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폭 12m 거대 익룡, 날기 위해선 절벽까지 고된 산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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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호 25면

지구에는 더 이상 쓸 만한 에너지원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인류는 이미 태양계 바깥에서 에너지의 보고(寶庫)를 발견했다. 판도라(Pandora) 행성이 바로 그것이다. 판도라는 지구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운옵타이늄(unobtainium) 광석이 무한정 존재한다. 운옵타이늄은 커다란 산을 통째로 공중에 띄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전자기장을 형성하는 새로운 에너지원이다. 하지만 귀한 것은 쉽게 얻을 수 없는 법. 판도라 행성의 대기에는 독성 성분이 있어서 지구인이 자유롭게 활동하기 어려운데다 토착민인 나비(Navi)족과의 관계도 쉽게 풀리지 않아 협조를 받을 수도 없는 상태인데, 나비족은 이크란(Ikran)이라는 비행 생명체와 신경망을 통해 연결돼 힘들이지 않고도 하늘을 날 수 있어서 제압하기도 어렵다. 나비족이 위기에 빠질 때면 이크란보다 훨씬 더 큰 비행 생명체인 토루크(Toruk)를 타고 다니는 영웅 토루크 막토(Toruk makto)가 어김없이 등장해 그들을 침략자로부터 구해준다. 나비족의 전설에 따르면 지금까지 토루크 막토는 다섯 명에 불과했다.


눈치챘겠지만 여기까지는 2154년을 배경으로 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2009)’의 배경 설명이다. 모든 영화에 등장하는 남녀의 러브라인과 판도라 행성을 지키려는 주인공 제이크와 나비족처럼 우리도 우리 행성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카메론 감독의 메시지는 놔두고 우리는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생명체 이크란과 토루크에 집중해 보자.

익룡이 걷는 모습을 상상하여 복원한 그림. 화살표는 발가락이 세 개인 앞발자국.

익룡은 공룡 아닌 날개 달린 도마뱀토루크는 ‘마지막 그림자’라는 뜻이다. 이 섬뜩한 이름은 토루크의 사냥법 때문에 생겼다. 토루크는 하늘에서 먹잇감을 향해 내려꽂듯 날아가 덮친다. 가련한 먹잇감은 생을 마감하기 직전 자기를 덮치는 거대한 그림자를 본다. 바로 토루크의 먹잇감이 본 마지막 그림자인 것이다.


벼의 학명(學名)이 오리자 사티바(Oryza sativa)이고 사람의 학명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인 것처럼 토루크에게도 학명이 있다. 레오노프테릭스 렉스(Leonopteryx rex)가 바로 그것이다. 레오는 ‘사자’, 프테릭스는 날개를 뜻한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주인공인 백악기 말에 살았던 거대한 공룡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yrannosaurus rex)에도 있는 렉스는 ‘왕’이라는 뜻이다. 이름만 봐도 토루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동물일지 짐작할 수 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아무리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아무런 단서도 없는 것을 상상해 낼 수는 없다. 창의성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해 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다. 창의성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새롭게 조합하고 편집하는 능력이다.


이크란을 보는 순간 누구나 익룡(翼龍)을 떠올린다. 익룡은 영어로는 프테로사우루스(pterosaurus)라고 하는데 프테로는 그리스어로 날개라는 뜻이다. 즉 익룡은 ‘날개 달린 도마뱀’이라는 말이다.


흔히 익룡을 두고 ‘하늘을 나는 공룡’이라고 설명하지만 이것은 틀린 말이다. 공룡은 다리가 골반에서 수직으로 내려오고 땅에서 살았던 파충류를 말한다. 예전에는 여기에 ‘중생대’라는 제한이 있었으나 이제는 이 제한을 풀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제는 신생대에 여전히 살고 있는 새도 공룡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익룡과 박쥐의 날개에는 깃털 대신 발가락으로 지탱하는 날개막이 있다. 익룡은 네 번째 발가락으로 날개막을 지탱하는 데 반해 박쥐의 날개막은 네 개의 발가락뼈로 지탱한다. 새의 경우에는 발가락에 해당하는 다섯 개의 뼈가 하나로 융합돼 있으며 깃털로 덮여 있다. [안면도 쥬라기박물관]

새·박쥐처럼 앞다리가 날개로 변화익룡은 공룡은 아니지만 일부 공룡(새)과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몸이 가벼워야 하고 여기에 덧붙여서 날개가 있어야 한다. 하늘을 나는 동물 가운데 곤충을 제외한 익룡·박쥐·새에게는 앞다리가 변해서 만들어진 날개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새의 경우 발가락에 해당하는 다섯 개의 뼈가 하나로 합쳐져 있으며 날개는 깃털로 덮여 있다. 이에 반해 포유류인 박쥐와 파충류인 익룡의 날개에는 깃털이 없으며 발가락으로 지탱하는 날개막이 있을 뿐이다. 박쥐와 익룡의 날개막에도 큰 차이가 있다. 박쥐는 길게 발달한 네 개의 발가락 뼈로 날개를 지탱하는 데 반해 익룡은 길게 자란 네 번째 발가락 하나로 날개를 지탱하고 나머지 발가락은 날개 바깥으로 나와 있다.


