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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뉴스 인 뉴스 <287> 세계 3대 콩쿠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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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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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 객원기자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제17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클래식 음악계가 한결 고무된 모습입니다.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처음 발매되는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실황음반은 발매되기도 전에 예약 주문만으로도 음반 차트에서 아이유와 엑소보다도 높은 순위를 차지해 화제입니다. 쇼팽 콩쿠르는 종종 ‘세계 3대 콩쿠르’라는 수식어로 소개되곤 합니다. 세계 3대 콩쿠르가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쇼팽 콩쿠르는 5년에 한 번 … 쇼팽 곡만 친다

사람들은 셋을 꼽는 것을 좋아한다. 최고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를 ‘스리 테너(3 tenors)’라 하고 지미 페이지, 제프 벡, 에릭 클랩튼을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묶는다. 또 영국 로열 발레단과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는 ‘세계 3대 발레단’이라고 한다.

 ‘세계 3대 콩쿠르’도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폴란드의 쇼팽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 그리고 벨기에의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일컫는다. ‘세계적인 콩쿠르가 그 3개뿐이냐’는 논란의 여지는 있다. 하지만 이 세 콩쿠르의 권위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3개 대회가 배출한 연주자들이 실력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임동민·동혁 형제 2005년 공동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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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쇼팽콩쿠르에서 단독 1위에 오른 피아니스트 조성진. 최우수 폴로네즈 연주상도 받았다. [중앙포토]

 ◆쇼팽 콩쿠르=쇼팽 콩쿠르는 1927년 폴란드 음악교육자인 예르지 주라플레프( 1887~1980)가 창설했다. 쇼팽의 고향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펼쳐진다. 55년 이후 정례적으로 5년에 한 번씩, 쇼팽의 기일인 10월 17일 전후로 3주에 걸쳐 열린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개최가 중단됐다. 다른 콩쿠르와는 달리 연주곡목은 모두 쇼팽이 작곡한 작품만을 대상으로 한다. 17∼28세 만 참가할 수 있다. 17세에 참가한 피아니스트는 22세와 27세 등 인생에서 총 3번의 참가 기회가 있다. 피아노는 취향에 따라 스타인웨이·파치올리·야마하·가와이 중에서 선택 할 수 있다.

 쇼팽 콩쿠르에는 다양한 특별상이 있다. 최우수 마주르카 연주에 수여하는 폴란드 라디오상, 최우수 폴로네즈 연주에 수여하는 바르샤바 프레데릭 쇼팽협회상, 최우수 피아노 협주곡 연주자에게 수여하는 내셔널 필하모닉상 등이다.

 1회부터 5회까지 쇼팽콩쿠르의 우승은 소련과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들이 휩쓸었다. 27년 초대 대회 우승자는 소련 출신의 레프 오보린이었다.

  60년 6회 대회에서 이탈리아의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우승했다. 당시 심사위원장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이 “우리(심사위원) 중 저 참가자보다 잘 치는 사람이 있을까”하고 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65년 7회 대회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8회 대회 때는 미국의 개릭 올슨이, 9회 대회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각각 우승했다.

 10회 대회인 80년에는 쇼팽 콩쿠르 사상 최초로 동양인 우승자가 나왔다. 베트남의 당 타이 손이었다. 우승자보다 시선이 집중됐던 연주자는 유고슬라비아(현 크로아티아)의 이보 포고렐리치였다. 그가 1차 예선을 통과한 것에 항의해서 루이스 켄트너가 심사위원을 사임했다. 3차 예선에서 포고렐리치가 떨어지자 이번에는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반발, 심사위원직에서 물러났다.

  85년 11회 대회에서는 소련 출신의 스타니슬라프 부닌이 우승했고, 12회와 13회 대회는 우승자를 내지 못했다. 이후 15년 만인 2000년 14회 대회 때에야 비로소 우승자를 배출했다. 82년생 중국 출신 윤디 리가 주인공이었다.

 2005년 제15회 대회에서는 폴란드의 라파우 블레하츠가 우승했다. 2위 없이 임동민과 임동혁 형제가 공동 3위에 선정됐다. 2010년 제 16회 쇼팽 콩쿠르에서 러시아 출신의 율리아나 아브제예바가 우승, 러시아의 잉골프 분더와 루카스 게뉴서스가 2위를 했다.

 그리고 올해 제17회 대회에서 조성진이 단독 1위에 오르며 쇼팽 콩쿠르는 2000년 이후 3회 연속 우승자를 배출했다. 캐나다의 샤를 리샤르 아믈랭이 2위에, 미국의 케이트 리우가 3위에 각각 올랐다. 상금은 1위는 3만 유로, 2위는 2만5000유로, 3위는 2만 유로 등이다.

임지영 2015년 바이올린 부문 1위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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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올해 경연 종목은 바이올린이었다. 단독 1위에 오른 임지영.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에른의 여공작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는 음악을 사랑하는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는 1900년 벨기에의 왕자 알베르트와 결혼해 엘리자베스 왕비, 즉 퀸엘리자베스가 된다.

 콩쿠르 설립엔 벨기에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이자이는 퀸엘리자베스 음악 재단이 설립되고 난 직후인 31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 경제적인 위기로 37년에 와서야 제1회 대회가 개최될 수 있었다. 처음에 명칭은 퀸엘리자베스가 아니라 ‘이자이 콩쿠르’였다. 경연 부문도 바이올린만 존재했다. 첫 대회에서 소련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논란의 여지없이 1등상을 수상했다.

