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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비료로, 약으로 쓰기 위해 동양의 화장실에선 똥을 모았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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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이라 불린 우리나라 옛 화장실의 모습을 살펴본 손어진(왼쪽)·구태희 학생기자. 화장실 안에는 똥을 퍼 나르는 ‘똥지게’가 놓여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음식을 먹는 행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먹은 음식의 찌꺼기를 몸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인 배설도 중요하고요. 음식이 몸 안에 있을 때는 신체의 일부지만, 몸 밖으로 나오면 더럽고 냄새나는 ‘똥’이 되죠. 원시인들은 산·강·바다에서 먹고 마시고 마음대로 배설을 했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부터 화장실을 사용했어요. 프랑스의 시인 빅토르 위고는 “인간의 역사는 곧 화장실의 역사”라고 했죠.

배설물의 재발견 -고양화장실전시관

정말 그런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11일 소중 학생기자들이 경기도 고양시 ‘고양화장실전시관’을 찾았습니다.

지구에는 약 70억 명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매일 배설하는 양도 어마어마하게 많죠. 화장실이 없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끔찍했을까요. 여러 명이 좁은 곳에 모여 사는 도시 문명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사실 화장실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온 흥미로운 장소입니다. 인류학자들은 유적을 발굴할 때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지 확인한 후 문명 발달의 척도(평가하거나 측정할 때 근거 기준)로 삼았다고 하죠. 오는 19일은 세계 화장실의 날이기도 해요.

똥이 냄새나는 골칫거리였던 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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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사용한 돼지변소의 구조를 보여주는 모형.

전시관 입구에는 서양의 화장실 문화를 소개하는 그림과 유물이 놓여 있습니다. 유물 대부분은 우리에게 익숙한 수세식 변기처럼 생겼어요. 수세식 변기는 의자에 앉아 볼일을 본 후 물을 내려 배설물을 흘려 보내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집집마다 있는 수세식 변기는 역사가 깊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1만 년 전에 사용된 수세식 화장실의 배관 흔적이 발견됐고, 기원전 2200년 전 옛 바빌로니아의 도시인 우르 지역에서 수세식 변기 유물이 나오기도 했죠.

서양에서는 똥을 ‘냄새나는 골칫거리’로 여겼습니다. 깔끔하게 배설물을 처리할 수 있는 수세식 변기가 일찍부터 사용된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 사람들이 마냥 깔끔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중세 유럽 하면 떠오르는 화려한 궁전과 드레스를 입은 귀족 이미지와는 달리 당시 거리는 똥으로 가득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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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사용된 책을 쌓아놓은 모양의 변기.

중세 유럽 가정에서는 대부분 요강을 사용했는데, 밤새 요강에 담겨진 배설물을 창문 밖으로 버리곤 했죠. 창문 아래 길을 걷던 사람들은 뜻밖의 똥 세례를 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요강을 비우는 사람은 창 밖으로 배설물을 버리기 전 “조심하세요”라는 짧은 인사를 해야 하는 예절이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이를 들은 사람들은 몸을 움츠리고 그곳을 벗어나려 재빠르게 뛰어가는 웃지 못할 장면을 연출했죠.

이렇게 버려진 배설물은 항상 거리에 쌓여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거리를 걸을 때 드레스의 끝자락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신발에 나무를 대어 덧신을 신었죠. 하이힐은 이런 용도에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유럽 신사의 상징인 중절모와 코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똥 세례를 피하기 위해 머리에는 높이 솟은 중절모를 쓰고 어깨에도 두툼한 코트를 걸치게 됐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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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루이 13세가 사용한 의자형 변기.