익룡은 새와 가까운 동물이다. 새와 마찬가지로 뼈 속이 비었고 공기로 차 있다. 가슴뼈에는 비행을 위한 근육이 붙어 있도록 커다란 용골돌기가 있고 뇌가 상대적으로 커서 비행과 관련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또 익룡과 새는 관절·근육·피부와 평형기관에서 오는 신호를 종합하는 뇌의 한 부분인 소엽(小葉)이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 새는 척추동물 가운데 유난히 소엽이 커서 전체 뇌 질량의 1~2%를 차지한다. 그런데 익룡의 소엽은 뇌질량의 7~8%를 차지한다. 아마도 커다란 날개와 주고받는 신호의 양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발견된 세계 최대의 익룡 발자국. 길이와 폭이 각각 35㎝와 17㎝가 넘는다. [천연기념물센터]

익룡은 땅에서 어떻게 걸어다녔을까? 이것을 알려면 익룡이 걸어다닌 발자국 화석이 있어야 한다. 백악기 익룡 발자국이 발견된 나라는 전세계에서 9개 나라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한국과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발견됐다. 2009년 천연기념물센터 임종덕 박사는 경북 군위군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익룡 발자국 화석을 발견했다. 발자국은 세 개의 발가락이 있는 앞발의 자국이었다. 일반적인 익룡 보행렬에서 발가락이 네 개인 뒷발자국과 발가락이 세 개인 앞발자국이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익룡은 네 발로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바타’에 나오는 이크란을 보고서 나는 익룡 가운데 프테라노돈(Pteranodon)을 떠올렸다. 북아메리카 백악기 후기 지층에서 1200개 이상의 화석 표본이 발견됐으며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한 세계 유명 자연사박물관에 골격이 전시돼 있어서 일반인들에게도 가장 많이 알려진 익룡이다. 프테라노돈이라는 이름은 날개(ptera)는 있지만 이빨(don)은 없다(no)는 특징을 알려준다.


프테라노돈은 날개를 펴면 그 폭이 6m에 달한다. 꽤 큰 편이다. 하지만 사람을 태우고 다닐 정도는 아니다. 2015년에 개봉한 ‘쥬라기 월드’에서는 익룡이 사람을 뒷발로 잡아서 날아가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익룡은 날개가 한번 찢어지면 영원히 날 수 없어서 다른 동물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프테라노돈의 비행막은 두께가 1㎜에 불과하다. 프테라노돈은 무리를 할 이유가 없다.


 

거대한 익룡 케찰코아틀루스는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시기에 살았다. 땅에 서면 키가 오늘날의 기린과 맞먹을 정도로 컸다.

케찰코아틀루스, 땅에선 네발로 걸어그렇다면 ‘아바타’의 토루크에 해당하는 익룡은 어떤 것일까? 중앙아메리카 아즈텍 신화에는 날개 달린 뱀 모습의 신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케찰코아틀(Quetzalcoatle)로 바람과 태양과 풍요와 평화의 신이다.


케찰코아틀의 이름을 딴 익룡인 케찰코아틀루스(Quetzalcoatlus northropi)는 6800만 년 전 중생대 끝 무렵인 백악기 후기에 북아메리카에 살았다. 날개를 펴면 그 폭이 10~12m에 달하는 거대한 익룡이었다. 서 있을 때 키가 오늘날의 기린 이상이었다.케찰코아틀루스는 한때 물고기를 먹었을 것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다른 익룡들과 달리 이빨이 없으며 대부분 화석이 강가의 퇴적층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오늘날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뱀잡이수리나 우리나라의 황새처럼 육지의 작은 동물을 먹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작은 공룡 새끼도 부리로 잡아올린 후 꿀꺽 삼켰을 것이다.


케찰코아틀루스는 1971년 처음 발견되었을 때부터 도대체 어떻게 날았을지가 최대의 의문이었다. 종명(種名)을 항공기 개발자이자 공기역학 전문가인 존 노스롭(John Knudsen Northrop)의 성에서 따와 노르트로피(northropi)라고 정했을 정도다. 케찰코아틀루스가 비록 F-16만 한 날개가 있고 또 비행막의 두께도 팔꿈치 쪽은 무려 23㎝일 정도로 매우 두꺼워서 비행 중 쉽게 찢어지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머리 길이만 거의 사람 키만 하고 몸무게도 100㎏에 육박하는 몸체를 날개를 퍼덕여서 하늘로 날아올랐을 것 같지는 않다.


연구자들은 케찰코아틀루수의 화석이 강가에서 발견되는 이유가 먹잇감 때문이 아니라 비행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케찰코아틀루스는 네 발을 이용해 경사가 있는 지형이나 절벽으로 이동한 후 여기서 뛰어내려 활강해야 비행이 가능했다. 경사로를 쉽게 확보하기 위해서는 강둑 같은 지형에 살아야 했던 것이다.


케찰코아틀루스의 다리 골격 비율이 오늘날의 발굽동물의 다리 비율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하늘을 날아다니기보다는 네 발로 어기적거리면서 육지를 돌아다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2014년 9월 중국 랴오닝성의 1억 2000만 년 전 백악기 초기 지층에서 새로운 형태의 익룡이 발견되었다. 키는 75㎝이고 날개를 펴면 폭이 1.5m에 불과한 작은 익룡이다. 그런데 아래 턱 끝부분에 특징적인 판 모양의 돌출부가 달려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펠리컨의 목 밑에 처진 살처럼 신축성이 좋은 턱주머니라고 생각한다. 발견자들은 이 새로운 익룡을 이크란드라코 아바타르(Ikrandraco avatar)라고 불렀다.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이크란과 닮은 익룡이라는 뜻이다. 문화 현상이 과학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과학 역시 문화현상의 영향을 받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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