 제2회 이자이 콩쿠르는 38년 열렸다. 피아노가 경연 대상이었다. ‘강철 타건’ 소련의 에밀 길렐스가 1위, 라흐마니노프 명해석가인 영국의 모우라 림파니가 2위였다.

 소련이 콩쿠르를 휩쓸자 39년 엘리자베스 여왕은 ‘퀸엘리자베스 뮤직 샤펠’을 세웠다. 소비에트악파를 모델로 어린 음악도들을 교육시킬 콩쿠르 사관학교였다. 그러나 콩쿠르는 전쟁 때문에 10년 동안 열리지 못했다.

 이자이 콩쿠르가 재출범하게 된 것은 51년 봄. 명칭도 바뀌어 왕비의 이름을 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첫 대회가 개최되었다. 대회는 이자이 콩쿠르의 규율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때부터 뮤직 샤펠의 건물들이 연습 장소로 제공됐다. 퀸엘리자베스 뮤직 샤펠에서는 12명의 결선 진출자들이 1주일 동안 지낸다. 선정된 작곡가들이 제공한 아직 출판되지 않은 협주곡을 연주하며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음악과 융화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한다.

 잔향이 좋은 브뤼셀 왕립 음악원에서 실내악과 리사이틀이 열린다. 브뤼셀의 팔레 데 보자르에서는 성악 부문 결선 진출자들이 오케스트라 반주로 경연을 펼친다.

 현재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는 매년 성악·바이올린·피아노 부문이 돌아가며 열린다. 악기별로는 3년에 한 번 돌아오는 대회다. 2017년 첼로 부문이 신설돼 올해부터는 악기당 4년 주기로 돌아오게 된다.

 한국 입상자들은 바이올린 부문에서 76년 강동석이 3위에 올랐고, 85년 배익환이 2위, 2012년 신지아(신현수)가 3위에 올랐다, 2015년 임지영이 이 콩쿠르 사상 바이올린 부문 최초로 대망의 1위에 올라 마틸데 왕비에게 꽃다발을 받았다.

 피아노 부문에서는 91년 백혜선이 4위, 95년 박종화가 5위, 2007년 임효선이 5위, 2010년 김태형이 5위에 입상했다.

 성악 분야에서는 2011년 소프라노 홍혜란, 2014년 소프라노 황수미가 두 대회 연속으로 1위에 올랐다. 2014년 소프라노 박혜상은 5위를 기록했다. 작곡은 2008년 조은화, 2009년 전민재의 작품이 경연작으로 선정됐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는 2만5000유로의 상금을 받는다. 공연과 음반 녹음의 특전도 있다. 바이올린의 경우 다음 대회까지 스트라디바디우스 바이올린을 일본음악재단으로부터 대여받는다. 2위는 2만유로, 3위는 1만7000유로, 4위는 1만2500유로의 상금을 받는다.

정명훈 1974년 피아노 부문서 공동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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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러시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15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4위에 오른 클라라 주미 강.

 ◆차이콥스키 콩쿠르= 58년 창설된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냉전 시대 공산진영의 문화적 자존심을 상징하는 대회로 자리매김했다. 4년마다 한 번씩 여러 부문이 한꺼번에 열린다. 처음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두 부문밖에 없었다. 62년 2회 대회 때부터 첼로 부문이 추가됐고, 66년에는 성악 부문이 생겼다. 성악 부문에는 남자 부문과 여자 부문이 따로 있다. 90년에는 다섯 번째 부문으로 바이올린 제작 경연부문이 추가됐다. 바이올린 제작 경연은 메인 경연대회 전에 열린다.

  58년 초대 대회의 우승자는 미국의 반 클라이번이었다. 냉전 시대에 ‘적진에서’ 1위에 오른 미국인 피아니스트의 우승은 큰 화제가 됐다. 이후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그레고리 소콜로프,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미하일 플레트뇨프, 배리 더글라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데니스 마추예프같은 우승자들이 배출됐다.

  74년 서울시향 정명훈 예술감독이 미국 국적(당시 한국 국적으로 적국인 소련에 가기가 힘들었기에 부득이한 선택이었다)으로 피아노부문에서 스타니슬라프 이고린스키(소련)와 공동 2위를 했다. 1위는 안드레이 가브릴로프(소련)였다. 당시 정 예술감독의 귀국 날,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축하 카퍼레이드가 펼쳐지기도 했다. 94년에는 백혜선이 한국 국적으로 3위를 차지했다. 2011년 피아노 부문에서 손열음, 조성진이 각각 2등과 3등에 올랐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2010년 쇼팽 콩쿠르에서 3위를 한 다닐 트리포노프였다.

 바이올린 부문에서는 빅토르 트레차코프, 기돈 크레머, 유진 포더, 일랴 그루베르트, 빅토리아 뮬로바, 스와나이 아키코 등이 우승했다.

 2011년 한국의 이지혜가 3위에 입상했다. 2015년 클라라 주미 강이 4위, 김봄소리가 5위에 올랐다. 첼로 부문에서는 강승민이 5위에 올랐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리나라가 특히 강세였던 부분은 성악이다. 90년 바리톤 최현수의 우승 이래 2011년 베이스 박종민, 소프라노 서선영이 각기 남녀 성악 부문에서 우승했다. 2015년에는 바리톤 유한승이 남자 성악 3위에 올랐다.

 올해 차이콥스키 콩쿠르 조직 위원회는 상금 액수를 올렸다. 그랑프리 상금은 10만 달러, 각 부문 1위는 3만 달러, 2위는 2만 달러, 3위는 1만 달러다.

류태형 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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