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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국, 불특정 민간인 대상 테러에 무방비 상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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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번 11·13 파리 테러의 목표물은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이 아니었다. 록밴드가 공연 중이던 극장, 8만 명의 관중이 들어찬 축구경기장, 일반인들이 모인 평범한 식당이었다. 불특정 민간인을 대상으로 이뤄진 이른바 ‘소프트 타깃(Soft Target)’ 테러인 셈이다. 특히 ‘스타드 드 프랑스’ 축구경기장은 테러범을 검색하다 폭탄조끼를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경기장에 진입했다면 수천 명이 살상당할 뻔했다. 당시 축구장에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관람을 하고 있어 검문검색이 강화돼 참사를 피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01년 미국 9·11 테러 이후 소프트 타깃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불특정 다수를 목표로 삼은 테러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 모이는 시설의 안전시스템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대부분의 경기장은 검색대를 거치지 않고 누구나 쉽게 통과할 수 있다. 프로농구가 열리는 한 경기장의 경우 보안요원이 아르바이트생 포함해 28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반면 9·11 테러를 경험한 미국은 철저한 경기장 안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장은 국제공항 보안 검색대 수준이다. 작은 가방까지도 철저히 검사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철도·지하철 역사의 경비인력도 초라한 수준이다. 테러는커녕 방화 등 안전사고에 거의 무방비 상태다. KTX·경의선·공항철도 등이 집결한 서울역을 지키는 경비인력은 외주인력 6명을 포함해 모두 24명뿐이다. 3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서울역 대합실에 근무하는 철도경찰은 평소 2명밖에 안 된다고 한다.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에서 봤듯이 한 사람의 범행이 엄청난 인명피해를 낼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을 자랑하는 일본도 1995년 옴진리교의 독가스(사린) 테러를 막지 못했다. 하물며 체계적인 시스템도, 제대로 된 장비·인력도 없는 한국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테러가 발생한다면 우왕좌왕하다 당할 게 뻔하다.

 우리나라 국가대테러지침에는 테러의 성격에 따라 사건대책본부를 두게 돼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방사능테러, 보건복지부 장관은 생물테러, 환경부 장관은 화학테러에 대한 사건대책본부를 설치·운영하는 식이다. 만약 지하철역에서 화학가스 테러가 발생하면 환경부 장관이 대테러 지휘를 맡게 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공무원들도 제대로 모를 것이다.

 일반인 대상의 테러는 국가 전체를 쉽게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는 테러범이 기대하는 효과다. 최근엔 테러집단이 아니라 은둔형 소외집단인 이른바 ‘외로운 늑대’에 의한 테러도 발생하고 있다. 다중 이용 시설에 대한 안전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평소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개인이나 소수가 감행하는 아마추어 수준의 테러조차 막기 어렵다. 테러를 예방하는 정보 활동부터 발생 시 즉각 제압하는 능력까지 우리의 대테러 시스템 전반을 점검한 뒤 국제 테러의 변화에 걸맞게 대폭 보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