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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감싸주는 따뜻한 세상은 언제 오려나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지난 10월 6일 통통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20대 아가씨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 온다. '참 인상이 좋네' 생각하면서 물어 본다.

"어떻게 왔어요?"

"직장 건진에서 발견되었어요"

'허참, 요즘은 왜 이렇게 젊은 사람 환자가 많아지지'

가지고 온 초음파 영상을 보니 헐, 또 유두암의 미만성 변종(diffuse sclerosing variant of papillary thyroid carcinoma)이다.

눈 폭풍이 왼쪽 갑상선 날개(snowstorm)에서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고 있고, 이 회오리 바람에서 떨어져 나온 눈덩어리가 오른쪽 날개에서도 춤을 추고 있다.

초음파 스테이징(ultrasonograpgic staging)검사와 목과 폐 CT스캔에는 다행히도 옆목 림프절과 폐전이는 없는 것 같다. 오 코디네이터에 부탁한다.

"미만성은 빨리 퍼진다. 또 비만은 예후도 안 좋다. 어떻게 더 퍼지기 전에 해결되도록 스케쥴 조정 좀 해 보셔..."

그래서 부랴부랴 수술 스케쥴에 끼어 넣은 D-day가 오늘인 것이다.

수술대로 옮겨 눕는 이 아가씨 환자 몸을 보니까 어이구야, 외래에서 받았던 인상보다 체중이 엄청나 보인다.

"체중이 얼마셔?"

잠시 머뭇 하다가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93kg ..."

"키는 ?"

"163cm..."

하~~, 비만지수(BMI) 37.7의 초고도 비만이다.

"어쩌다가 체중이 이렇게 되었노?"

"직장 옮기고 스트레스 너무 받아서 ....6개월만에 30kg 늘어서 이렇게 되었어요."

"그래서 스트레스 푼다고 삽겹살, 치맥 마구마구 즐겼구나"

"네......"

수술 조수로 들어온 전공의 닥터 황에게 말한다.

"짧은 기간 동안 30kg 체중 증가는 병적이다. 혹시 쿠씽 증후군(Cushing's syndorme)이 있는지 알아 봐야 겠다.

근데 쿠씽이라면 팔다리는 가늘고 몸의 중심부만 주로 불어나는데 이 아가씨는 팔다리가 실해서 쿠씽과는 좀 다른면이 있긴 하다.

뱃살이 좀 터긴해도 쿠씽에서 보이는 보라색도 아니고..."

그래서 뇌MRI와 폐CT를 다시 점검해 보았는데 쿠씽의 원인이 될만한 뇌하수체나 부신종양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전공의에게 일러둔다.

"수술 끝나고 24시간 소변에서 콜티졸 측정해 보셔... 우선 알아보는데 이 검사가 제일 간단하고 스크리닝 하는데 좋으니깐..."

비만이 모든 암의 원인중 20%쯤 차지하고 최근에는 갑상선암의 원인중 하나로도 지목되고 있다. 예후도 좀 나쁘고,,, 수술시야도 나빠 절개선도 길게 넣어야 수술이 어렵지 않게 된다. 마침 이 아가씨 환자는 목주름이 수술 절개선과 일치하고 있어 덜 부담스럽긴 하다. '아가씨 환자들은 항상 사람 마음을 짠하게 한단 말이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수술을 시작 했는데 의외로 어렵지 않게 수술 진행이 잘 된다. 피하 지방은 많았지만 갑상선 주위에는 기름덩이 조직들이 생각보다는 많지는 않다. 기름덩어리 조직들이 많으면 어느 것이 부갑상선인지 어느 것이 림프절들인지 분간이 잘 안되어 수술할 때 애를 먹는데 비교적 어렵지 않게 수술이 끝난다. 재발 부갑상선 기능이 괜찮기를 기도 하면서......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마취의사와 전공의 닥터 황에게 부탁한다.

"초고도 비만은 마취도 늦게 깨고 마취 깰 때 호흡이 잘 안되는 수도 있으니까 확실히 깨고 나서 병실로 올려 보내도록..."

저녁 회진으로 병실에서 가족들에게 수술 경과를 얘기하려 가니 가족들이 수술실 앞에서 대기 하고 있단다.

다시 회복실로 가서 환자 상태를 체크하니까 멀쩡하다 너무 멀쩡한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좋다. 목소리도 좋고 손발 저림도 없다. 회복실에서 다시 보니 얼굴이 귀엽고 매력적이다. "00씨, 나하고 약속해, 체중 뺀다고... 체중만 빼면 이효리 보다 훨씬 예쁘게 될거야..ㅎㅎ"

가족들을 만나 설명한다.

"수술 잘 되었어요. 비만이 좀 있어서 신경이 좀 쓰였지만....잘 회복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체중 조절 좀 시키고.."

"그애가 직장이 사람 접대하는 직업이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 먹는 걸로 스트레스 풀어서 저렇게 되었어요."

문득 프랑스 식당이 생각난다.

식당에서는 식당 종업원이 왕이다. 식당 종업원이 시키는데로 안하고 우리나라처럼 갑질하다가는

박정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위 기사는 중앙일보헬스미디어의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중앙일보헬스미디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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