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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같은 단풍 숲, 미로 같은 마찻길, 동화 같은 풍경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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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공원은 대부분 서부에 몰려 있다. 59개 국립공원 중에서 39개가 미국 인구조사국에서 서부로 분류하는 13개 주에 몰려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서부는 자연, 동부는 도시’라는 말을 일종의 공식처럼 여긴다. 그렇다고 미국 동부지역에 국립공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가을이 되면 꼭 가봐야 할 동쪽의 국립공원이 있다.

중앙일보·미국관광청 공동기획│
미국 국립 공원을 가다 ⑪ 아카디아 국립공원

미국 10대 인기 국립공원에 든다는 아카디아(Acadia) 국립공원이다. 대륙 북동쪽 끄트머리 메인(Maine)주에 있는 아카디아 국립공원은 미국 최고의 단풍 명소로 통한다. 산과 바다,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은 웅장한 서부와 달리 아기자기하면서도 우아하다. 단풍 절정기를 맞은 지난달 18일부터 사흘을 아카디아에서 머물렀다. 한낮에 불꽃놀이를 본 것처럼 두 눈이 황홀했다.

100년 역사의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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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에는 호수와 계곡이 무수히 많다. 낙엽 쌓인 계곡은 가을에 가장 아름답다.

좌석이 56개 뿐인 델타항공 소형기가 뱅거(Bangor)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아카디아 국립공원과 가장 가까운 공항이다. 렌터카를 찾아 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비행기 차창에서 내려다보며 감탄한 오색찬란한 가을 빛깔은 지상에서 더 아름다웠다. 특히 뉴잉글랜드 풍의 주택, 그러니까 영국 귀족 풍의 목조 건물과 단풍이 어우러진 모습은 동화 속 풍경 그대로였다. 미국이 아니라 유럽의 어느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아카디아 국립공원이 속한 메인주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메인을 포함해 미국 북동부 6개 주를 일컬어 뉴잉글랜드라 한다. 17세기 대서양을 건너온 영국인이 가장 먼저 정착한 땅이 이 일대다. 그러나 이 땅을 맨 먼저 밟은 건 프랑스인이었다. 훗날 식민지 전쟁에서 영국에 밀려났지만, 프랑스 이주민은 16세기부터 지금의 뉴잉글랜드 지역과 캐나다 퀘벡 등을 제 땅으로 삼고 살았다. 그리고 이 지역을 아카디아라 불렀다. ‘지상낙원’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아카디아 국립공원의 많은 지명이 프랑스어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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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르 드 몽(Sieur de monts) 지역 산책로에 단풍이 화려한 융단처럼 깔렸다.

아카디아 국립공원은 마운트 데저트 섬(Mount Desert Island) 안에 있다. 면적 280㎢로, 메인주 3000여 개 섬 중 가장 크다. 우리의 경남 남해와 비슷한 크기다. 섬은 천혜의 비경을 품고 있다. 수많은 산이 솟아 있고, 깨끗한 호수와 백사장도 있다. 숲은 온갖 수목으로 빽빽하다. 메인주 본토와 다리가 놓여 접근도 쉬운 편이다. 휴양지의 모든 조건을 갖춘 셈이다.

마운트 데저트 섬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19세기 중반 들어서다. 화가들이 섬의 절경을 캔버스에 담았고, 기자들은 각종 매체에 섬을 소개했다. 뉴욕·필라델피아 등 동부 대도시에서 부호가 몰려왔다. 별장과 호텔이 속속 들어섰다. 급기야 난개발 문제가 불거졌고, 20세기 들어서는 환경보호론자의 개발 반대 청원이 잇따랐다. 환경보호운동에 동참한 일부 부호가 사유지를 연방정부에 기증하기도 했다. 마침내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1916년 섬 일부를 국립 기념지(National Monument)로 지정했고, 3년 뒤 국립공원(National Park)의 지위를 부여했다. 그러니까 아카디아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립공원이다.

대서양 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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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프렌치만. 풍경이 우리의 다도해 국립공원과 닮았다.

국립공원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캐딜락 산이었다. 국립공원 직원 존 켈리는 “미국 북동부 최고봉일 뿐 아니라, 캐나다에서 브라질까지 이어지는 대서양 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높이가 466m에 불과하다. 강화도 마니산(469m) 높이와 비슷하다. 미국 서부에 즐비한 4000m급 고봉을 생각하면 차라리 귀엽다. 그러나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온통 바위투성이라 등산이 쉽지 않다. 정상까지 찻길이 난 덕분에 방문객 대부분이 차를 몰고 산을 오른다.

일출을 보러 새벽 같이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캐딜락 산 정상이 미국에서 가장 먼저 해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설명에 끌렸다. 우리네 정동진처럼 새해 일출 명소로도 인기란다. 이미 많은 사람이 겹겹이 방한복을 입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자 정상부 너럭바위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내내 어두웠던 바다에는 바둑 알처럼 둥근 모양의 섬들이 툭툭 피어올랐다. 일출 명소다운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일출이 끝나자 산에서 내려왔다. 공원 일주도로(Park Loop Road)를 달리며 명소를 둘러볼 작정이었다. 산 중턱에 멈춰섰다. 길 왼편으로 거대한 호수 이글 레이크(Eagle lake)가 내려다보였다. 햇볕이 호수 위에서 잘게 부숴졌고, 호수를 에워싼 숲이 온갖 색깔로 화려했다.

