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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거짓된 이름의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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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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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왜 하필 파리인가.” 여러 사람이 물었다. 파리에서 산 적이 있고, 그 시절 이슬람권 분쟁 지역을 취재하러 다녔다는 이유로 질문을 받는 입장이 됐다. 비교적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가 보장되는 서유럽의 중심에 있어 테러에 취약하고, 미국·영국처럼 정보기관의 광범위한 감청에 의해 위험 인물들을 감시하기 쉽지 않은 정치적 환경이 있다는 정도로 프랑스의 상황을 설명했다.

 하나를 추가하자면 이슬람국가(IS)의 테러리스트들이 증오심 증폭에 활용할 수 있는 십자군전쟁의 구원(舊怨)이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권에는 십자군전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파란즈나 이프란즈의 침략으로 부른다. 파란즈·이프란즈는 프랑크족, 즉 오늘날의 프랑스인을 의미한다(아민 말루프, 『Les croisades vues par les Arab』). 은자(隱者) 피에르가 부르짖은 성전(聖戰)의 주력군이 프랑크 기사들이었고, 이슬람인들에게 이 전쟁은 프랑크의 도발로 정의됐다. IS의 근거지인 시리아는 십자군전쟁 초기에 초토화됐다.

 파리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압델하미드 아바우드(27)는 IS 홍보 매체 ‘다비크’와의 인터뷰에서 “무슬림을 겨냥해 전쟁을 벌이는 십자군을 응징하기 위해 신의 선택으로 유럽에 입성했다”고 말했다. 십자군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선동이다.

 ‘Au nom de quoi?’ 파리 참사 현장에 누군가가 이런 글귀의 메모지를 꽂아 놓았다. 유리창에 난 총탄 구멍에 장미 한 송이와 함께. 그는 “어떤 이름으로?”라고 물었다. 당신들은 ‘신의 이름으로’라고 이 잔혹함을 정당화할 것이냐고 조용히 꾸짖었다.

 900년 전 십자군은 ‘Deus lo vult!’를 외쳤다. ‘신이 (그것을) 원한다’는 명분으로 150년 동안 일곱 차례의 성지 점령 원정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그것은 신의 명령도, 의지도 아니었다. 교황 우르반 2세의 근거 없는 주장일 뿐이었다.

 전 세계 곳곳의 무슬림들은 지금 그들의 신은 결코 테러에 의한 살육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IS가 신의 부름을 받은 것도 아니라고 한다. 결국 거짓 명분으로 포장한 광기의 폭력일 뿐이다.

지난해에 미국이 시작한, 16일 프랑스가 전면적으로 합류한 시리아의 IS 근거지 공습의 작전명은 ‘Inherent Resolve’다. 흔히 ‘내재적 결의’로 번역된다. Inherent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뜻이므로 본능적 응징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허명(虛名)의 싸움은 오늘도 계속된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