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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한·중·일 정상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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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 <2015년 11월 2일자 30면>
한·중·일 협력 재개 발판 마련한 3국 정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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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 정상이 어제 한자리에 모였다. 2012년 5월, 베이징에서 머리를 맞댄 이후 3년 반 만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어제 청와대에서 3국 정상회의를 갖고 “이번 회의를 계기로 3국 협력 체제가 완전히 복원됐다”고 선언했다. 무려 56개 항목에 이르는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공동선언’도 채택했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로 냉랭했던 3국 협력 프로세스가 정상화하는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한·중·일 정상은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3국이 관련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고 양자 관계 개선 및 3국 협력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경제적 상호의존과 정치안보 상의 갈등이 병존하는, 이른바 ‘동북아 패러독스’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도 인식을 같이했다. 이미 운영되고 있는 20여 개의 장관급 협의체를 포함해 50여 개의 정부 간 협의체 및 각종 협력사업을 보다 활발히 추진해 나간다는 데도 합의했다. 또 3국 협력기금(TCF) 조성을 통해 3국 간 협력 사업을 더욱 확대·발전시켜 나간다는 데도 합의했다. 아울러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의미 있는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시들했던 3국 간 협력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본격화하는 발판을 마련한 점이 이번 정상회의의 가장 큰 성과다.

 글로벌 저성장 시대를 맞아 3국 간 경제통합에 속도를 내기로 한 점도 눈에 띈다. 높은 수준의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 협상을 본격화하고, 중국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 타결에도 노력하기로 했다. 또 전자상거래에 대한 규제와 장벽을 철폐해 15억 인구의 디지털 단일시장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2.8%(16조9000억 달러), 교역액의 18.6%(6조9000억 달러)를 차지하는 한·중·일 3국의 경제적 협력과 통합은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글로벌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는 한국의 주도로 성사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면서도 한·일 관계 복원을 바라는 미국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결과다. 이번 정상회의가 실질적 의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합의 사항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다시 과거사나 영토 문제에 발목이 잡혀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역사와 영토 문제를 3국 간 협력과 분리하는 투트랙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이를 위해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를 지향한다는 정신에 입각해 실질적 협력을 흔들림 없이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가 중요하다. 과거사나 영토 문제로 3국 협력 체제가 다시 삐걱댄다면 어제 한자리에 모였던 세 정상은 한·중·일의 15억 국민은 물론이고 국제사회 전체를 기만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겨레 <2015년 11월 2일자 31면>
한·중·일 정상회의 복원, 동북아 새 협력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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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가 1일 청와대에서 3년 반 만에 한·중·일 정상회담을 했다. 세 나라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정례적으로 정상회담을 해왔다. 하지만 2012년 9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면서 우리나라가 개최국인 2013년부터 회담이 열리지 못해왔다. 중단 위기에 있던 3국 정상회담의 틀을 이번에 우리나라가 주도해 복원한 것은 의미가 크다.

 3자회담 재개에는 그간 중국이 일본의 태도를 문제 삼아 강하게 반발해왔으나, 우리나라가 적극 중재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미얀마에서 열린 ‘아세안 플러스 3’ 정상회의에서 처음 공식 제기하고, 올해 9월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해 시진핑 주석과 회담하면서 중국의 참여를 이끌어낸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주변국의 갈등 속에서 한국 외교가 주도력과 공간을 잘 활용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총리와 리커창 총리도 회담 복원에 대한 한국의 노력을 평가하고 이 회담을 새로운 3국 협력의 틀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3국 정상회담의 틀이 복원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세 나라 관계가 3년 반 이전으로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최대 쟁점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아직도 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은 채 남아 있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영토 문제와 역사 문제, 남중국해 문제 등에 대한 갈등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아베 총리와 리커창 총리가 회담 머리발언에서 각각 “지역·국제 문제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하겠다”, “협력은 타당하게 역사를 비롯한 민감한 문제를 처리하는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가시가 든 발언을 한 것은 상대에 대한 불신의 앙금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로서는 북한 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경제 번영을 위해서라도 주변국들이 갈등하지 않고 협력하는 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번 한차례의 3국 정상회담 복원에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도 꾸준히 중국,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공통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노력을 활발하게 펼쳐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이런 국제적 노력도 나라 안팎에서 힘과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논리 vs 논리] 중앙 “저성장 시대 활력소 될 것” … 한겨레 “한반도 평화 위해 협력체제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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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가운데)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1일 청와대에서 한·일·중 정상회의에 앞서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1일, 서울에서는 한·중·일 3국의 정상이 만나 동북아시아의 현안을 논의했다.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은 2008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진행되어 오다가 2012년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이후 과거사와 영토문제(한·일은 독도 문제, 중·일은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문제)를 이유로 2013년부터 중단되었다. 이번 회담은 3년 반 동안 멈추어 있던 3국 정상회담이 한국 주도로 서울에서 재가동됨으로써 협력의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한·중·일은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 거주하고 있으며, 국내총생산(GDP) 16조 달러에 이르는 거대 경제구역이다. 또 잠재적 화약고인 북한과 인접해 안보 면에서도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상호 협조와 동반자적 자세가 필요한 때에 정상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외교·안보 및 경제 분야에 걸쳐 포괄적 의제가 다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향후 동북아시아 향방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로 이번 회담에서 3국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가속화, 3국 정상회담 정례화 등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했다.

