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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마음 채워주는 그 이름은 셰프

중앙일보

입력

[기획] 허기진 마음 채워주는 그 이름은 셰프

셰프 전성시대다. 요즘 각종 TV 프로그램을 주름잡는 스타 셰프들을 보면 훌륭한 셰프란 음식만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허기진 마음까지 다독일 줄 아는 센스와 매력을 갖춘 사람인 것 같다. 여기, 매력적인 셰프가 나오는 영화 네 편을 골랐다. 그들이 만드는 맛있는 음식에 정신 팔리다 보면, 어느새 가슴을 데우는 메시지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독불장군 셰프 아담 존스]
‘더 셰프’ | 존 웰스 감독 | 11월 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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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프랑스 일품 요리.

목표 세계 최고 권위의 식당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의 최고점인 별 셋을 받는 것.

약점 3년 전 술과 마약에 중독돼 파리에서 몸담고 있던 식당을 갑자기 떠났다. 그때 진 빚 때문에 지금도 덩치 좋은 빚쟁이들이 종종 찾아온다.

철학 셰프에게 획일성은 죽음이다.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완벽하지 않은 음식은 무조건 버려라.
주방에서 10여 명의 셰프들을 진두지휘하는 존스(브래들리 쿠퍼)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곳은 주방이 아니라 전쟁터 그 자체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른 셰프들은 “네, 주방장님!” 하고 답한다. 싱싱한 가자미로 완벽하지 않은 요리를 했으니 가자미에게 사과하라고 그가 소리를 질러도, 그 명령을 따를 정도다. 왜냐하면 주방은 원래 불과 칼이 날뛰는 전쟁터고, 존스는 ‘그가 요리하면 자갈도 맛있을 것’이란 말을 듣는 셰프이기 때문이다. 그가 파리에서 자취를 감춘 지 3년 만에 돌연 영국 런던에 나타난 건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셋의 평가를 받는 완벽한 셰프가 되기 위해서다. 미국인인 그는 어린 시절의 방황 끝에 10대의 나이에 파리의 한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요리에 대한 재능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같이 일한 사람들에게 난생처음 어떤 소속감도 느꼈다. 젊은 나이에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둘을 받는 셰프가 될 정도로 승승장구했지만, 그 성공에 취해 흥청망청하다 모든 것을 망쳤다. 그 뒤 3년 만에 런던에 나타난 그가 옛 동지들을 불러 모아 식당을 연다. 그에게는 삶의 두 번째 기회인 셈이다. 존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완벽에 완벽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자요리 같은 최신 유행에 아랑곳 않는 전통 방식의 조리법과 까다로운 메뉴를 직접 정하고, 요리의 모든 과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감독하며, 성에 찰 때까지 셰프들은 물론 자기 자신을 무리하게 몰아붙인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최고점을 받는 것이 마치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독불장군처럼 구는 그에게 주위 사람들도 하나둘 지쳐간다. 하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위기와 실수가 찾아오는 법. 존스는 그것을 견디지 못해 몸부림친다. 그 뼈아픈 경험은 오히려 소중한 교훈을 남긴다. 주방은 그 혼자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함께 불꽃의 열기와 칼의 위험을 견디는 동료 셰프들 모두의 전쟁터라는 것, 그들이 없다면 ‘오르가즘’을 전하는 요리를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들과 함께하고 서로 아껴주는 것이 ‘미슐랭 가이드’의 별 셋을 따내는 것보다 훨씬 값진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첫 장면과 비교할 때 마지막 장면의 존스는 확실히 더 나은 셰프, 아니 ‘사람’이 된 것 같다.

[비밀 생쥐 셰프 레미]
‘라따뚜이’ | 브래드 버드 감독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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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프랑스 가정식 요리.

목표 음식물 쓰레기를 훔쳐 먹는 신세에서 벗어나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

약점 그 자신이 바로 위생상 식당에 절대 있으면 안 되는 존재, 쥐라는 사실.

