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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외교 2.0’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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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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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한·미 양국 대통령은 지난달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과 두 분 사이의 따뜻한 우정이 가능케 한 정상회담의 성과를 대중에게 보고했다. 회견 마지막 질문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답변에 모든 이의 귀가 쫑긋했다. 중국 관련 질문에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답변했다. “우리는 강력한 한·중 관계를 바란다··· 다만 우리는 중국이 국제 규범과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계속 강조할 것이다. 만약 중국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한민국이 미국처럼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기대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답변은 명백히 워싱턴의 우려를 담고 있다. 박 대통령은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서 있었다.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힘에 대항하겠다는 중국의 첨단 무기가 선보인 군사 퍼레이드였다. 미국의 동맹국이자 민주국가의 정상 중에서는 박 대통령이 유일했다. 미국의 상당수 전문가들은 불편한 마음을 내비쳤다. 한국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미국·일본으로부터 이탈해 중국의 궤도로 진입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워싱턴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게 아니라 중국을 북한으로부터 떼어내 한국과 가깝게 하려는 것뿐이라고 분석했다.

 양쪽 모두 미·소 냉전 시대의 1차원적인 제로섬 사고방식을 대표하는 근시안적인 해석이다. 박 대통령이 시도하고 있는 것은 3차원적인 전략을 위해 설계된 ‘한반도 외교 2.0’이다. 궁극적으로는 제도화된 안보체제가 아직 없는 동북아에서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신형 외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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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외교 1.0’은 논란을 피한다. 박 대통령에게 논란을 피하는 방법은 국내 정치 상황을 핑계로 정중하게 베이징의 초청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중 관계를 한 단계 더 격상시키기 위해서는 워싱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그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박 대통령은 3차원 외교 게임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게임에서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은 일부분일 뿐이다.

 청와대는 베이징이 한반도 손익계산에 대한 판단을 바꾸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경제·기술·국제관계 등 모든 척도로 보아 중국은 원조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북한보다는 한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 많은 중국의 관료와 학자들은 구시대 유물인 북한의 개인 숭배가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북·중 혈맹이라는 관성이 문제다.

 한·중 관계와 관련해 많은 전문가가 놓친 게 한 가지 있다. 지난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처음으로 통일에 대해 언급했다. 한·중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은 대한민국 외교 2.0의 일부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한·미·중 대화 체제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점점 더 은둔형이 돼 가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숙청이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평양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악몽 같은 시나리오는 북한의 붕괴로 허공에 뜬 핵무기가 미·중 군사 경쟁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전승절 기념 행사에 참석한 이유는 부분적으로 한·미·중을 서로 가깝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참석 일정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9월 2일에 만났다. 시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9월 25일에 만났다. 오바마 대통령과 박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만난 것은 10월 16일이다. 최근엔 한·중·일 정상이 서울에서 회동했다. 이러한 일련의 만남은 최초의 한·미·중 대화라는 건물을 짓기 위해 필요한 벽돌로서 기능할 것이다. 한·미·중 대화는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혹은 12월 파리에서 개최될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혹은 내년 3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한·미·중 대화의 어젠다는 우선순위 설정, 투명성 제고, 오판의 가능성 줄이기가 될 것이다. 한·미·중 대화는 동북아평화협력구상(NAPCI)과 연계될 수도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낯설기 때문에 항상 저항을 부르기 마련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 2.0’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1차원적인 아시아 외교와는 흐름이 다른 게 분명하다. 오해를 피하려면 박 대통령의 신형 외교는 다음 두 가지 도전에 답해야 한다. 첫째, 한·중 밀월관계는 아직 북한의 일탈 행위라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북한이 미사일·핵 실험에 나선다면 중국은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둘째, 한국은 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활동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한국은 중국의 호의를 이끌어내야 하지만 아시아의 질서를 깨는 행위에 대해 무한정 침묵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은 대중국 외교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조용한 고위급 대화에 착수해야 한다. 서울의 새로운 대중 외교 이니셔티브와 관련해 더 이상의 오해는 불식시켜야 한다.

빅터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