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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급 과잉으로 고전 중인 화학·철강도 구조조정 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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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10개 분기 연속 적자, 누적 적자액 6796억원. 현대상선의 최근 10개 분기 성적표다. 한진해운도 지난 2013·2014년의 8개 중 6개 분기에 적자를 냈다. 올 들어 흑자로 반전했지만 지난 10분기 누적 적자액은 3000억원이 넘는다. 세계적인 경기 부진과 이로 인한 물동량 급감에 따른 결과다. 단기간에 상황이 호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두 기업에 대해 수술칼을 대려는 이유다. 그동안 물밑에서만 은밀히 가능성을 타진해왔지만 두 회사에만 맡겨둬선 구조조정에 진척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이에 따라 이르면 이번 주 중 열릴 2차 구조조정 차관회의 안건에 현대상선-한진해운 빅딜을 상정하기로 했다.

정부의 ‘세계적 불경기’ 선제 대응
해수부, 해운사 한 곳도 퇴출 시사
업계 강력 반발, 성사될지 불투명
상반기 신용등급 하향 기업 42곳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아

 이 회의는 금융위원장 주재로 각 부처 차관급 각료가 모여 진행하는 구조조정 협의체로, 사실상의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초 “기업 구조조정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히자 금융위가 지난달 13일 구성했다. 차관회의에서 구조조정 방향이나 자금 지원 여부가 결정되면 채권단이 행동에 나선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사여탈권을 쥔 ‘염라대왕’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공식 논의에 앞서 비공식적으로 양대 해운사에 합병을 권유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양쪽 모두 정부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차관회의에 이 안건을 올리기로 한 건 두 업체의 거부에 대한 정부의 회신이나 마찬가지다. 자발적 구조조정을 거부한 만큼 정해진 절차에 따라 타율적인 구조조정을 시작하겠다는 신호다. 실무회의 석상의 해수부 관계자 발언으로 미뤄보면 구조조정의 강도는 상당히 셀 것으로 예상된다. “원양정기선사 업종에서 양사 체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 “선사 매각 등 보다 근본적 대책도 검토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상 둘 중 하나를 없애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또 다른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석유화학과 철강 업종은 중국 기업의 부상에 따른 공급과잉, 세계 경기부진으로 인한 수요 감소 때문에 고전 중이다. 석유화학 업종에서 최종재, 그중에서도 폴리스틸렌(PS)·폴리카보네이트(PC) 등 합성수지와 고순도테레프탈산(TPA)·카프로락탐(CTL) 등 합성섬유 분야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업계에서는 기업 간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이미 삼성그룹이 삼성SDI 케미컬사업부문과 삼성정밀화학·삼성BP화학 등 계열사를 롯데그룹에 매각하는, ‘자발적 빅딜’을 단행하기도 했다.

관련 제품을 만들고 있는 기업은 LG화학·금호석유화학·한화종합화학·롯데케미칼·효성 등이다. 강관·합금철을 제조중인 철강업체로는 현대제철·동부메탈·세아제강·휴스틸·동양철관·하이스틸 등이 있다.

그러나 정부 주도 강제 구조조정에 대한 업계 반발이 만만치 않아 실제 성사 가능성은 미지수다. 해운업 합병과 관련해 “두 회사를 합병해도 시너지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관치 논란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을 강행하려는 이유는 선제적 구조조정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세계적인 경기부진이 지속되면서 구조조정을 미뤘다가 ‘좀비 기업’의 연쇄 부도 사태가 발생하면 한국 경제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실제 한국신용평가(한신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기업만 42곳에 달한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61곳)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한신평 관계자는 “지난 7~10월 사이 17개 기업의 신용등급이 추가 하향 조정되는 등 하향 속도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석·김경진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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