국회 예산결산특위 야당 간사인 안민석 의원은 감액해야 할 경찰청의 네 가지 사업 예산을 하나하나 꼽았다.

 ▶바리케이드 구입 등으로 편성된 경비경찰 활동사업(9억원) ▶채증 장비 교체를 위해 편성된 치안정보 활동사업(18억원) ▶기동대 버스 관련 예산인 경찰기동력 강화사업(113억원) ▶의경 대체 지원사업(20억원) 중 살수차량과 카메라 구매 예산 등이었다.

 문재인 대표도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대표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농민은 쌀값 폭락 때문에 힘들다며 대책 좀 마련해 달라는 기본적인 호소를 했을 뿐인데 정부는 살인적인 물대포로 폭력 진압을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은 국회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등 대여 공세 수위를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에 토를 달 생각은 없지만 갑자기 경찰 예산을 문제삼고 나선 건 좀 뜬금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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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난달 21일 경찰의 날 70주년 때 새정치연합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이날 문 대표는 일선 경찰 근무현장을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경찰은 우리 사회를 말 없이 지켜주고 계시는 영웅들이다. 그런데 그 노고에 비하면 아직 처우도 열악하고 인력도 많이 부족해 늘 격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문 대표는 “정권 교체를 하면 경찰의 숙원사업인 ‘수사권 조정’도 해내겠다”고 약속했다.

 폭력시위와 과잉진압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1차 책임은 물론 정부 여당에 있다. 하지만 수권정당을 자처하는 야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진 않다. 새정치연합은 집권 경험도 있다. 문 대표도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5·18 기념행사가 한총련 집회로 차질을 빚자 “집회 참가자들도 자신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폭력시위를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야당에선 철제 사다리로 버스 위에 서 있는 경찰을 찌르고, 쇠파이프를 던지고, 새총으로 돌멩이를 쏘는 과격 폭력행위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일부 단체의 과격한 행동이 일반 시민의 참여까지 퇴색하게 하고, 극단적 관점의 대립으로 국민이 둘로 쪼개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폭력시위와 과잉진압이 사라지도록 달라진 대안을 내놓는 게 지금의 제1 야당이 해야 할 일이다. 화풀이하듯 경찰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해서 야당이 문제 삼는 과잉진압이 금방 없어질 것 같지도 않다.

김형구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