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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감정노동자의 감정도 노동재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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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감정노동자의 ‘적응 장애’와 ‘우울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관련 법 시행령 개정안을 최근 입법예고했다. 겉으론 웃고, 뒤에선 눈물을 훔치는 감정적 부조화 때문에 생기는 정신질환인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을 산업재해로 봤다. 그 전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만 인정했다. 늦게나마 감정노동에 대한 법적 장치가 갖춰져 다행이다.

 그러나 법으로 보상해준다고 멍든 근로자의 마음을 모두 다독일 순 없다. 법 적용 이전에 기업이 먼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업은 친절교육을 통해 근로자의 감정을 억누르도록 훈련시켰다. 물론 친절은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다. 무뚝뚝한 직원이 근무하는 매장의 매출이 좋을 리 없다. 고객의 지갑은 상냥한 직원이 있는 쪽에서 열리게 마련이다. 그러니 친절교육을 하지 말라고 할 순 없다. 문제는 직원이 무시당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사실 고객이 원하는 건 과도한 친절이 아니다. 원스톱 서비스, 신속한 처리, 정확한 상품정보 제공 같은 것이다. 소비자의 불만은 여기서 터져나온다. 이걸 근로자에게 모두 떠안기는 건 부도덕하다. 모 도시락업체가 무례한 고객에게 서비스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각계에서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직원의 사기가 올라가고, 덤으로 기업의 이미지까지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감정을 소중히 하면 생산성도 올리고, 기업의 브랜드 가치까지 높일 수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감정도 노동재화다.

 진상고객에 대한 책임도 명확하게 물어야 한다. 매장의 직원이든, 서비스 업체 사람이든 그들은 누군가의 자식이고, 아버지고, 어머니다. 이들에게 호통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건 노동의 신성함을 모독하는 행동이다. 돈으로 다른 사람의 인격을 사려는 행위다. 이런 갑질에는 외국처럼 형사처벌을 불사해야 한다. 우리는 기껏해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망신을 주는 게 고작이다. 인민재판식 응징, 이건 아니다. 엄한 법집행이 필요하다. 감정을 존중하는 사회가 밝은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