철학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
지금은 세상을 뜨고 없지만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 구스토(브래드 가렛·목소리 출연)가 레미(패튼 오스왈트·목소리 출연)의 스승이다.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는 것도, 위대한 요리는 용기의 산물이라는 것도 모두 구스토에게 배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스토가 쓴 요리책과 그가 출연한 TV 요리 프로그램에서. 빗물을 타고 구스토가 세운 식당 주방에 가게 된 레미는 이제 막 주방에 발을 들인 신출내기, 링귀니(루 로마노·목소리 출연)의 비밀 조력자가 된다. 링귀니의 모자 안에 숨어 그에게 어떻게 요리를 하면 될지 일일이 지시하는 것. 레미와 링귀니가 함께 만든 요리가 불티나게 팔리자, 악명 높은 요리 비평가 이고(피터 오툴·목소리 출연)가 식당을 찾는다. ‘진실’ 한 접시를 달라는 이고 앞에 레미가 내놓은 요리는 라따뚜이. ‘시골 요리’라 불리는 야채 스튜다. 평범한 요리지만, 진짜 요리사가 누군지 밝히기로 결심한 링귀니의 마음과, 쥐의 숙명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기로 용기를 낸 레미의 진심이 담겼다. 그 요리가 얼음장 같은 이고의 마음을 녹인다.

[다혈질 셰프 캐스퍼]
‘아메리칸 셰프’ | 존 파브로 감독 | 1월 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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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프랑스·이탈리아 요리에서 길거리표 쿠바식 샌드위치로 변경.

목표 셰프로서 자신감을 되찾는 것.

약점 굉장한 다혈질로, 화가 나면 트위터에 물불 안 가리고 화풀이한다.

철학 요리는 사람들의 삶을 위로하는 것이다.
셰프는 바로 거기서 힘을 얻는다. 캐스퍼(존 파브로)는 LA의 손꼽히는 일류 셰프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필이면 비평가(올리버 플랫)가 온 날, 메뉴를 놓고 식당 주인(더스틴 호프먼)과 싸우는 바람에 생애 최악의 악평을 받은 그. 이에 대한 설욕을 트위터에 대대적으로 예고했다가 식당에서 쫓겨난 것은 물론,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더 크게 창피당한다. 그동안 오로지 요리에만 매달리느라 전처(소피아 베르가라)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엠제이 안소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그는 이 기회에 등 떠밀리듯 아들과 함께 마이애미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원조 쿠바 샌드위치를 맛본 그는, 푸드 트럭을 꾸려 그 샌드위치를 팔 계획을 세운다. 방학을 맞은 아들과 함께. 샌드위치의 기막힌 맛과 아들의 SNS 홍보에 힘입어 캐스퍼의 샌드위치는 가는 곳마다 트럭 앞에 긴 줄을 세운다. 어느 날 저녁, 캐스퍼가 아들에게 눈을 맞추며 말한다. “난 완벽하지 않아. 최고의 남편도 아니고 최고의 아빠도 아니었어. 하지만 요리는 잘해. 요리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나도 거기서 힘을 얻어. 그 기분을 너와 나누고 싶어.” 캐스퍼가 요리하는 진정한 즐거움을 되찾는 순간이자, 좋은 셰프를 넘어 좋은 아빠가 되는 순간이다.

[괴짜 할머니 셰프 비이]
‘하와이언 레시피’ | 사나다 아츠시 감독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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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일본식과 하와이식이 섞인 퓨전 요리.

목표 젊은 청년 레오(오카다 마사키)에게 저녁밥을 해주는 것.

약점 보기보다 감정적이어서 서운하면 요리로 앙갚음을 한다.

철학 사람은 모두 혼자다. 그래서 요리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옆에 있고 싶은 마음에.
젊은 일본 청년 레오가 하와이의 호노카아 마을에 머무는 건, 이 느긋한 마을만큼 마음 편한 곳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영화관 일을 도우며 유유자적 지내는 그가 인스턴트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이야기를 들은 비이(바이쇼 치에코) 할머니는 그에게 매일 저녁밥을 해주기로 한다. 비이는 이 동네 최고의 요리사다. 영화관에서 파는, 그가 만든 마라소다(하와이풍 도넛)는 이 동네 명물이다. 50년 전 남편을 여의고 매일같이 고양이 밥을 만들며 혼자 살아온 비이. 그에게 저녁마다 레오의 밥상을 차리고, 레오가 ‘음~ 맛있어!’라고 감탄하는 소리를 듣는 건 꽤 가슴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둔한 레오는 아직 그 사실을 잘 모르지만. 눈치 없는 레오가 그의 생일날 저녁에 여자친구 머라이어(하세가와 준)를 데려오자 비이는 일부러 머라이어가 싫어한다는 땅콩을 넣은 음식을 대접한다. 그 소동을 통해 레오는 그제야 서서히 깨닫는다. 지금껏 자신이 얼마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었는지,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그리고 그 따뜻한 마음에 힘을 얻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낸다.

글=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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