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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그 많던 꿀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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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com

벌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0만년 전에 등장했고, 현재 지구상에 약 2만 종이 넘는 벌이 살고 있다. 벌 중에는 땅벌이나 말벌처럼 사람을 한 방에 보내는 무시무시한 놈도 있지만,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벌도 있다. 꿀벌이다. 꿀벌은 인간에게 천상의 달콤함, 꿀을 선물했다. 선사시대 원시인 중 누군가가 처음으로 꿀을 맛봤을 때 어떤 표정이었을지 상상이 간다. 올림푸스 신들이 즐겨 먹었다는 암브로시아에도 꿀이 들어간다.

꿀벌에 치명적인 농약과 제초제 … 꿀벌 사라지면 4년 내 인류 멸종

하지만 꿀벌의 가치는 꿀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이 재배하는 1500종의 작물 중 30%는 꿀벌의 수분(pollination, 受粉)에 의존한다.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만 보면 71%가 꿀벌 덕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전 세계 꿀벌의 수분 작업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연간 무려 2650억 유로(약 38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물론 꿀벌이 의도적으로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꿀벌은 자신에게 필요한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꽃가루와 꿀에서 얻는다. 꿀벌이 여러 꽃을 옮겨 다니다 보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꽃가루를 옮기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수분을 돕는 것이다.

꿀벌 수분의 경제적 가치 380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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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꿀벌이 큰 맘먹고 단체로 파업을 한다면? 별 수 없다. 사람이 일일이 수분을 해야 한다. 붓으로 말이다. 실제 미국 토마토 농장에서는 사람이 벌이 하는 일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는데, 인건비도 인건비려니와 토마토의 품질도 크게 떨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미 10여년 전부터 배꽃 수분 작업을 사람이 돕고 있는데, 매년 2500명의 자원봉사자가 투입된다고 한다. 가뜩이나 바쁜 세상에 붓 한 자루씩 들고 ‘인간 벌’이 되지 않으려면 꿀벌에게 감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꿀벌의 군집붕괴 현상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집 나간 꿀벌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꿀벌은 스스로 알아서 잘만 살았다. 먹이인 꽃도 지천에 널려 있고,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위협요인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감사히 꿀이나 얻어먹던 인간이 사고를 쳤다. 무분별하게 제초제를 쓰면서 꽃이 피는 식물을 대거 없애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농약과 살충제를 마구 뿌려대면서 꿀벌을 직접 죽이거나 면역력을 약화시켰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2006년에 비해 꿀벌의 개체 수가 40%가량 감소했고, 유럽은 1985년에 비해 25%가 줄었다. 특히 영국은 2010년 이후 45%의 꿀벌이 사라졌다. 큰일이다. 꿀벌 실종 사건의 원인은 비단 농약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네소타대학교 곤충학과 말라 스피박(Marla Spivak) 교수는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를 3가지로 압축해서 설명한다.

첫째, 농사재배 방식이 바뀌었다. 이제 흙 속에 질소를 고정해주는 자연 비료 역할을 해왔던 클로버와 알팔파 같은 피복작물(cover crop)을 심지 않는다. 대신 값싼 합성 비료를 사용한다. 그런데 클로버와 알팔파가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벌들에게는 매우 높은 영양을 제공하는 먹이인 것이다.

둘째, 단일종 재배이다. 요즘에는 돈이 되는 옥수수와 콩 같은 한 두 가지 작물만 집중적으로 키운다. 돈이 안 되는 다른 식물은 제초제를 사용해 씨를 말려 버린다. 그러다 보니 꿀벌이 살아남는데 필요한 수많은 개화 식물이 잡초(雜草)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사라졌다(잡초는 얼마나 인간편의적인 작명인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저마다 태어난 이유가 있고 살아갈 이유가 있는데 말이다. 아, 인간은 곤충도 익충, 해충으로 딱 잘라 구분한다).

셋째, 농약이다. 꿀벌이 모아오는 꽃가루에서는 최소 6가지의 농약 성분이 검출된다. 모든 등급의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뿐만 아니라 심지어 농약 제조 과정에 쓰이는 훨씬 더 독성이 높은 성분도 포함된다. 특히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살충제 중 하나인 네오니코티노이드(neonicontinoids)가 치명적이다. 보통 씨앗에 이 농약을 뿌리는데, 작물이 자라면서 농약 성분이 모든 부위에 골고루 퍼진다(미국에서 재배하는 옥수수의 95% 이상에 이 농약이 뿌려진다). 꿀벌이 네오니코티노이드의 니코틴계 신경 자극성 성분에 중독되면 방향 감각을 상실해서 자기 집을 못 찾게 되고, 면역체계가 교란되어 기생충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니코틴은 사람도 중독시키는데 꿀벌에게는 더 치명적이겠다).

꿀벌이 사라지면 농산물의 양과 종류가 그만큼 줄어들고 인류는 당장 식량 부족에 직면하게 된다. 꿀 맛을 다시 볼 생각은 아예 접어야 한다. “지구상에서 꿀벌이 사라지면 식물이 멸종하고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경고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아몬드 등 단일종 수분을 위해 벌집을 트럭에 싣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일종의 원정수분이라고 해야 할까. 덜컹거리는 트럭에 실려 수천㎞를 출장가야 하는 꿀벌의 삶이 참으로 기구하다.

미국은 2015년 5월 ‘꿀벌 등 꽃가루 매개자 보호를 위한 국가 전략’을 발표했다. 10년 내 꿀벌 폐사율을 15% 미만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목표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호주 연방과학원(CSIRO)은 2014년부터 꿀벌의 움직임을 추적하기 위해 꿀벌의 몸에 전파식별(RFID) 태그를 부착해왔다. 현재까지 호주 및 브라질 아마존 지역의 1만5000마리의 꿀벌에 RFID 태그가 부착되어 있다고 한다. 인류가 자랑하는 최첨단 IT기술을 가지고 꿀벌을 살리겠다는 의도는 참으로 가상한데 글쎄다. 많이 먹어 찐 살을 빼기 위해 살 빼는 약을 또 먹는 느낌이랄까.

꿀벌의 방식으로 꿀벌을 살리는 노력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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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이 사라진다’ 강연 동영상.

머리 아프게 하이테크 기술을 구사하기보다 스피박 교수가 제안하는 방법이 더 손쉬울 듯싶다. 스피박 교수는 “꿀벌의 죽음은 우리에게 현재의 농업 방식과 도시 환경이 계속 지속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면서 꿀벌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인간을 살리기 위해 농약 사용을 줄이고 대신 꽃을 키울 것을 권한다. 꽃을 키운다? 사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개개인의 작은 노력이 모이고 모이면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마치 벌들이 중앙집중화된 권력 없이도 자율적으로 소통하고 일을 분담하면서 협동적인 사회를 유지해 왔던 것처럼 말이다. 강연 마지막에 ‘벌들을 대신하여(on behalf of the bees)’ 감사한다는 스피박 교수의 멘트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우리부터 꽃을 심어보면 어떨까. 특색없는 콘크리트 도시 서울이 꽃으로 만발한 ‘꽃의 천국’이 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 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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