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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값싼데도 성능 좋고 디자인 깔끔 … ‘대륙의 실수’ 아닌 ‘대륙의 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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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군이 다양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족집게같이 끄집어 낸다. 디자인은 애플 제품 못지않게 깔끔하다. 마케팅도 영리하다. 전체 소비자를 겨낭하기보단 특정 계층만을 타깃으로 놓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자주 화제가 되고 있는 ‘메이드 인 차이나’ 중국산 정보기술(IT) 제품 얘기다. 이들 제품은 ‘싸구려 짝퉁’이라는 기존 편견과 달리 가격도 저렴한 데다 성능도 뛰어나 ‘대륙(중국)의 실수’라고 불리고 있다. 어쩌다 보니 그런 물건이 중국에서도 나왔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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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실수’로 불리는 중국산 IT기기들. ① 삼성·LG 제품 가격의 3분의 1 수준인 UHD TV(샤오미) ② 집에서도 극장 느낌을 낼 수 있는 가정용 빔 프로젝터 UC 40(UNIC) ③ USB포트가 달린 멀티탭(샤오미) ④ 미국산 액션캠 ‘고프로’급의 SJ4000(SJ캠). [사진 각 사]

 본지가 최근 일주일간 일반인·전문가 10명을 상대로 레노버·샤오미·화웨이 등 중국산 전자제품의 장단점을 물은 결과는 달랐다. 변호사·회계사·학생 등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외국계 IT업체(보안 솔루션) 대표, IT 전문지 기자 등을 패널로 선정했다. 모두 하나 이상의 중국산 스마트 기기를 사용한 적이 있는 이들이다. 그 결과 ‘대륙의 실수’가 아니라 ‘대륙의 작품’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철저한 기획의 효과라는 것이다.

중국산 IT 기기 사용자에게 물어보니

 이동통신사에 근무하고 있는 전형준씨는 석 달 전 무게가 1㎏밖에 나가지 않는 중국산 프로젝터를 8만4000원에 구매했다. ‘대륙의 두 번째 실수’로 알려져 있는 프로젝터 ‘UC 40’. 가로·세로 길이는 각각 20㎝, 15㎝에 제품 두께도 6.8㎝일 정도로 얇다. 고화질(HD)보다 화질이 두 배 더 선명한 풀HD(1980×1020) 동영상을 지원할뿐더러 음향 장치가 내장돼 있어 따로 스피커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전씨는 중국 전자상거래 사이트 ‘타오바오’를 통한 해외 직접구매(직구)로 이 제품을 샀다. 그는 “거실은 물론 캠핑장에서도 야외극장 효과를 맛볼 수 있게 해 준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시장에서의 중국산 IT 기기의 인기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지난 19~25일 마켓의 카테고리별 인기 검색어를 분석해 본 결과 휴대전화 배터리 분야에서 샤오미 보조 배터리가 1위, 건강 분야에서도 샤오미 체중계가 1위를 차지했다.