섬 남동쪽의 샌드비치로 방향을 잡았다. 여름이면 해수욕 인파로 북적댄다고 했는데, 큰 개와 산책하는 사람 몇 명만 겨우 보였다. 여기에서 남쪽의 오터 포인트(Otter Point)까지 이어지는 4.8㎞ 길이의 ‘오션 트레일’은 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트레일이어서 해변과 달리 사람이 많았다. 트레일 중간에 있는 썬더 홀(Thunder Hole)에서는 이름처럼 우레 같은 파도 소리가 들렸다.

해질 녘, 다시 차를 몰고 남서쪽 배스 항구(Bass Harbor)로 향했다. 섬에서 유일하게 등대가 있는 곳이다. 1858년 세웠다는 등대는 쓸쓸하게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1974년 무인등대로 바뀌어 이제는 관광객이 기념사진이나 찍으러 오는 장소가 됐다.

마찻길에 얽힌 사연

아카디아에는 모두 200㎞ 길이의 트레일이 있다. 1㎞ 미만의 가벼운 산책길부터 사다리를 타고 아찔한 절벽을 올라가는 난코스도 있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나온 25개 트레일 중 2개를 골라 걸었다.

가장 먼저 걸은 길은 조던 연못(Jordan Pond) 트레일이었다. 연못이라기보다는 호수에 가까운 크기였다. 둘레가 5.1㎞나 돼서, 연못을 한 바퀴 도는데 2시간이 넘게 걸었다. 연못은 바닥의 자갈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았다. 평지여서 숨이 차지 않았다. 사탕단풍·적단풍·흑단풍 등 연못 주위의 단풍을 감상하기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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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버블에서 내려다본 조던 연못.

이튿날은 산에 올랐다. 조던 연못 북쪽에 봉우리 두 개가 낙타 등처럼 다정하게 솟아 있다. 이름도 귀엽다. 버블(Bubble). 거품처럼 봉우리가 동그랗다는 뜻이렷다. 봉우리 두 개 중에서 사우스 버블(233m)에 올랐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불과 1.6㎞ 거리여서 40분 만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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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가 실어다 놓은 흔들바위 ‘버블록’.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트였다. 조던 연못과 대서양, 울긋불긋한 숲이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했다. 정상 근처에는 버블 록(Bubble Rock)이 있었다. 한국에도 많은 흔들바위다. 수만 년 전 빙하에 실려 32㎞를 남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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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가 만든 코블스톤 브리지.

아카디아에는 미국 국립공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색 길이 있다. 바로 마찻길(Carriage Road)이다. 길을 만든 주인공은 석유 재벌 존 록펠러의 아들 존 록펠러 주니어(1874∼1960)다. 섬 안에 별장이 있던 그는 자동차 여행객이 급증하자 자비로 일주도로를 깔았다. 차는 찻길로만 다니라는 뜻이었다. 대신 섬 안에 미로 같은 91㎞ 길이의 마찻길을 만들었다. 훼손을 최소화하며 자연을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지금도 아카디아를 찾은 사람은 이 길에서 마차를 타거나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 록펠러가 만든 모두 다른 모양의 돌다리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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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59개 국립공원 중 아카디아에만 있는 마찻길의 안내판.

록펠러는 미국 국립공원 역사에서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옐로스톤·요세미티 등 여러 국립공원에 자금을 지원했고, 공원 부지를 사서 정부에 기부했다. 앞마당만 잘 가꿔도 국립공원이 부럽지 않을 거부였던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진 곳이 바로 이 아카디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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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아카디아 국립공원(nps.gov/acad)은 5∼10월에만 입장료를 받는다. 자동차 1대에 25달러로 7일간 여행할 수 있다.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일주도로 대부분이 폐쇄된다. 공원 안에 숙소는 없다. 바 하버(Bar Harbor)에서 묵으면 된다. 한국에서 아카디아 국립공원으로 가려면 최소 두 번은 비행기를 타야 한다. 동부 대도시로 직항편을 타고 간 뒤, 국내선을 타고 뱅거나 포틀랜드로 이동한다. 보스턴에서 운전을 해서 오는 사람도 많다. 약 450㎞ 거리다. 기타 여행정보는 메인주 관광청(visitmaine.com), 미국관광청(discoveramerica.co.kr) 홈페이지 참조.

아카디아 국립공원을 여행하려면 직접 운전을 하는 게 편하다. 6월에서 10월까지 공원 안에 버스가 다니지만, 이동에 제약이 많다. 렌터카는 알라모(alamo.co.kr)를 추천한다.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한국어 통역 서비스도 해준다. 최신형 지프 체로키 차량을 ‘보험플러스 GPS’ 요금제로 3일 342달러에 이용했다. 02-739-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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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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