전시관 안쪽으로 이동한 학생기자의 눈에 커다란 나무 의자가 들어왔습니다. 전시 안내를 맡은 박영숙 해설사는 “프랑스의 왕이 사용했던 의자형 변기”라고 설명했습니다. 평범한 의자처럼 생겼지만 엉덩이가 닿는 부분에 작은 구멍을 뚫어 배설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죠. 왕이 살던 화려한 궁전 역시 똥 냄새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손님들을 위한 화장실이 따로 없었습니다. 파티에 참석한 귀족들은 볼일을 보기 위해 궁전 정원 으슥한 곳에서 배설을 했고, 배설물이 쌓여 항상 악취가 풍겼어요. 참다 못한 14세는 궁전 정원에 1000그루가 넘는 오렌지 나무를 심어 오렌지 향으로 그 악취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에게 똥은 피하고 싶은 더러운 배설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똥을 받아들였던 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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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를 엿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인형들. 대변을 본 아이 옆에 강아지가 다가가고 있다.

반대로 동양에서는 똥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더러워서 버려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대신 재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농경과 함께 정착생활이 이뤄지면서 똥을 비료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농사를 지을 때보다 똥을 비료로 활용했을 때 농작물이 더 건강하게 자란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죠. 똥을 농사에 사용했다는 기록은 중국 은나라(기원전 1401~1122년)의 갑골문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후 똥을 밭에 뿌리는 농사법이 동양 각지로 전파됐으며, 우리나라에도 삼한시대에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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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을 약으로 사용했다는 점도 서양과 다릅니다. 중국의 『위지』라는 책에는 ‘분뇨(똥)를 짜서 환자에게 먹이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풍속은 당시 흔했고, 여러 의학서에도 타박상·인사불성 등의 증상에 똥을 사용하면 좋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말린 똥을 태워 만든 ‘현청’이라는 약을 먹으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기록도 있었죠.

따라서 동양의 화장실은 더러운 배설물을 버리는 곳이 아니라 재활용할 똥을 모으는 공간이었습니다. 다리를 굽히고 쪼그려 앉아 배설하는 화장실이 오랜 세월 이어진 이유입니다. 똥이 흘러 내려가는 대신 한곳에 모이도록 설계된 것이죠. 20세기 초까지의 일본 화장실은 바닥에 직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고 앞부분에 나무 손잡이가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베트남의 경우 물 위에 나무판자를 걸쳐 놓은 형태의 화장실을 이용해 물고기를 키웠습니다. 배설물에 의해 번식하는 플랑크톤을 작은 물고기가 먹고, 이 물고기들을 큰 물고기가 먹게 해 키우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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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이 쓰던 매화틀(왼쪽)과 백제시대 요강.

우리나라에서는 화장실을 ‘뒷간’이라 불렀습니다. 환경에 따라 크게 4개로 나뉘어지죠. 우선 ‘수거식 뒷간’은 항아리를 땅에 묻고 그 안에 똥이 차면 퍼내는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 꺼낸 똥은 바로 쓰지 않고 밭 근처에 구덩이를 파 옮긴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 밭에 뿌렸습니다. 근심을 더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해우소’는 절에서 사용된 화장실입니다. 해우소는 경사진 곳에 자리했는데, 경사의 위쪽에서 볼일을 보면 아래로 똥이 흘러 내려가는 모양새를 갖췄습니다. 흘러간 똥은 절의 채소밭 근처로 모여 바로 꺼내 거름으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경사진 곳에 지어진 화장실이라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이 들어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죠.

‘잿간’이라 불린 화장실도 있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여기서 나오는 재를 쌓아두는 곳이 잿간인데, 잿간 한쪽에서 볼일을 본 후 똥 위에 재를 뿌려 ‘똥재’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재와 똥이 섞인 똥재는 천연비료로 사용됐어요. 이외에도 ‘통시’라 불린 화장실의 경우 2층 구조로 만들어져 위에서 떨어진 똥을 아래층의 돼지들이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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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어진 학생기자가 중세 유럽에서 사용된 다양한 변기를 보고 있다.

그러나 19세기에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부터 편리하다는 이유로 서양의 수세식 변기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예전의 화장실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됐습니다. 똥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동·서양 화장실 문화에도 차이를 불러왔다는 사실, 놀랍지 않나요.

글=김록환 기자·권소진 인턴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동행취재=구태희(서울 충암초 4)·손어진(서울 자곡초 4) 학생기자

고양화장실전시관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위치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호수로 595 일산호수공원 내
문의 031-8075-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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