 샤오미의 외장 배터리 ‘미 파워뱅크’는 올해 히트 상품으로 꼽혔다. 1만 밀리암페어(mAh)급 국내산 외장 배터리 제품은 3만원대에 판매되지만 샤오미 1만6000mAh 제품은 오픈마켓에서 2만원대에 팔린다. 게다가 디자인도 괜찮다. 한 얼리어답터는 “기존 배터리는 무겁지만 샤오미는 포켓에 들어갈 정도 크기”라며 “사용자의 가려운 데를 잘 긁어준 상품”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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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샤오미가 중국에서 출시한 초고화질(UHD) 4K 55인치 TV 가격은 4999위안(약 88만원)이다. 같은 사양의 삼성·LG TV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다. 중국 제품은 어떻게 프리미엄 제품을 싸게 내놓을 수 있을까. 생산직 근로자를 따로 고용하지 않고 온라인 판매에 집중해 유통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까닭이다. 삼성은 중국에 조립공장을 세울 뿐만 아니라 대도시 곳곳에 체험형 매장을 세우고 제품 배송도 직접 한다. 반면 샤오미는 대만 폭스콘을 비롯한 전문 위탁생산 업체에 생산을 맡기고 있다. 판매·배송도 온라인 쇼핑몰과 외부 배송망을 이용한다. 그만큼 소매가격이 떨어질 여지가 생긴다. 정근호 애틀러스리서치 R&C팀장은 “샤오미는 유통망 관리 비용, 생산직 근로자의 임금만큼을 제품 가격 인하로 돌리니 80만원대 UHD TV 같은 파괴적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중국 업체 때문에 한국 소비자들이 국내 업체가 책정한 가격을 신뢰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중국의 업체들은 모방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고급스럽지 않은 마케팅일지라도 시장에서 통한다면 그대로 베낀다. 지난 18일 열린 레노버의 6.8인치 패블릿 ‘팹플러스(Phab Plus)’ 국내 출시회에서 스마트폰을 소개한 시간은 고작 10분에 그쳤다. 나머지 1시간10분은 인기 걸그룹 EXID의 멤버 하니의 인사말, 팬 사인회, 포토타임으로 채워졌다. 다른 걸그룹 AOA의 설현을 광고 모델로 내세운 SK텔레콤의 스마트폰 ‘루나’가 하루 2000대씩 판매되자 이를 그대로 벤치마킹했다. 박종일 착한텔레콤 대표는 “중간 가격 이하의 기기에선 스타 마케팅이 분명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다른 계층을 제외하고라도 IT기기에 능숙한 20, 30대 남성을 집중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라면서 “한국의 루나폰 역시 중국식 제조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해 40만원대 가격에 최고급 성능을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나폰의 기획은 한국 업체(TG앤컴퍼니)에서 했지만 제조는 폭스콘에서 일괄 생산하며 국내로 역수입돼 SK텔레콤이 판매하고 있다.

 단순한 스마트폰을 넘어 사물인터넷(IoT)과의 연동도 장점이다. 남정민(벤처경영학) 단국대 교수는 “샤오미 체중계로 몸무게를 재면 곧바로 본인 스마트폰에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고 샤오미 정수기는 필터 교체 주기가 되면 정수기가 알아서 스마트폰에 신호를 보낼 정도로 IoT 친화적”이라고 답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외국계 보안 솔루션 대표는 “샤오미의 태블릿 미패드를 1년 정도 썼더니 디스플레이가 켜지지 않고 OS 구동 자체가 안 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났다”고 말했다. 중국산 USB 겸용 멀티탭을 사용하고 있는 한 전자상거래업체 과장은 “중국 제품은 애프터서비스(AS)가 힘들기 때문에 소위 ‘뽑기’를 잘못하면 제품이 고장 나도 도리가 없다”면서 “소형 제품과 달리 프리미엄급 제품에선 중국산에 대한 선호가 아직도 낮다”고 말했다.

[S BOX] 유명 브랜드 흉내 낸 ‘중국산 짝퉁’ 아직도 많아

‘대륙의 실수’ IT 제품이 더 세련되고 만듦새가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짝퉁 딱지를 못 떼고 있다. 중국의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알리익스프레스’는 유명 브랜드를 흉내 낸 유사 상품을 대놓고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로 잘 알려졌다.

회사원 강현철(31)씨는 올해 초 물놀이를 할 때 쓸 액션 카메라를 사려고 알리익스프레스에 접속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액션 카메라 1위 업체 고프로(GoPro)가 아닌 이른바 ‘짭프로(짝퉁+고프로)’로 불리는 중국 기업 SJ캠 제품이다. 고프로는 국내 판매 가격이 30만원이지만 이 제품은 알리익스프레스에서 8만원 미만에 팔리고 있다. 여기에 국제 배송도 무료다. 그는 “고프로와 비교해봐도 크게 뒤지지 않아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폭풍마경’이라는 중국산 가상현실(VR) 기기는 삼성전자와 미국 오큘러스가 공동 제작한 ‘기어 VR’의 유사 상품이다. 기어 VR은 25만원가량에 판매되는 반면 폭풍마경은 99위안(약 2만원)에 배송비만 추가하면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살 수 있다. 심지어 폭풍마경은 기어 VR의 메뉴판과 똑같이 생겼다. 기어 VR은 갤럭시 시리즈만 기기에 꽂을 수 있지만 폭풍마경은 4~6인치 스마트폰이라면 어떤 것이든 호환해서 사용할 수 있다.

중국으로부터 해외 직구(직접 구매)를 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관세청의 중국 전자상거래 물품 수입 통관 현황에 따르면 2012년 596건에서 2013년 1276건, 지난해 1697건으로 증가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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