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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갖는 ‘확신’은 감정이 파놓은 함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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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호 29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판단을 한다. 그러나 판단을 제대로 하기란 어렵다. 만약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한다면 당신은 어떤 판단을 하겠는가?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 입장이 분명하더라도, 논리적 판단을 제대로 하려면 판단에 필요한 기준과 근거를 마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매번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논리적 추론에 필요한 인지자원도, 그럴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기생존을 추구하는 우리의 본능은 가급적 몸 속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로 인해 우리의 뇌는 확실한 근거가 없어도 기존의 생각이나 믿음에 맞추어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


비록 착각일지라도 자신감은 장기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거나 혹은 믿고 싶어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운전자의 90%는 자신이 평균 이상으로 운전을 잘 하는 것으로 믿는다고 한다. 이 응답결과를 그래프로 그리면 한 쪽으로 심하게 쏠린 과잉곡선이 된다.


확신은 판단이라기 보다 ‘감정적 반응’에 가깝다. 확신에 찬 사람일수록 겉으로 드러난 증거에 비해 자신의 판단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을 보인다. 특히 전문가의 확신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준다. 사람들은 불안감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전문가를 선호한다. 하지만 전문가의 확신이 겉으로 드러난 증거보다 과하면 사람들의 판단 역시 객관적 근거와 멀어지기 쉽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식시장에서 특정종목에 투자를 권하는 증권전문가의 확신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에 많이 좌우된다. 실제 한 연구에서 과거 8년 간 투자자문사의 투자실적을 분석한 결과, 투자성과는 전문성보다는 운에 좌우되는 주사위 게임과 같았다고 한다. 예측이 어려워 거의 운에 좌우되는 시장이라면 전문가의 조언 역시 매수와 매도 의견이 50%씩 섞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4년 간 발표된 10만여 건의 국내 증권사의 리서치 보고서 중 매수의견은 약 91%였으며, 매도의견은 단 0.06%에 불과하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변호사들도 확률적 평균보다 과도한 자신감을 보였다. 민사소송에서 한 쪽의 승소는 다른 한 쪽의 패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통계적 승소확률은 50%이다. 하지만 민사소송을 맡는 변호사들의 약 70%가 자신이 맡고 있는 사건이 승소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리의 뇌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아도 쉽게 판단하고 과도하게 확신한다. 망설임이 이끄는 불확실한 상태를 방치하면 더 큰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의 뇌는 근거가 부족하거나 심지어 근거가 전혀 없어도, 기존의 생각과 믿음에 부합하는 판단을 통해 불확실한 상황에서 벗어나려 한다. 결국 판단은 충분히 확보된 증거보다 기존의 생각과 믿음에 얼마나 매끄럽게 부합하는 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판단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될수록 우리의 뇌는 인지적 편안함을 얻게 된다. 인지적 편안함은 추정에 불과한 판단에 자신감을 불어넣고, 확신이라는 감정으로 표출한다.


감정의 개입으로 우리의 뇌는 확신을 ‘확실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사실로 믿고 싶은 것을 ‘사실’로 믿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하지만 근거가 모호한 확신은 감정이 만든 착각일 뿐이다. 확신은 감정이 파놓은 함정이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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