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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의원 “박 대통령 용어사전에 진실의 반대말은 배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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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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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과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장관직 사퇴 의사를 밝힌 정 장관은 내년 20대 총선에 출마할 전망이다. 왼쪽부터 유 장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윤성규 환경부 장관, 정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새누리당은 10일 오후 내내 술렁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국민을 위해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등 친박 인사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잇따라 ‘대구행’을 택하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구구한 해석들이 뒤따랐다.

‘대구 물갈이론’ 맞물려 파장
“총선 넘어 포스트 박근혜까지 생각
국정 뒷받침 의원 뽑으라는 의미”
여러 대선주자 경쟁시키는 구상도
야당 “반대자 낙선 노린 선거 개입”
청와대는 “물갈이 아닌 민생 강조”

 한 고위 당직자는 대구·경북(TK) 물갈이를 말하며 “대통령이 ‘아무개를 찍어주세요’라고 하겠나. 그게 아니라도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간접 발언, 행사 참석, 측근 인사 활용 등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많다”고 했다. 이날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이 선택받게 해달라”는 발언이 그 한 예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19대 국회가 각종 민생법안을 방치하고 있는 데 대해 비판하던 중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발언의 본질은 ‘총선 물갈이’가 아니라 19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국회가 민생을 위한다는 걸 보여달라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친박계 내에서조차 “TK 물갈이에 힘을 싣는 발언”이란 해석이 나왔다.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박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6월 말 국회법 파동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했던 것의 연장선”이라며 “박 대통령의 ‘정치용어 사전’에 진실의 반대말은 배신”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박 대통령은 오늘 국정을 뒷받침할 의원들이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의미를 분명히 전달했다”고도 했다.

 현직 대통령 입장에서 친정체제 구축은 차기 권력구도와도 맞물려 있다.

 또 다른 친박 중진 의원은 “대통령은 다양한 주자들이 대선 경쟁을 펼치길 원할 것”이라며 “안대희 전 대법관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이 총선 후 김무성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의 ‘9룡’ 같은 상황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집권 후반기의 대통령으로선 차기 주자들끼리 경쟁하는 구도가 레임덕(임기 말 기강 해이) 방지에 더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이 같은 구상에 대해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대통령은 본인이 생각하는 ‘정치 변화’란 소명의식을 표출하려 한 것 같다”며 “그러나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비정상적 권력작용으로 성공 가능성이 작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TK에서 대통령의 힘이 여전하기 때문에 일부 물갈이는 가능하다”며 “그럴 경우 야당 집권 시 보수진영 내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지금보다 강화될 수 있고, 반대로 여당이 정권을 재창출한다면 운신의 폭은 오히려 축소될 것”이라고 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박 대통령은 정의와 불의, 도덕과 부도덕을 스스로 판단하려는 ‘규정자 의식’이 강하지만 신이 아닌 인간이 ‘진실된 사람’이란 가치를 규정할 순 없다”며 “대통령의 발언은 향후 국회 내 친박 세력들이 최악의 경우 독자 원내교섭단체를 만들어 캐스팅보트를 쥐려는 시도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비판을 삼가면서도 불편한 기색이다. 서울시당 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은 “장관·수석 등 친박 인사들이 정말 대통령의 후반기 국정 운영을 도우려면 수도권에서 ‘야당 심판론’을 내세워 야당 의원들과 맞붙어야 한다”며 “호남 출신인 이정현 의원의 반의 반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자신을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을 총선에서 떨어뜨리려는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라며 “자신이 요구하는 가짜 민생법안과 노동개혁에 반대하면 모조리 떨어져야 한다는 협박”이라고 비판했다.

이가영·강태화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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