 한겨레와 중앙은 한·중·일 정상회담 성사에 맞추어 긍정적인 사설을 실었다. 한국의 주도적인 노력으로 막혀 있던 물꼬를 뚫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고, 3국이 지속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하기를 주문했다. 우려도 없지 않았다. 한겨레는 갈등 현안에 대해 기존 입장을 고수한 중·일 정상의 모두발언에서 불안 요소를 짚어냈다. 중앙은 과거사와 영토 문제에 발목이 잡혀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상황을 경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국 정상의 만남이 복원되었다는 것 자체가 성과라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그러나 정상회담 의제가 매우 광범위했던 만큼 관심을 집중시킨 분야가 달랐다. 한겨레는 북핵과 한반도 ‘평화’에, 중앙은 ‘경제’ 분야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겨레는 3국 간 갈등의 불씨가 쉽게 꺼지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에 주목했다. 한·일 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중·일 간에는 남중국해 문제가 여전하다. 한·중은 공통적으로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으나, 지난 9월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는 안보 법안을 통과시켜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은 핵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어 주변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겨레는 3국의 협력체제가 안정되려면 한반도 안전이 필수임을 강조한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3국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평화협력을 이끌어낼 때 경제협력도 안정화될 수 있다는 한겨레의 조언은 근본적 해법이다.

 한편 중앙은 3국 간 경제통합의 가속화 합의에 주목하면서 저성장 시대의 활로가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높은 수준의 한·중·일 FTA,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CP), 전자상거래 단일시장 구축 등이 현실화되면 성장동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 기대를 표했다. 해법에 있어서도 경제협력과 역사 및 영토 문제를 분리해 사고하라는 ‘투트랙 접근’을 제시한다. 3국 간 분쟁 현안은 단시일에 해결되기 어렵고 또 매우 큰 국제질서 변동과 얽혀 있다. 따라서 역사와 영토 문제를 경제와 분리해 접근하라는 중앙의 주문은 현실적 성과를 얻는 데 필요한 관점이다.

 최근의 동북아 정세는 과거 ‘한·미·일 대 북·중·러’의 전통 구도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여전하지만 중국이 주요 2개국(G2)으로 급부상함에 따라 기존 사고로는 예측이 어려운 유동성이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남중국해의 인공섬에 막강한 군사시설을 갖추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재해권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중국의 막대한 군비 증강은 미군의 아태 지역 방어에 부담이 되었다. 게다가 중국이 대륙-해양 연계 프로젝트인 ‘일대일로’ 성장 정책을 추진하자 중국의 경제 지형이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도 세계 전략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지역 안보는 동맹국에 맡기고 미국은 기술적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글로벌 리더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우경화와 군국주의 부활에는 미국의 지지가 있으리라는 의혹이 있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 미 국무부는 일본의 국제적 안보활동에 대한 노력을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이 아태 지역의 안보비용을 부담하는 대가로 지역의 리더가 되는 것을 승인한 것이다. 만약 북한 지역에서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일본은 자국 방위를 이유로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할 수도 있게 되므로 우리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경제 분야의 변화도 매우 크다. 지난 10월 5일, 미국 주도의 메가 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체결됐다. 미·일을 포함해 12개국이 참여했으나 한국은 불참했다. 대신 한국은 TPP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이 추진 중인 16개국 간 RECP 가입을 모색하고 있다. 이처럼 안보 및 경제 분야에서 국제 협력과 경쟁 관계는 새롭고 복잡하게 재편되고 있다.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과의 신뢰를 유지하면서도 지역적 협력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외교적 판단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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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다음 주 논점 개헌론
11월 24일자에는 개헌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중앙일보·한겨레의 사설과 김보일 배문고 국어교사의 비교·분석 글이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